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에게 한 번씩 물었던 질문이 있다. ‘짱구’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올라요? 짱구를 보고 자란 이들의 기억 한편에는 각기 다른 모습의 짱구가 자리 잡고 있다. 엄마에게 혼나고 머리에 엄청나게 큰 혹이 자란 모습, 주변 분위기와 상관없이 신나게 엉덩이춤을 추는 모습, 지나가는 누나들에게 놀자고 말을 거는 모습 등 짱구 하면 떠오르는 장면은 무수히 많다.

늘 웃음을 주는 짱구지만, 짱구를 보고 운 적이 있다. 두 편의 극장판 짱구 때문이었고, 알고 보니 두 편 모두 같은 감독의 작품이었다. 1996년부터 2004년까지 ‘짱구는 못말려’ TV 시리즈를 담당하고, 극장판도 6편을 제작한 하라 케이이치 감독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짱구 특유의 유머도 놓치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극장에 간 부모들을 울리는 감정선이 담긴 작품을 만들었다.

하라 케이이치. 출처 - cinemacafe 

짱구는 캐릭터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연출의 자유에 있어서 어느 정도 제약이 있다. 하라 케이이치는 오히려 제약 안에서 최대치의 창의성을 발휘한다. 짱구 시리즈와 작별한 이후에 연출한 작품들도 원작소설이 있거나 일본 신화 속 캐릭터를 차용한다. 이미 관객들이 가진 배경지식 때문에 제약이 있을 수 있음에도 하라 케이이치는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작품을 만든다. 묵직한 메시지를 위트 있게 풀어내고, 내 삶을 향하는 듯한 장면 때문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세상에 따뜻함을 주는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름답게 그려내는 하라 케이이치의 작품을 살펴보자.

 

<짱구는 못말려: 어른 제국의 역습>

映画クレヨンしんちゃん嵐を呼ぶモーレツ!オトナ帝国の逆襲 , Crayon Shin-chan: The Storm Called: The Adult Empire Strikes Back |2001

일본에 어느 날 ‘20세기 박물관’이 등장하고, 어른들은 이곳에서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을 한다. 짱구의 엄마와 아빠 모두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짱구는 심심해한다. 문제는 짱구의 부모뿐 아니라 거의 모든 어른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점점 아이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 배후에는 21세기의 일본을 증오해서 세상을 20세기로 돌려놓으려는 ‘yesterday once more’라는 조직이 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짱구와 친구들은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20세기 박물관으로 간다.

<짱구는 못말려: 어른 제국의 역습>의 백미는 짱구 아빠의 과거 회상 장면이다. 픽사의 애니메이션 <업>(2009)에서 주인공 ‘칼’이 아내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처럼 한 인물의 삶을 압축해서 보여줌으로써 관객도 그 여정을 따라 마음이 흔들린다. TV 시리즈 짱구로 봤을 때는 상상 못 했던 짱구 아빠의 과거가 등장하면서, 단순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넘어서 관객으로 하여금 부모에 대해 사유하게 만든다.

짱구 아빠의 과거 회상 장면

짱구의 엄마와 아빠도 짱구처럼 아이였던 시절이 있었을 거고, 그 시절에는 자신들이 부모가 되는 상상보다는 놀기 바빴을 거다. 당연하게도 부모가 처음이기에, 부모로서 힘든 순간마다 걱정 없이 보호받으며 지내던 아이 때로 돌아가고 싶을 거다. 그럼에도 힘을 내는 건, 아무리 힘들어도 결국 가족과 함께 만들 미래가 과거의 어느 지점과 비교해도 가장 따뜻할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따뜻한 가족의 품에서 그 어떤 아픔도 잊을 수 있다는 건, 우리가 미래를 견딜 수 있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짱구는 못말려: 태풍을 부르는 장엄한 전설의 전투>

画クレヨンしんちゃん嵐を呼ぶアッパレ!戦国大合戦|2002

어느 날 밤 짱구 가족은 모두 다 같은 꿈을 꾼다. 호수에 있는 여인이 등장한 꿈을 다 함께 꾼 이후로, 짱구네 강아지 흰둥이는 갑자기 마당에 깊게 구멍을 판다. 짱구는 그 구멍을 살피다가 우연히 시간이동을 하고, 눈을 떠보니 꿈에서 본 호수에 와 있다. 알고 보니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전국시대에 오게 된 짱구. 짱구는 우연히 장군 ‘마타베’의 목숨을 구하게 된다. 그 인연으로 마타베와 동행하는 짱구는, 그가 자신이 속한 나라의 공주 ‘렌’을 좋아하지만 신분 차이 때문에 마음을 숨김을 느낀다. 짱구를 걱정한 짱구의 가족들도 짱구에게 합류하고, 마타베와 렌은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지만 이들에겐 전쟁이 눈앞이다.

