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필름 카메라 사진을 모으는 사람, 작은 필름 영화관에서 막 조명이 꺼지며 영화가 시작될 때 작은 전율에 몸을 떨어본 사람, 새벽녘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다 우연히 흘러나오는 노래를 홀린 듯 따라 불러본 사람. 그런 사람들은 전부 ‘아날로그 감성’을 아는 사람들이다.

출처 – 트위터 @yawoori 

그런데 최근엔 이런 먹먹하고 아련한 감성을 ‘오글오글’하다고 일축해버리며 감정의 솔직함에 난색을 보이는 시선이 짙다. 일기장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싶은 섬세한 감성에 대한 시선이 폭력적으로 되어버린 사실은 조금 씁쓸하다.

하지만 세련된 방식으로 그 감수성을 색다르게 표현하는 유튜버들이 있다. 단순히 2차 창작의 비주류 생산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감각적인 방법으로 ‘아날로그 감성’을 나르는 이들이다. 스산한 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잊혀진 아날로그 감성의 영상 몇 개를 소개한다.

 

I’m cyborg but that’s ok

음악 Cigarettes After Sex ‘Apocalypse’, 영상 <베로니카의 이중생활>(1991)

유튜버 I’m cyborg but that’s ok(이하 cyborg)는 최신 인디 음악 위에 오래된 영화 영상을 편집하는 비디오 에디터다.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흑백영화 또는 아는 사람만 아는 불후의 명작을 주로 다루는데, 여기엔 대체로 높은 이해도가 필요한 작품이 많다.
<까마귀 기르기>(1976) <학이 난다>(1957) <네 멋대로 해라>(1960) 등과 같이 조금 오래된 작품에서부터, <두더지>(2011)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2004) <네온 데몬>(2016)까지. 그가 선택한 영화들은 시대와 취향을 넘나들지만 아름답고 비범한 미장센으로 시선을 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음악 Mac DeMarco ‘Blue Boy’, 영상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2004)
음악 Youth Lagoon ‘17’, 영상 <황무지>(1973)

유튜버 Cyborg의 비디오가 기존 팬들이 만들어 낸 팬 비디오와 다른 점은 그의 작업은 원작에 기대어 있지 않은 채, 그만의 느낌으로 편집돼 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구독자는 그가 다루는 영화와 음악을 전혀 몰라도 상관없다. 오히려 원작을 몰랐을 땐 선입견 없이 그의 작업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비디오에선 아련한 사랑 이야기의 영화 장면과 기계음 가득한 일렉트로닉 음악이 하나가 된다. 파격적이며 감각적이다. 영상 비주얼 하나하나가 리듬에 맞게 쪼개진 작업물을 감상할 때는 알 수 없는 쾌감에 젖는다. 그는 예전 영화를 감상할 때 느꼈던 아득히 먼 아련함을 탁월하게 표현할 줄 안다. 더불어 그는 Cigarettes After Sex, BEACH HOUSE, Sufjan Stevens 등 사람의 맘을 녹인다는 멜로우 인디팝을 주로 활용한다. 마음에 쥘 수 있는 아련한 끈이라도 있다면 꼭 붙잡고 푹 파묻히고 싶을 때, 그의 비디오는 알 수 없는 그 아련함을 쥐여주며 같이 즐기자고 말한다.

I’m cyborg but that’s ok 유튜브 채널

 

Just Some Video

음악 Lorde ‘Hard Feelings’ / 영상 <빌어먹을 세상 따위>(2017)

유튜버 Just Some Video의 비디오 ‘Lorde - Hard Feeling’은 2천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유튜버들의 비디오 에디팅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그가 선택하는 영상 매체는 더욱 거침없다. 애니메이션 <릭 앤 모티> <코렐라인> 등에서 TV 시리즈 <빌어먹을 세상 따위> <런던 스파이> 등 한 가지에 고정되지 않는 대범함이 있다. 앞서 소개한 유튜버 Cyborg의 비디오보다 더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개성이 엿보인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통통 튀는 매력과 강렬함을 느끼고 싶다면 그의 비디오를 추천한다.

음악 Lana Del Rey ‘God Knows I Tried’ / 영상 <셔터 아일랜드>(2010)
음악 Lana Del Rey ‘Florida Kilos’ / 영상 <화이트 걸>(2016)

특히 그는 Lana Del Rey의 노래에서 느껴지는 퇴폐하고 몽환적인 감성을 탁월하게 표현해낸다. Lana Del Rey의 음악적 세계관에서 느껴지는 죽음 충동 너머의 강한 에너지를 그의 비디오에서 감상할 수 있다. 같은 영화가 한 유튜버의 손에선 욕망 넘치는 파토스의 향연으로, 다른 유튜버의 손에선 가슴 떨리는 찰나의 아름다움으로 표현된다. 이것이 새로운 비디오 에디팅 세계의 ‘참맛’이라고 할 수 있다.

Just Some Videos 유튜브 채널

 

carlosocarnero

음악 BEACH HOUSE ‘Space Song’ / 영상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안정적인 작업을 선보이는 carlosocarnero의 비디오다. 그는 앞서 소개한 다른 유튜버들보다 더 ‘마이너한 감성’을 잘 만질 줄 안다. 게다가 그는 원작의 내용과 감성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살려낸다. 그의 작업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영상과 사운드의 절묘한 조화다. 그의 비디오를 처음 접한 네티즌은 ‘이 비디오가 오피셜 뮤직비디오인 줄로 알았다’며 음악과 영상의 완벽한 매치를 칭찬한다.

음악 Homeshake ‘Love is Only a Feeling’ / 영상 <택시 드라이버>(1976)

carlosocarnero 유튜브 채널

 

형언하기 어려운 특별한 감성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만큼 예민하고 탁월한 표현 능력을 지녔다는 얘기다. 아득한 심연을 떠다니는 감정을 유치하다고 비난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 ‘오글거린다’는 감각, 그 떨리는 감성은 자유롭고 아름다운 예술적 표현의 가능성이다.
이를 억압하지 말고 맘껏 더 솔직해지자. 이 자연스럽고 낭만적인 몽상의 비디오들을 감상하며 실컷 설레자.

 

메인 이미지 영화 <천밀밀>(1996) 스틸컷(i’m cyborg but that’s ok 채널 ‘The Walters - I Love You So’ 썸네일) 

 

 

※ 위에서 소개한 유튜버들의 창작물은 ‘원저작물을 기초로 하되 원저작물과 실질적 유사성을 유지하고 이것에 사회 통념상 새로운 저작물이 될 수 있을 정도의 수정·증감을 가하여 새로운 창작성을 부가’한 ‘이차적 저작물’로 판단해 저작권법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다만 계정의 유튜버가 외국인들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2018년 1월 16일 업데이트 된 ‘유튜브 창작자 보호 변경 사항(Additional Changes to the YouTube Partner Program(YPP) to Better Protect Creator)’에 따라, 위의 창작물로 인한 수익창출이 제한되고 있음을 알립니다. 즉, 위 창작물은 유튜브 측이 허가한 ‘소스 자료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인 공정 사용'에 간주되어 저작권법에 저촉되지 않으며, 게시가 가능한 점을 알립니다. 그러나 유튜브의 음악 정책에 따라 ‘Indila - Dernière Danse’와 ‘Kavinsky – Nightcall’의 경우, 유튜브에서 사용할 수 없는 음원임을 확인하여 해당 기사에서 삭제함을 전합니다.

 

 

Writer

나아가기 위해 씁니다. 그러나 가끔 뒤를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