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생을 하나의 장르로 설명한다면 무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유명 코미디언이자 영화배우인 찰리 채플린은 인생을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 말했다. 우리에겐 비극적인 일들이 계속해서 닥치지만 시간이 흐르면 이마저 웃어넘기게 된다는 그의 시각이 담긴 말이다. 인생을 비슷하지만 또 다른 하나의 단어로 설명한다면 희비극(‘tragicomedy’)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희비극’이란 희극(comedy)과 비극(tragedy)이 혼합된 형태의 연극을 일컫는 장르로 끝없는 웃음과 깊은 슬픔이 공존하는 인생을 잘 설명해주는 단어다.

극작가 세라 룰

이처럼 비극적이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인생을 희비극의 정수에 담아낸 현대 여성 극작가가 있다. 미국의 극작가인 세라 룰(Sarah Ruhl, 이하 ‘룰’)은 2002년에 첫 장편 희곡 <Melancholy Play>를 발표하며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잡았다. 현재까지도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그는 퓰리처상과 토니 어워즈 등 미국의 저명한 연극상 후보에도 올랐다.

세라 룰의 희곡 <죽은 남자의 휴대폰> 공연 사진

룰의 작품들은 우리 인생의 평범한 드라마에 마법적인 모험 서사를 얹어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와 신비한 해프닝을 오간다.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던 주인공에게 불현듯 벌어지는 일들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터무니없기 때문에 도리어 웃음을 자아낸다. 바로 이러한 지점이 룰의 작품을 희극적이고 익살스럽게 만든다(실제로 세라 룰의 작품 중 <멜랑꼴리 플레이(Melancholy Play)>라는 연극에선 사람이 아몬드가 되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무엇보다 룰의 작품에서 이런 초월적인 여정을 거치는 주인공은 여성이다. 정신적인 성장과 코미디의 중심에 서던 인물이 보통 남성의 몫이었던 것을 여성의 서사로 전복해 한층 더 깊은 성장의 이야기를 그려낸 것이다.

세라 룰의 희곡 <깨끗한 집> 공연 사진

룰의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표면적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들여다볼수록 기이하고 예측불허하다. 그들은 논리와 이성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마치 아이처럼 충동적이며 즉흥적으로 행동한다. 원래 차분하고 냉정하게 행동하던 사람도 어느 순간 미친 듯이 울다가 다시 미친 듯 웃고, 때로는 미친 듯이 춤추다 또 짐승처럼 화를 내기도 한다. 관객들은 그런 인물들의 충동적인 행동들 때문에 한바탕 웃게 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공감이 가며 인물의 비이성적인 행동에 함께 묘한 해방감을 얻는다.

 

죽은 남자의 휴대폰

<죽은 남자의 휴대폰> 첫 장면

2006년에 나온 <죽은 남자의 휴대폰>은 ‘진(Jean)’이라는 한 여성이 카페에서 우연히 죽은 남자를 마주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진은 죽었는지도 모르게 평안하게 죽어있던 ‘고든(Gordon)’의 울리는 핸드폰을 받고 어떤 충동에 사로잡혀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을 한 명씩 만나게 된다. 진은 고든의 엄마, 아내, 동생, 내연녀 등 주변인들을 만나며 그의 기억을 함께 애도하고, 나아가 자신이 마치 고든과 알던 사람인 양 자신을 꾸며내 그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진의 이야기를 듣는 상대는 고든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감동하다가도 그에 대한 원망 때문에 울기도 한다. 진의 행동은 점점 대담해지며 나중에는 고든이 머무는 사후세계로 끌려가는 초현실적인 경험까지 하게 된다.

초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죽은 남자의 휴대폰> 무대 사진들

여기서 진의 행동은 사실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처음 본 사람의 가족을 찾아가 없던 이야기들을 꾸며내고, 또 그 거짓 이야기에 감명을 받는 가족의 모습은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워 웃음을 자아낸다. 그렇지만 진이 모르는 이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고 그가 주변인들의 기억 속에 소중히 남도록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마냥 우습지만은 않다. 따라서 관객은 진의 충동적인 행동에 당혹스러워하면서도 그를 응원하게 되고, 진이 재창조해내는 고든의 이야기에 함께 울고 웃는다.

