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쇼미더머니> 시즌이 되면 한국의 힙합 씬은 뜨거워진다. 단순히 팬들의 관심도가 높아지는 걸 넘어, 래퍼들도 SNS를 통해서든 공연을 통해서든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과거 <쇼미더머니>가 래퍼들로부터 얼마나 큰 비난을 받았는지 생각해보면 지금 같은 분위기가 놀랍기까지 하다. 힙합 씬 발전에 도움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 국내 힙합 씬을 얘기하면서 <쇼미더머니>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실제로도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쨌든 <쇼미더머니>에는 다양한 래퍼가 출연하고, 매 시즌의 꽃은 단연 우승 래퍼다. 올해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많은 실력자가 출연해 우승을 놓고 경연을 벌이고 있다. 교포 출신으로 독특한 바이브를 뽐내고 있는 래퍼는 물론, 트랩에 유독 강세를 보이며 강렬한 모습을 보이는 래퍼도 있다. 그런가 하면, 완성도 높은 음악뿐 아니라 비주얼적으로도 트랜디한 모습을 보여 주목받는 래퍼도 있다. 이번 글에서는 현재 <쇼미더머니> 출연자 중 우승 후보로 꼽히는 래퍼 셋을 간단히 살피고, 그들이 영향받은 외국 래퍼를 함께 소개하려고 한다. <쇼미더머니>에 출연하는 래퍼가 생소한 시청자들에게 간단한 가이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나플라 – 우탱 클랜

출처 - MKIT RAIN RECORDS

메킷레인 레코즈(MKIT RAIN RECORDS) 소속 나플라(Nafla)는 이번 시즌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손꼽히는 래퍼다. 미국 LA에서 활동하다가, 한국으로 넘어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지는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나플라의 성장세는 누구보다 빨랐다. 한국에 와 곧바로 다이나믹 듀오의 앨범에 피처링을 하는 걸로 모자라, 아이돌 가수들과도 꾸준히 작업했다. 방송에서 비치는 것처럼, 나플라는 둔탁한 붐뱁 비트에 뱉는 랩에 능하다. 실력이 워낙 뛰어나기에 다른 비트도 잘 소화하지만, 무거운 드럼 베이스가 두드러지는 곡에 랩했을 때 특유의 발음에서 오는 청각적 쾌감이 배가된다. 나플라가 처음 인기를 얻기 시작한 계기가 된 ‘Wu’는 물론이고 ‘멀쩡해’, ‘Locked And Loaded’까지 모두 붐뱁 비트 곡이었다.

나플라 ‘Wu’
사진 - WU-TANG CLAN MANAGEMENT

나플라 음악의 뿌리가 된 래퍼는 누구일까. 나플라는 비록 LA 출신이지만, 음악적으로는 동부 래퍼들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특히 가장 두드러진 영향을 준 아티스트라면, 붐뱁을 대표하는 그룹 우탱 클랜(Wu-Tang Clan)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탱 클랜은 아홉 명의 멤버로 구성된 힙합 그룹이다. 과거 서부의 갱스터 힙합이 씬의 대세이던 시절, 붐뱁을 정체성으로 동부 힙합 씬을 부흥시킨 그룹이다. 아홉 멤버 각자가 굉장한 랩 실력과 컨셉을 가지고 있었기에, 여전히 많은 래퍼가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로 우탱 클랜을 지목한다. 이들은 앞서 잠시 설명한 것처럼 붐뱁 날 것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준 그룹이다. 심지어 그들의 데뷔 앨범 <Enter the Wu-Tang (36 Chambers)>은 훔친 싸구려 마이크와 최소한의 장비만을 사용해 녹음한 앨범이다. 그만큼 우탱 클랜의 음악은 둔탁하고, 거칠다.

Wu-Tang Clan ‘C.R.E.A.M.’

나플라의 음악을 들어보면 이런 둔탁한 모습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사운드적으로는 현대에 맞게 깔끔해졌더라도, 그의 랩 스타일은 우탱 클랜의 음악을 듣는 것처럼 거칠다. 실제로 나플라의 곡 ‘Wu’는 사운드적으로도, 비주얼적으로도 우탱 클랜을 오마주한 곡일 정도로 그들을 향한 애정이 깊다. 특히 나플라는 멤버 중 이미 세상을 떠난 올 더티 바스타드(Ol’ Dirty Bastard, 이하 ODB)를 가장 좋아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종종 랩의 피치를 높여 목소리를 뒤집는 듯한 능청스러운 플로우을 선보이는데, 이러한 모습에서 ODB에게 받은 영향이 보인다. ODB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능청스러운 플로우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녹여내 음악으로 활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Ol' Dirty Bastard ‘Shimmy Shimmy Ya’

 

 

쿠기– 릴 펌

쿠기(Coogie)는 말 그대로 혜성 같이 나타났다. 지금은 잠시 활동이 뜸한 빌 스택스(BILL STAX)의 아낌없는 지원을 등에 업고 빠르게 성장 중인 래퍼다. 쿠기가 처음 리스너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한 건 ‘마이크 스웨거’에 출연하면서부터다. 당시 빌 스택스와 함께 출연했는데, 프로그램에 신인이 출연한 건 이례적이었기에 더 큰 관심을 받았다. 출연 이후 인맥 힙합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곡 ‘스즈란’을 비롯한 작업물이 히트를 치고, 현재 <쇼미더머니>를 통해 자신의 진가를 입증하며 논란을 잠재우고 있다. 쿠기는 앞서 소개한 나플라와는 정반대의 음악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빠른 템포의 트랩 비트에 주로 작업하고, 둔탁하기보다 하이톤의 날카로운 래핑을 선보인다. 또 요즘 트랩 래퍼의 필수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추임새까지 자신의 음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청각적으로 완성도 높은 작업물을 공개하고 있다.

