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로이드 쿼텟’(Charles Lloyd New Quartet)의 <A Night in Copenhagen>(1983)

1985년 2월 뉴욕 ‘타운 홀’ (town hall) 공연. 1939년 설립 이래 재즈 황금기를 이끌었던 블루 노트 레코드의 역사를 기념하는 이 무대에 색소포니스트 찰스 로이드가 누군가를 품에 안고 등장했다. 동료 연주자에게 안긴 남자는 고작 36개월 아이 정도의 키를 지닌 피아니스트 미셸 페트루치아니(Michel Petrucciani)였다.

찰스 로이드가 직접 페트루치아니를 안고 무대에 올랐던 ‘타운 홀’ 공연은 다큐멘터리 <One Night with Blue Note>에 고스란히 담겼다. 영상은 미셸 페르투치아니가 찰스 로이드, 세실 맥비(Cecil Mcbee), 잭 디조넷(Jack Dejohnette)와 함께 선보인 ‘Tone Poem’

1962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미셸 페트루치아니는 ‘골형성 부전증’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선천성 질환으로 인해 보통 체격으로 성장할 수 없었다. 다 자란 키가 90cm를 겨우 넘었고, 몸무게는 30kg이 안 되었다. 일생 동안 수많은 뼈 골절을 당하기도 했다. 피아노보다 키가 작아 건반이 목과 가슴 부위에 겨우 걸쳤고, 부러지기 쉬운 뼈로 인해 피아노에 앉은 채 무대로 옮겨졌다. 페달을 사용할 수 없어서 발을 페달에 연결하는 특수 장치를 사용해야 했다.

하지만 신체의 한계와 피아노 연주 능력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재즈 기타리스트였던 아버지로부터 클래식 피아노와 음악을 배웠던 그는 아버지의 재즈 음반을 들은 뒤 이를 곧바로 연주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빌 에반스(Bill Evans), 키스 자렛(Keith Jarrett) 등 거장들을 존경하여 재즈 피아노에 도전했고, 13세 때 열었던 첫 콘서트 이후 드럼 연주자 알도 로마노(Aldo Romano)와 트리오를 결성해 파리에서 활동하며 점차 이름을 알렸다.

알도 로마노, 후리오 디 카스트리(Furio Di Castri)와 함께 이탈리아 로마에서 녹음한 앨범 <Estate>의 타이틀 곡 ‘Estate’. 갓 스무 살이 된 젊은 페트루치아니가 눈에 띈다

미셸 페트루치아니가 본격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1982년 미국에 건너가 색소폰 연주자 찰스 로이드를 만난 이후다. 찰스 로이드는 그가 존경했던 키스 자렛을 발굴한 장본인이었지만 당시 유행에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고 재즈계에서 사라졌었다. 찰스 로이드의 제안으로 쿼텟에 합류한 페트루치아니는 각종 공연과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서 호평을 받으며 세계를 누볐다.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 웨인 쇼터(Wayne Shorter), 짐 홀(Jim Hall) 등 당대 많은 명연주자와 함께였다.

미셸 페트루치아니 미국 활동 시기의 정점으로 평가받는 <Power Of Three>(1986). 짐 홀, 웨인 쇼터와 트리오를 결성해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했던 실황이 담겨 있다

이후 미셸 페트루치아니는 1982년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우수상을 받고, 1983년 <LA타임스> ‘올해의 재즈맨’, 1984년 재즈 전문지 <다운비트> ‘올해의 뮤지션’에 선정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동시에 수명이 6년 정도 남았다는 시한부 선고도 받았다. 그런데도 페트루치아니는 특유의 긍정적이고 힘찬 연주를 멈추지 않았고, 의사의 예상보다 무려 9년을 더 살며 재즈 피아노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그는 말년에 매년 100회 이상 공연을 했고 항상 인터뷰가 그치지 않았다. 1994년 프랑스는 이런 그에게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여했다.

<Conférence de Presse>(1994) 해먼드 오르간 연주자였던 에디 루이스(Eddy Louiss)와 함께 한 앨범이다. 해먼드 오르간의 독특한 사운드가 미셸 페트루치아니의 경쾌한 건반 연주와 잘 어울린다

페트루치아니가 듀크 엘링턴을 좋아했던 것은 그가 여러 앨범과 무대에서 ‘Caravan’, ‘Take The A Train’과 같은 듀크 엘링턴의 대표곡을 즐겨 연주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1993년에는 아예 듀크 엘링턴을 주제로 한 앨범 <Promenade With Duke>을 녹음했다.

앤소니 잭슨(Anthony Jackson), 스티브 겟(Steve Gadd) 과 함께 한 1998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공연. 영상은 미셸 페트루치아니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의 모습으로 DVD <Trio Live in Stuttgart>(2008)에 담겨있다

그의 음악은 밝고 낭만적인 매력으로 가득하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높은 수준의 기교로 가득하지만 난해하기보다 늘 정겹고 유쾌한 분위기가 공존한다. 실제로 미셸 페트루치아니는 “유머와 웃는 것, 농담과 어리석음을 사랑한다. (중략) 더 많이 웃는 것이 모든 약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첫 아내이자 가장 오랜 파트너였던 에를린다 몬타뇨(Erlinda Montaño)

매 순간 열정을 다했던 페트루치아니도 운명을 피하지는 못했다. 1999년 골형성부전증에 걸린 사람이 쉽게 걸린다는 폐병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그의 짧고 굵은 37년 생애는 <미셸 페트루치아니에게 보내는 편지>(1983), <미셸 페트루치아니와의 논스톱 여행>(1995) 등 3편의 다큐멘터리로 남았다. 그중 가장 최근에 만든 <미셸 페트루치아니, 끝나지 않은 연주>(2011)는 페트루치아니와 같은 유전적 질환과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아 기타리스트가 된 알렉산드르 페트루치아니(Alexandre Petrucciani)의 인터뷰도 기록하고 있다.

마이클 레드포드(Michael Radford) 감독의 <미셸 페트루치아니, 끝나지 않은 연주> 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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