<죽은 남자의 휴대폰> 중 진이 고든의 가족을 만나는 장면

이처럼 룰의 작품 속 주인공들이 겪는 모험은 마냥 우스꽝스러운 것이 아니라 죽음, 애도 등 깊은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비극이 함께 따른다. 웃음과 슬픔이 만나는 인생의 단면을 드러내기에 그의 작품은 단순한 코미디보다는 무거운 삶의 비극을 웃음으로 그려낸 희비극에 가깝다.

 

깨끗한 집

새하얗고 깨끗한 <깨끗한 집>의 무대 사진

2004년에 발표한 <깨끗한 집>은 브라질에서 온 ‘마칠지’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미국의 한 중산층 부부의 집에 청소 도우미로 머물며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다. 마칠지는 부모님이 남긴 삶의 수수께끼인 ‘완벽한 농담’을 찾느라 청소는 뒷전이다. 이 ‘완벽한 농담’은 사람이 웃다 죽을 만큼 웃긴 농담으로 마칠지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유이기도 하다. 마칠지를 고용한 ‘레인’은 유능한 의사로 ‘깨끗한 집’에 대한 강박이 있어 청소를 하지 않는 마칠지를 답답해한다. 그러던 어느 날 레인의 언니인 ‘버지니아’가 레인 몰래 그의 집을 청소하겠다고 마칠지에게 찾아온다. 그렇게 레인의 집에 머물며 서로 친해져 가던 버지니아와 마칠지는 레인의 남편이자 의사인 ‘찰스’가 70대 환자 ‘애나’와 바람난 사실을 알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찰스는 애나를 집으로 데려와 레인과 버지니아, 마칠지에게 자신의 소울메이트라며 소개한다.

<깨끗한 집> 공연 사진

<깨끗한 집>은 표면적으로 봤을 땐 소동이 가득한 코미디다. 사람이 웃다 죽을 정도로 ‘완벽한 농담’이라는 이야기는 터무니없을뿐더러 교양 넘치던 레인과 버지니아가 서로 짐승처럼 싸우고, 바람을 피우는 찰스가 애나에게 푹 빠져 그를 당당하게 자신의 소울메이트라 소개하는 장면은 코미디 그 자체다. 그렇지만 작가는 웃음을 불러일으키는 와중에 각 인물들이 속에 품고 있던 상처까지 잔잔하게 풀어나가며 어느새 그들의 감정에 스며들도록 만든다. 버지니아는 주부로서 아이와 직업이 없는 공허를 달래기 위해 집 청소에 매달리게 됐고, 완벽주의자인 레인은 자신과 너무나도 다른 애나와 사랑에 빠진 남편의 모습에 아파한다. 마칠지는 자기 부모님과 닮은 자유로운 영혼의 애나를 만나 기쁘지만 아픈 그의 모습에 또 슬퍼한다.

<깨끗한 집> 중 레인의 집에 모인 네 여성이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

2막에서 찰스는 병이 심해진 애나가 병원치료를 거부하자 치료약을 찾기 위해 알래스카로 떠난다. 그리고 레인은 그를 대신해 애나를 돌보게 된다. 깨끗했던 집에 모여든 레인, 버지니아, 마칠지와 레인은 서로 화해의 시간을 갖고,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러던 중 고통이 심해진 애나는 마칠지에게 자신을 ‘완벽한 농담’으로 죽여 달라고 부탁한다. 사람을 죽일 만큼 웃긴 농담이라는 황당해 보였던 설정은 이렇게 애나의 죽음과 맞닿게 되면서 비극적으로 바뀐다. 너무나 무거워 보이는 ‘죽음’이란 문제를 웃으면서 대면하는 애나의 모습은 세라 룰이 추구하는 ‘코미디’를 잘 보여준다.

