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가리’와 ‘행복’은 나란히 놓일 수 있을까. 미국에서 15년 가까이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유튜브 채널 익스플로즘 엔터테인먼트의 웹코믹 <청산가리와 행복(Cyanide&happiness)>은 부조화한 제목만큼이나 ‘졸라맨’ 같은 동화적인 캐릭터와 대조적인 지독한 블랙 유머로 유명하다.

워낙 인터넷 ‘밈(meme)’처럼 퍼져 있어 이미 이 그림체가 익숙한 사람도 있겠다. 2017년에는 ‘청산가리와 행복’ 캐릭터를 넣은 카드게임 ‘The C&H Adventure Game’이 1만5천 명에게 58만 달러의 모금을 모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 작품이 이토록 인기가 많은 비결은 무엇일까? ‘Funny as hell(죽여주는 재미)’의 세계를 소개한다.

'반대의 날(Opposite Day)' 에피소드 출처- 유튜브 캡쳐

 

1. 청산가리와 행복

<청산가리와 행복>에서 유명한 에피소드 중 하나인 ‘반대의 날(Opposite Day)’을 보자. 주인공이 ‘반대의 날’이라 외치며 바지와 부츠를 머리에, 티셔츠를 다리에 끼우며 그 상태로 신문을 신문 배달부에게 돌려준다. 이어서 각종 직업을 가진 이들의 ‘반대의 날’을 보여주는데, 아기에게 정장을 입혀버리고 자신은 젖병을 들고 요람에 눕는 직장인, 자른 나무통을 다시 붙이는 목수, 급기야 달걀을 다시 닭에게 끼워 넣는 사육사가 등장한다. 그러더니 스트립 걸이 남성 관객에게 돈을 뿌리고, 응급요원이 행인을 구타하고, 장의사가 시체를 꺼낸 자리에 생사람을 묻고, 의사가 환자 대신 자신의 가슴을 째고, 소방원들이 물 대신 불을 뿌린다. 결국 주인공은 밖을 나가지 않는다는 결말이다.

잔인함은 물론이고 아동 학대, 동물 학대라고 불릴 만한 요소들도 많지만 강렬한 느낌으로 단숨에 다른 에피소드까지 보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그러면 공통적으로 불편하면서도 어딘가 웃기고, 기괴하면서도 어딘가 기시감이 들게 한다. 낙태, 자살, 패륜, 에이즈 등 민감한 주제를 지독한 유머로 건드리는 것이 <청산가리와 행복>의 정체성이자 인기의 원천이다.

 

2. 괴상한 유래, 괴상한 작가들

<청산가리와 행복>의 유래도 ‘병적’이다. 4명(현재는 3명)의 제작자 중 한 명인 크리스 윌슨이 16세 때 패혈성 인두염에 걸려 집에 꼼짝없이 틀어박혀 있어야 할 때 끄적거린 낙서가 시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윌슨은 2004년 자신의 만화를 모아 ‘자살 막대(Sticksuicide)’라는 사이트를 만들어 업로드한다. 그리고 이 사이트에서 “막대 캐릭터로 폭력적인 죽음을 묘사하는 만화와 게임들”을 창작하는 데 전념한다. 이때의 습작들이 지금과 같은 작품들 속 ‘우울 정서’의 토대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2005년 ‘익스플로즘 넷’을 개설하고, 전설이 시작된다. ‘자살 막대’에서 ‘폭발’ 사이트로 옮겨간 데 대한 윌슨의 언급이 인상적이다. “죽음을 다루는 유머를 졸업하고, 암과 창녀와 같은 더 발전된 주제로 넘어갔다.”

 

3. 이라크 전쟁 그리고 <쏘우>, <배트맨 비긴즈>, <스타워즈>

로버트 그린왈드 감독의 <언커버드 - 이라크 전쟁>(2004)

13년째 꾸준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작품이라면, 그 사회적 배경 역시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자살과 질병, 폭력, 패륜, 혐오를 다루고 있는 <청산가리와 행복>은 윌슨이 처음 ‘막대 캐릭터’를 끄적이던 때로부터 불과 일 년 전 발발한 이라크 전쟁의 영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청산가리’는 사담 후세인이 쿠르드족 학살에 사용하기도 했던 테러 전용 독극물이고, 사이트 이름 ‘익스플로즘’은 ‘폭발’을 뜻한다는 점에서 더욱 전쟁의 냄새가 짙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2001년 911테러 직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테러리스트와 연루돼 있고,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미국 내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의 주장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고, 이라크에서 자행된 미군의 비인도적인 행위들 그리고 약 9천억 달러(약 1천조 원)에 달하는 전쟁 비용은 미국의 리더쉽과 국력을 크게 훼손한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이는 <청산가리와 행복>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할리우드 대작에서 그 영향을 고스란히 살필 수 있다.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2005)

