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unny Valentine’은 1937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Babes in Arms>에 삽입하기 위해 로저스 앤 하트(Rodgers & Hart) 작곡 콤비에 의해 창작되어, 지난 80여 년간 수많은 아티스트의 1,300여 앨범에 삽입된 명곡이다. 그중에서도 1950년대 초 게리 멀리건 쿼텟과 함께 연주한 쳇 베이커(Chet Baker)의 노래와 연주는 가장 유명해, 지난 2015년 미국 국회의사당 도서관에 영구히 헌정되었다. 쳇 베이커는 이 노래를 생애 수십 회나 녹음하며 자신의 우수에 찬 이미지와 음악 스타일을 대표하는 곡으로 널리 각인시켰다.

Chet Baker ‘My Funny Valentine’

쳇 베이커는 깔끔한 용모와 우수에 찬 보컬, 그리고 절제하는 듯한 트럼펫 연주로 일찌감치 웨스트 코스트 최고의 재즈 스타로 떠올랐으나, 마약 상용자와 바람둥이라는 오명과 함께 가족과 팬으로부터 버림받고 나락으로 떨어졌다. 말년에는 유럽에서 연주 생활을 이어가다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8년 암스테르담에서 홀로 죽음을 맞았다. 그의 대표곡들과 함께 굴곡에 찬 그의 인생을 세 가지 키워드로 살펴봤다.

 

제임스 딘을 닮은 청춘 재즈 스타

왼쪽부터 제임스 딘, 프랭크 시나트라, 빅스 바이더백

한 재즈 평론가는 그를 두고 “제임스 딘, 프랭크 시나트라, 빅스 바이더백을 하나로 합친 인물”이라고 했다. 잘 생기고, 노래를 잘하며, 거기에다 트럼펫 연주도 뛰어나다는 평이다. 어린아이 같은 용모에 냉소적인 미소 그리고 여성스러운 보컬은 전례가 없던 스타일이었다. 제대 후 찰리 파커, 스탄 게츠와 같은 재즈 스타의 콤보에 참여하였고, 제리 멀리건 쿼텟과 함께 한 ‘My Funny Valentine’이 히트하며 인기를 얻었다. 멀리건이 마약 소지로 체포된 후에는 직접 자신의 밴드를 이끌며 웨스트 코스트 재즈 신의 스타로 부상했다. 1950년대 초반 음악잡지의 독자 투표에서는 정상급의 트럼페터 마일스 데이비스와 리 모건을 제쳤을 정도다.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으나 배우보다 유랑연주 생활이 자신과 더 맞는다며 더 이상 연기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영화 <Hell’s Horizon>(1955)에 출연한 쳇 베이커

 

마약과 여성 편력, 그리고 폭행 사건

이태리에서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된 쳇 베이커(1960)

그의 마약 복용과 여성 편력은 해가 갈수록 심해졌다. 마약 소지에 따른 체포와 해외에서의 추방은 다반사였고, 수시로 여성들과 염문을 뿌리며 결혼 생활을 길게 이어가지 못했다. 그러다가 1968년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공연을 하던 중 마약을 구입하려는 과정에서 불량배들에게 쫓기게 되었다. 그는 도주하던 중 인근에 서 있던 차 안으로 피신했으나 차주는 그를 내쫓았고, 다시 붙잡혀 집단폭행을 당하며 한동안 연주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그는 주유소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었고, 의치를 해 넣고 오랫동안 연습을 하고 나서야 다시 무대에 나설 수 있었다. 그가 자신감을 갖고 재기에 나서는 데는 5년이 걸렸다.

<Chet Baker Sings>(1954)에 수록한 ‘I Fall in Love Too Easily’

 

암스테르담 호텔 방에서 홀로 맞이한 죽음

쳇 베이커가 사망한 암스테르담의 프린스 헨드릭 호텔(Hotel Prins Hendrik)

그의 말년에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유럽에서 지냈다. 마이너 레이블과 레코딩을 진행하거나 유럽을 순회하며 공연을 이어갔다. 그의 열혈 팬이었던 영국 가수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에게 트럼펫 연주자로 고용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3일의 금요일이었던 1988년 5월 13일 얼굴에 심각한 상처를 안은 채 그가 머물던 암스테르담 호텔방 아래의 거리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외부침입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경찰은 투신자살이나 실족사일 것으로 추정했으나, 그중 어는 것인지는 오늘날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창틀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쳇 베이커. 창틀에 앉아있다가 실족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의 시신은 미국으로 송환되어 L.A. 인근에 묻혔으나,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단 35명이었을 정도로 미국에서는 잊혀진 스타였다. 장례 비용은 그의 열정적인 팬이었던 패션 포토그래퍼 브루스 웨버(Bruce Weber)가 모두 물었다. 그가 생의 마지막 밤을 보낸 프린스 헨드릭 호텔의 210호실은 ‘The Chet Baker Room’으로 명명되었고, 호텔 입구에 그를 기리는 양각 현판을 볼 수 있다.

<It Could Happen to You>(1958)에 수록한 ‘Everything Happens to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