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시장을 파헤치고 찾아간 길종상가엔 막상 구경할 것도, 살 수 있는 것도 없다. 다만 그곳에서 가공을 거쳐 탄생한 온갖 필요한 것들이 바깥에서 톡톡히 제 역할을 할 뿐이다. 요긴하고 예쁜 그것들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당장에 노하우 같은 것을 묻고 싶지만, 먼저 길종상가 가공소의 주인을 박길종과 박가공 둘 중 어느 것으로 불러야 좋을 지부터 얘기를 꺼냈다. 물론 상냥한 주인은 어느 것도 괜찮다고 했지만, 가공소를 안팎으로 살펴보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박‘가공’이야말로 박길종의 직업적 정체성을 온전히 대변하는 이름임을 깨닫게 된다.

 

길종상가의 박길종 씨는 가공소의 박가공으로도 알려져 있어요. 각각 어떤 의미고,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하나요? 

만나는 사람들이 어떤 이름으로 부르는지는 상관없어요. 길종상가를 시작할 때 1년 동안은 저 혼자 했거든요. 그때 길종상가의 대표는 박길종이고, 가공소는 박가공이라는 사람이 맡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한 명이 아닌 여러 사람이 있는 것처럼 재미삼아 붙인 거예요. 사람들이 진짜 그렇게 믿고 있다가 나중엔 결국 동일 인물이란 걸 알게 되죠.(웃음) 그 후에 다른 멤버들과 길종상가를 같이 운영하면서 저를 길종상가의 대표가 아닌 관리인으로, 가공소의 '박가공'으로 소개하게 됐어요.

 

'박가공'이 되기 전, 박길종 씨는 어떻게 '가공'을 시작하게 됐나요?

전공에 대한 오해를 많이 받는데요. 서양학과를 졸업했어요. 알다시피 그 분야는 취직도 어렵고 작가 생활만 하기에도 경제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에 졸업 후에 아르바이트를 이것저것 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곳이 목공 DIY 아카데미였어요. 당시 최저시급이 4,000원 정도였는데, 그곳은 5,000원을 준다고 되어 있었거든요.(웃음) 물론 미술 전공인 만큼 그림을 그리고 손으로 만드는 건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죠. 목공 교습도 하고 여러 물건을 만들어 판매도 하는 곳이었는데, 목공뿐 아니라 인테리어 공사 작업도 배우고 아주 다양한 경험을 했죠. 그때 어깨너머로 잡기술을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의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었네요.

 

전공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나요?

지금은 크게 여한은 없는 것 같아요. 페인팅을 배웠다고 해서 더 거창할 것까지는 없지만, 여전히 시안 같은 것은 항상 손으로 그리곤 해요. 컴퓨터를 잘 못하기도 하고요.

원래 '목공소'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가공소'가 됐어요.

초반에는 아무래도 가장 익숙한 재료인 나무를 주로 사용했어요. 그래서 '한다 목공소'라 부르기도 했는데 이름도 몇 번 바꿨네요. 원래 꼭 원목 가구만 만들겠다고 정해놓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점차 일하면서 기술을 터득하다 보니 상황에 따라서 필요한 재료를 쓰기 시작했죠. 지금은 오히려 나무로만 만드는 일이 드물어요. 금속이랑 아크릴을 많이 접목해서 사용하는 편이죠.

 

박가공 씨는 특히 일상의 소재를 독특하게 쓰는 경우가 많아요. 또 같은 재료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사용하기도 하고요. 그게 정말 기발한 것 같아요.

제가 고급 기술을 구사하는 건 아니에요. 할 수 있는 기술을 이용해서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을 디자인하는 거죠. 생각보다 단순해요. 작업 초반에는 재료비 절감 차원에서 종종 주변의 소재를 이용하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 재료를 이용해서 여러가지를 시도해보고자 했던 것 같아요.

▲ 더 센토르 쇼룸 '교자상 카운터'(2016)

더 센토르에 놓인 '교자상 카운터' 같은 경우도 길종상가 특유의 기발함이 돋보이는 작업이에요. 시장에 흔히 파는 교자상들이 전혀 다른 가구가 됐어요.

더 센토르 샵을 운영하는 예란지 디자이너가 워낙 동양적인 것을 좋아했고, 처음부터 교자상을 사용하고 싶다고 의뢰를 했어요. 그 의견을 바탕으로 교자상을 잘라서 접목하는 방식으로 만든 거예요. 이걸 보신 어느 디자이너가 이제껏 쌓아온 길종상가 노하우를 여기에 전부 접목한 것 같다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어요. 교자상과 유리, 금속, 조명까지 여러가지 소재를 쓰기도 했고, 말마따나 제 노하우를 최대한 집약해서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욱 재미있던 작업이에요. 

▲ 일민미술관 <언리미티드 에디션8> 설치물(2016)

이번 언리미티드 에디션에도 다양한 가공을 했는데, 특히 훌라후프로 만든 대기줄과 1층 위에 설치한 그물이 인상깊더라고요.

언리미티드 에디션 같은 경우는 기획자 이로 씨가 자유를 많이 주셨고, 시안을 보여주면 거의 한 번에 오케이 하셨죠. 다만 안전에 신경을 많이 쓰셨는데, 로비에 설치했던 그물망 같은 경우도 위층 관람객들이 물건 같은 것을 떨어뜨릴 염려가 있어 안전을 위해 설치하기로 한 거예요. 언리미티드 에디션 포스터 디자이너와 얘기하다가 문득 그물망 위에 다른 물건들을 올려놓으면 괜찮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바로 그물망 위에 대기줄에 썼던 훌라후프와 공, 호스 같은 것을 올려 놨죠. 새벽에 즉흥적으로 설치했는데, 다음 날 벽면에 독특한 그림자 같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와서 좋았어요.