쿠기 ‘Movin' & Movin' (Ft.Bla$eKid)’
Lil Pump ‘Gucci Gang’ MV 캡처

쿠기가 음악적으로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지는 않았지만, 여러모로 릴 펌(Lil Pump)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거로 보인다. 릴 펌은 본토 씬에서 등장부터 큰 이슈가 됐던 래퍼다.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사운드와, 랩인지 소리치는지 모를 정도의 난해한 보컬, 주기적으로 “우”를 외치는 독특한 추임새는 리스너들에게 비난받기 일쑤였다. 하지만 고작 1, 2년 사이 릴 펌은 자신의 스타일을 힙합 씬에 그대로 정착시켰다. 웅얼거리는 듯한 랩을 하는 멈블 래퍼가 수면위로 떠오른 데 크게 기여하기도 했고, 깊이 있는 음악이 아닌 추임새와 자극적인 사운드만으로 주류가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도 했다.

Lil Pump ‘Boss’

쿠기의 음악을 들어보면, 몇몇 부분에서 릴 펌의 영향을 받았다고 짐작할 수 있다. 가사 중간중간 추임새를 넣는 부분이나, 다양한 색감을 사용하는 뮤직비디오에서도 비교적 닮은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랩을 다소 복잡한 트랩 비트에 하이톤으로 뱉는다는 측면에서도 공통점이 있고, 실제로 톤이 비슷하기도 하다. 하지만 릴 펌이 음악 전체적인 사운드가 자극적으로 들리게 작업하는 것과 달리, 쿠기는 훨씬 더 랩 자체에 초점을 맞춰 작업하는 모양새다. 박자를 더 잘게 쪼개고, 그 안에서 다채로운 플로우를 뽐낸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아직 큰 작업물을 발매하지 않은 쿠기가, 앞으로 릴 펌 외에 어떤 래퍼를 자양분으로 한 음악을 선보일지 기대되기도 한다.

Lil Pump ‘ESSKEETIT’

 

 

키드 밀리 – 에이셉 라키

출처 - Indigo Music

래퍼가 인기를 얻는 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최근엔 음악뿐만 아니라 외적인 요소도 상당히 중요해졌다. 키드 밀리(Kid Milli)는 이를 잘 어필해 브랜딩에 성공한 래퍼다. 평소 SNS와 방송 등을 통해 드러낸 독특한 패션은 키드 밀리를 말할 때 빼놓으면 안 되는 요소가 됐다. 자신이 속한 크루 ‘코지 보이(Cozy Boys)’의 멤버들과 함께 논디스클로즈(Nondisclothes)라는 패션 브랜드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더불어 키드 밀리는 음악적으로도 뚜렷한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애니메이션이나 일본의 아키하바라같이 힙합 씬에서 보기 힘든 소재로 음악을 만들기도 한다. 랩을 하는 데 있어 플로우를 상당히 독특하게 타는데, 빠르게 랩을 하면서도 가사를 툭툭 끊어서 뱉는 플로우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마이크스웨거 ‘키드 밀리’ 편
사진 - Vittorio Zunino Celotto

키드 밀리는 에이셉 라키(A$AP Rocky)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여러 차례 밝힌 적 있다. 에이셉 라키는 미국 힙합 씬을 대표하는 래퍼이자 세계적인 패션 아이콘이다. 기존 힙합 씬에서 통용되던 ‘거칠고 남자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부순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특유의 유려한 래핑은 물론, 음악을 시각화시키는 능력 또한 상당히 뛰어나다. 실제로 뮤직비디오 제작은 물론이고 패션 사업, 예술 활동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며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고 있다. 짐작할 수 있듯, 음악적으로도 거친 모습을 강조하기보다는 유려하고 다채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가장 최근 발매한 앨범 <Testing>에서도 몽환적인 모습과 함께 실험적인 사운드를 선보이며 특정 스타일에 안주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키드 밀리 ‘10:41’

키드 밀리는 에이셉 라키와 비슷한 면이 많다. 음악적으로도, 비주얼 적으로도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고 있는 모습이 그렇다. 키드 밀리의 과거 작업물을 살펴보면 에이셉 라키의 색깔이 많이 묻어 나온다. 초기 작업물 중 하나인 ‘10:41’이라는 곡이 대표적이다. 에이셉 라키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묻어나오는 것은 물론,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찹드 앤 스크루드(Chopped and screwed) 기법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걸 볼 수 있다(여기서 찹드 앤 스크루드란, 일부러 보컬과 비트의 템포를 느리게 해 무겁게 늘어지는 사운드를 내는 믹스 기법이다). 비록 최근 작업물에서는 에이셉 라키의 영향에서 벗어난 듯한 모습이 보이지만, 키드 밀리의 음악적 뿌리가 에이셉 라키에서 비롯됐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A$AP Rocky ‘Ang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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