<깨끗한 집>의 연습 사진. ‘완벽한 농담’을 들려주고 있는 마칠지와 이를 듣고 있는 애나의 모습
<깨끗한 집> 공연 사진. 마칠지가 들려준 ‘완벽한 농담’을 듣고 웃고 있는 애나

 

세라 룰의 코미디

“코미디언이 사람들을 웃게 하는 이유를 성적인 은유로 설명하고 이를 남성적인 성적 공격성의 표출이라 보는 이가 있어요. 코미디에 대한 제 생각은 정반대예요.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진실로 인정하는 것, 그게 희극적일 수 있어요. 비극적이면서도 기괴망측한 인생은 그 자체로 웃기거든요. 웃음은 일종의 ‘받아들임’입니다.”

- 세라 룰의 인터뷰 중

<깨끗한 집>의 공연 사진. 오랜 소동 끝에 집이 더러워진 2막 후반부의 장면이다

기존의 전통적인 유머가 상대를 깎아내리고 공격하는 데 반해 세라 룰의 코미디는 오히려 자신의 비극적인 인생을 받아들이고 따뜻하게 바라보도록 한다. ‘내’ 안에 있던 끔찍한 이야기와 슬픔을 뱉어내고 이를 다시 사랑스럽게 품어내는 과정이야말로 세라 룰의 코미디가 갖는 에너지다.

“우리 엄마가 한번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마칠지, 좋은 농담을 하려면, 네 문제는 지극히 작고 세상은 지극히 크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엄마는 또 말했어요. 만약 여성들이 더 많은 농담을 알고 있다면 이 세상은 더욱 정의로운 곳이 될 거다.”

- <깨끗한 집> 중 마칠지의 대사

<깨끗한 집>의 마지막 장면. 애나를 위해 달려온 찰스가 레인으로부터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여기서 ‘농담’이란 그저 단순하게 웃고 넘기는 행위가 아닌, 철학적이고 심오하면서 인생에 대한 지혜가 담긴 행위다.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상처들을 가볍게도 무겁게도 아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 자체로 웃긴(혹은 슬픈)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고자(애나의 경우, 끝내고자) 하는 의지적인 행동이다.

<깨끗한 집> 중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웃고 있는 마칠지, 애나, 버지니아, 레인의 모습

무엇보다 세라 룰의 코미디에선 여성이 농담의 주체가 된다. 기존에 여성은 농담의 대상이자 소재로 소비됐던 것과 달리 그의 작품 세계에선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여성들이 모여들어 코미디의 역학을 만들어낸다. 브라질에서 온 10대 마칠지, 가정주부인 50대 버지니아와 유능한 의사 레인, 아르헨티나 출신인 70대 애나 등 <깨끗한 집>에 모여든 인물들은 인종, 나이, 계급까지 다른 여성들이다. 그들은 모두 치명적인 결점을 갖고 살아가고 있으며 때론 서로 들들 볶고 싸우기도 한다. 그런 모습 때문에 관객은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하지만 이는 결코 그들을 비웃거나 단죄하는 웃음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단점마저 사랑스럽고 유머러스하게 바라보고 ‘나’ 자신의 결점을 함께 떠올리며, 그마저 함께 품어보고자 하는 웃음이다. 다양한 여성들이 모여 그들의 ‘희비극’적인 인생을 나누고 서로 공감되는 지점을 찾아가는 것, 그리고 서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함께 웃는 것. 그것이 바로 세라 룰이 관객과 나누고 싶던 코미디의 힘이지 않을까.

 

필자 소개
Jude (김유영)
텅 빈 무대와 백 스테이지, 사람들 간의 복작거림이 좋아 오랫동안 무대 근처에서 머물고 싶은 아마추어 연출가입니다. ‘아마추어’의 어원은 Amor(사랑)에서 비롯됐다는데, 그 애정 어린 시선을 간직해 공연, 영화, 책 등 다양한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문화예술 큐레이터를 꿈꾸고 있습니다.

 

Writer

소소한 일상을 만드는 주위의 다양한 것들을 둘러보길 좋아합니다. 무엇보다 ‘이야기’들엔 사람들의 일상을  단단하게 지켜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믿음을 갖고 공연, 영화, 책 등 여러 장르의 작품을 소개해, 사람들의 일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문화예술 큐레이터가 되길 꿈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