우선 <스타워즈>. 2005년은 루카스 필름이 제작한 스타워즈 시리즈의 완결편이 개봉된 해다. <스타워즈>는 ‘미국의 건국 신화’, ‘미국의 삼국지’라고 불릴 정도로 영화 이상의, 미국인들의 자부심과 정신이 집대성된 작품이다.

이 <스타워즈>가 디즈니가 인수해 다시 개봉한 2015년이 될 때까지 완결을 지었다는 것은, 미국 신화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고 매듭지어졌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위대함을 더 말할 수 없는 신화는 더 이상 진전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지 루카스 감독은 제58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스타워즈> 완결편을 최초 공개한 뒤 마련된 기자회견에서 작품에 대해 “정치적인 맥락이 숨어 있다”며 “미국적 공화국이 나폴레옹이나 히틀러 같은 인물의 등장으로 국제적 제국이 되어버리는 역사의 악순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즈>(2005)
제임스 완 감독의 <쏘우>(2004)

그다음으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의 시작인 <배트맨 비긴즈>, 스릴러의 역사를 다시 쓴 <쏘우>의 개봉이 있었다. 기존 사회 테두리의 경찰과 법을 넘어서 치안과 정의를 수호하는 영웅과 절대 악 조커의 탄생을 그린 배트맨 시리즈, 아무런 정보가 주어지지 않은 극한 상황이 유발하는 공포와 삶을 향한 비극적 의지를 그려낸 쏘우 시리즈 역시 이라크 전쟁과 테러리즘의 발발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들의 분위기는 <청산가리와 행복>에 조금씩 배어 있다.

 

4. “세상이 우울증을 겪는다는 걸 일깨울 필요가 있어.”

그렇다면 이 <청산가리와 행복>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청산가리와 행복> 작가와의 대화 자리에 참석한 나탈리아 다샨(Natalia Dashan)이라는 소년의 말을 참고할 만하다.

“이 범죄가 창궐하는 잿빛 도시에 세상이 우울증을 겪는다는 것을 일깨울 필요가 있으니까요.”

<청산가리와 행복> Via Explosm

이는 <청산가리와 행복>이라는 타이틀을 직접 언급한 초창기 작품에서도 가늠할 수 있다. 왼쪽이 “솜사탕 먹을래?”라고 묻자 오른쪽이 “뭐로 만들었는데?”라고 반문한다. 왼쪽은 잠시 생각하더니 “청산가리랑 행복”이라고 답한다. 오른쪽은 “행복이라고?!” 놀라더니 “끝내주는걸! 4번 먹을래”라고 말하는 내용이다. 먹지 말아야 할 솜사탕을 ‘행복’이란 단어가 포함됐다는 이유로 아주 많이 먹겠다는 오른쪽의 바보 같은 사고에 실소가 나오면서도, 행복이라는 말에만 집착하며 불행에 가까워지는 모습 혹은 그 행복이나마 누리겠다는 모습은 어딘가 사회의 단면을 떠올리게 한다.

‘헬조선’이라 불리는 우리 사회에서도 힐링 서적과 감성 글귀가 유행하고, 웃는 ‘셀카’들이 넘쳐나지만, 과연 힐링과 행복에 더 가까워져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우울을 흠씬 긍정해버리고 남는 쓴웃음에서 행복은 아니더라도, 기묘한 안도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청산가리와 행복>이 조금 도움이 될 것이다.

 

Writer

지리멸렬하게 써 왔고, 쓰고 싶습니다. 특히 지리멸렬한 이미지들에 대해 쓰고 싶습니다. 사진이나 미술 비평처럼 각 잡고 찍어낸 것이 아닌, 그 각이 잘라낸 이미지들에 대해. 어릴 적 앨범에 붙이기 전 오려냈던 현상 필름 자투리, 인스타그램 사진 편집 프레임이 잘라내는 변두리들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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