극장판으로 제작된 짱구 시리즈 중에서 가장 비극에 가까운 작품이다. 탄탄한 각본 덕분에 야마자키 다카시 감독 연출의 <발라드 - 이름없는 사랑노래>(2009)라는 제목으로 실사화됐다. 절제가 미덕인 작품으로, 짱구 캐릭터를 무리하게 중심에 세우는 대신 마타베와 렌의 사랑과 시대적 배경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짱구는 못말려: 태풍을 부르는 장엄한 전설의 전투> 트레일러

짱구가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 중 하나는 짱구가 어른들에게 던지는 물음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짱구가 신분 때문에 자신의 사랑을 억누르는 장군 마타베에게 “신분이 없다면 좋아할 거야?”라고 묻는 장면처럼. 그 어떤 편견도 없이 순수한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짱구의 질문은 타임슬립을 통해서 간 과거뿐 아니라 모든 시대에 필요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

河童のクゥと夏休み, Summer Days With Coo|2007

초등학생 ‘코이치’는 여름방학을 앞두고 강가에서 우연히 신기한 돌을 발견한다. 알고 보니 이 돌 안에는 갓파가 잠들어 있었고, 깨어난 갓파는 코이치 가족과 함께 지내게 된다. ‘쿠’라는 이름으로 함께 지내던 갓파는 코이치와 함께 살아있는 갓파를 찾아 여행을 떠나기도 하지만 소식을 듣기가 쉽지 않다. 조금씩 갓파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소문이 주변에 돌면서 갓파와 코이치 가족 모두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을 보자마자 했던 생각은 갓파처럼 낯선 존재가 내 앞에 나타나면 어떻게 반응하느냐였다. 그런데 이런 질문조차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생각이다. 인간세계에 갓파가 나타난 게 아니라, 갓파의 터전에 인간이 예고 없이 등장한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 예고편

인간중심적으로 자연을 보는 게 익숙한 우리에게, 갓파의 시선으로 보는 인간은 자연을 훼손하는 존재다. 갓파로 상징되는 자연의 수많은 존재에게 인간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존재다. 인간중심적인 사고가 너무나 당연한 세상에서, 훗날 지금 우리 곁에 있는 동물들이 사라져서 신화 속 존재처럼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 제작될지도 모른다.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의 여운을 머금은 채 반성해본다.

 

 

<컬러풀>

カラフル , Colorful|2010

죽어서 영혼이 된 ‘나’는 세상에 돌아갈 기회를 얻는다. 6개월 이내에 전생의 죄를 기억해야 환생한다는 조건으로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마코토’라는 이름의 소년이 된다. 며칠 전 자살을 시도한 마코토는 얼핏 보면 단란한 가정에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출세와는 거리가 먼 무능한 아빠, 춤 선생과 바람난 엄마, 자기 성적 외에는 신경 쓰는 게 없는 형까지, 집은 쉼터가 되지 못한다. 게다가 학교에서는 반에서 꼴찌인 성적에 왕따까지 겪는다. 마코토로서의 삶에 실망을 거듭하던 나는, 환생을 위한 유예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삶을 즐기고자 마음먹으면서 자신이 조금씩 바뀜을 느낀다.

<컬러풀>은 모리 에토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하라 케이이치답게 작위적으로 메시지를 강요하기보다, 극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작품의 메시지가 관객에게 스며든다. 삶 앞에서 좌절하는 이들에게 맹목적으로 삶의 소중함을 말하는 것보다 <컬러풀>을 보여주는 게 낫겠다 싶을 만큼, 고운 결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삶의 성찰을 얻는 작품이다.

<컬러풀> 예고편

다시 한번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무런 편견 없이 ‘나’라는 사람을 바라본다면 삶은 얼마나 바뀔까. 내 삶에 다양한 색이 존재할 수 있는데, 이미 내 삶의 색이 정해졌다고 단정하고 포기한 순간들이 떠오른다. 각자가 가진 색을 사랑하고, 타인의 색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면 그 세상이야말로 작품 제목처럼 ‘컬러풀’한 세상이 아닐까. 딱히 개성이 있거나 멋지지 않아도 ‘나’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기억해주는 이들을 떠올리면서, 다양한 색으로 채워져서 아름다운 세상을 꿈꿔본다.

 

 

ㅣ필자소개ㅣ
김승용(Seungyong Kim)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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