그의 대표곡을 네 장의 CD에 집약한 <Horace Silver Retrospective>(1999)

오늘날 대중음악의 대세로 자리 잡은 힙합의 뿌리를 1950년대에 등장한 하드밥(Hard Bop)에서 찾곤 한다. 당시 하드밥의 전성기 시절 유행했던 오리지널 멜로디를 샘플링하여 재탄생한 힙합 히트곡들이 많다는 현상에서도 알 수 있다. “하드밥의 아버지”로 불리는 호레이스 실버(Horace Silver)는 하드밥 명반의 산실인 블루노트 레코드와 27년간 함께 하면서, 수많은 하드밥 오리지널을 작곡하고 연주하였다. 그가 만들어낸 간결하고 박자감 있는 멜로디들은 재즈 오리지널로 자리 잡았고 오늘날 힙합 신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실버의 가장 유명한 오리지널 <Song for My Father>(1965)의 타이틀곡. 앨범 자켓에는 그의 아버지 사진이 실렸다
실버의 ‘Song for My Father’를 샘플링한 US3의 ‘Eleven Long Years’(1993)

어릴 적 레스터 영의 영향을 받아 테너 색소폰을 배웠고, 버드 파웰의 영향을 받아 피아노도 함께 배웠다. 하지만 척추가 굽었다는 진단을 받고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색소폰을 포기하고 피아니스트로 전향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고향 코네티컷주에서 스탄 게츠의 눈에 들면서 재즈계에 입문했고, 그의 도움으로 뉴욕에 진출하였다. 그곳에서 아트 블레키, 루 도날드슨, 케니 도햄과 어울리며 비밥(Bebop) 피아니스트로 명성을 얻었고, 블루노트 레코드를 설립한 알프레드 라이언과 교분을 쌓으면서 27년(1952~1979) 동안 블루노트의 간판 피아니스트로 활약했다. 그의 블루노트 음반들은 비밥의 복잡한 하모니 대신 간결하고 강렬한 멜로디를 강조하며 하드밥(Hard Bop)을 개척한 선구자로 불린다.

호레이스 실버의 오리지널 ‘Senor Blues’(1956) 실황

호레이스 실버는 1953년 드러머 아트 블레키와 함께 하드밥 명문 밴드 재즈 메신저(Jazz Messengers)를 창단하였으며, 수년 후 독립하여 자신의 독자적인 퀸텟을 구성하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다. 당시 테너 색소폰, 트럼펫, 피아노,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되는 재즈 콤보는 전형적인 하드밥 콤보 구성의 원형이 되었다. 호레이스 실버 퀸텟(Horace Silver Quintet)을 통해 발굴된 테너 색소폰과 트럼펫 주자들은 후일 재즈 스타로 발돋움했을 정도로 그의 안목은 높았다. 대표적인 색소포니스트로는 조 헨더슨, 행크 모블리, 주니어 쿡을 들 수 있고, 트럼페터로는 아트 파머, 블루 미첼, 우디 쇼를 꼽을 만하다.

<Silver’s Serenade>(1963)에 수록한 타이틀곡

그가 작곡한 하드밥 히트곡들은 재즈 장르에서 드물게 싱글로도 출반되며, 주크박스에 자주 걸려 그에게 상당한 로열티 수입을 안겼다. 그가 주도했던 하드밥 역시 유행이 지나며 전성기를 넘겼지만, 풍부한 작곡 레퍼토리 덕분에 비교적 여유 있는 아티스트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1980년대 이후에도 수시로 콤보를 구성하여 공연 투어에 나섰지만, 건강을 고려하여 1년에 4개월 정도의 활동에 그쳤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갖거나 작곡에 몰두하기 위해 밴드를 해체하고 음악 활동을 모두 중단하기도 했다.

<Silver ‘n Brass>(1975)에 수록한 ‘Barbara’(1976, 이탈리아 움브리아 재즈 페스티벌)

그의 마지막 정규 앨범은 1998년의 <Jazz Has a Sense of Humor>였고, 2004년 뉴욕 블루노트 클럽에서의 연주가 마지막이 되었다. 그날 이후로 대중에게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수년 후에 그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14년 85세를 일기로 그는 영원한 안식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