 

박가공 씨의 아카이브에는 특히 공간과 관련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더욱 특별한 것 같아요.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공간이 있나요?

제주도에 있는 ‘양가형제’는 작업 기간도 그렇고 남다른 프로젝트였죠. 양가형제는 원래 서울에 계시던 두 형제 분이 제주도에 정착해서 만든 수제버거 가게예요. 예전에 냈던 길종상가 책을 보시고 기억하고 있다가 제주도인데도 서울에 있는 길종상가에 의뢰해 주셨어요. 원래 긴 기간동안 작업하는 편이 아닌데, 길종상가 멤버 다같이 제주도를 오가며 그렇게 긴 기간 작업한 건 처음이었어요. 2주에 한 번씩 내려가서 작업을 했죠. 저희는 기획과 세세한 작업들 위주로 맡고, 바닥이나 철골, 페인트 작업들은 다른 전문가들과 같이하다 보니 오래 걸리기도 했어요. 그만큼 추억도 많이 남고 즐거웠던 작업이에요. 양가형제 분들과 친해지기도 했고요. 저희가 제시한 레시피로 ‘길종버거’도 만들었어요. 사실 따지고 보면 ‘윤하버거’인데요, ‘다있다’의 김윤하 씨가 평소에 아보카도를 좋아해서 아보카도로 만드는 수제버거를 제시한 거예요. 처음엔 ‘이 버거가 과연 잘 될까?’ 생각했는데 요새 제일 인기래요. 참고로 길종버거가 제일 비싼 메뉴예요. 아보카도가 비싸거든요.(웃음)

▲ 양가형제 내부(2016)와 길종버거(출처-양가형제 인스타그램)

주문받아 제작하기 때문에 재료나 디자인, 수량도 그때마다 다르겠지만, 그래서 꼭 지키는 철칙 같은 것도 있을 것 같아요. 박가공 씨만의 작업 기준이 있나요?

상황에 따라서 작업과 결과물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에 굳이 ‘철칙’ 같은 건 없는 것 같아요. 초반에는 형태나 색감으로 저만의 스타일을 표현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거든요. 말그대로 맞춤제작이기 때문에 의뢰 받은 공간의 이름이나 로고, 의뢰인의 성향 등을 콘셉트에 반영하려고 노력하죠. 거기에 제가 생각한 비율, 형태와 콘셉트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오히려 가끔 제가 해보지 않았던 스타일과 방식을 요청하는 의뢰인을 만나면 더 재밌게 작업하는 것 같아요.

 

작업에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는 만큼, 아이디어의 원천도 다양할 것 같아요.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요?

예전부터 돌아다니면서 사물을 관찰하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아요. 특히 골목들을 다니다 보면 그곳에 오랜 시간 살아온 거주민들의 편리에 맞게 바뀐 모습들이 있어요. 오래된 집과 창문을 조금씩 개조하기도 하고, 밖에 놓인 의자와 담벼락에 무언가 덧붙여 있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서툴게 바꿔 놓은 그 모습들에 생각지도 못한 재미있는 센스가 많아요. 오히려 업계에 계신 분들은 잘 만들어진 제품들을 많이 보곤 하는데, 그런 것보다 실생활에서 발견한 소재들을 아이디어에 접목한 것이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가공소 외에 개인적으로 해온 ‘인력사무소’와 ‘걷다 사진관’도 정말 아이디어가 재미있어요.

걷다 사진관은 보광동에 있을 때 재미삼아 하던 거예요. 그쪽 오래된 동네에 독특한 풍경이 많은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핸드폰으로 찍었던 특이한 풍경들을 정리해서 올리곤 했죠. 지금은 안 한지 거의 몇 년 된 것 같아요. 인력사무소는 작년까지도 몇 건 했어요. 요청한 잡다한 일들을 가서 도와주는 거죠. 홈페이지 보면 아시겠지만, 초반에는 온갖 일을 했죠. 요새는 바빠서 거의 안 했어요. 가공소랑 길종상가 멤버들과 같이 하는 프로젝트에만 중점을 두고 있어요. 

그러고보니 박가공 씨 집에는 어떤 가공품이 있는지 궁금해요. 그런데 요리사들이 집에서는 막상 요리 안 한다고 하잖아요.

저도 그런 것 같아요.(웃음) 딱히 저를 위해 만드는 가구는 없어요. 2016년 3월에 이사를 했는데, 가구는 전에 쓰던 것 그대로예요. 제가 직접 만들기 보다는 대부분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것들을 그대로 쓰는 편이에요. 가끔 전시하고 남은 것들을 집에 갖다 놓고 배치만 바꿔서 쓰기도 하고요.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가 궁금해요.

딱히 그런 건 없는데요. 그때그때 주어진 작업들을 충실히, 재밌게 하는 것. 나중에 일 안하고 살 수 있게 하는 것?(웃음) 누구나 바라겠지만, 그냥 잘 먹고 잘 살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길종상가

홈페이지 bellroad.1px.kr
페이스북 www.facebook.com/KJarcade
박가공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parkgag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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