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 경찰 전화박스로 위장한 타임머신 ‘타디스’를 타고 온 우주를 날아다니며 시간의 시작과 끝을 넘나드는 시간 여행자, 모두가 닥터라고 부르지만 아무도 그 실제 이름을 모르는 자, 수도 없이 여러 번 지구를 구해내느라 온 힘을 다했던 자, BBC에서 1963년 11월 23일 첫 방송된 이래로 현재까지도 영국의 국민 드라마로 존재하는 SF 시리즈 <닥터 후(Doctor Who)>에 등장하는 주인공 ‘닥터’ 이야기다. 10월 7일 시즌 11의 방영을 시작한 <닥터 후>의 방대한 세계관을 자세히 짚어봤다.

 

1. <닥터 후>의 역사 및 ‘재생성(Regeneration)’이라는 설정

<닥터 후>라는 제목은 주인공인 닥터가 자신을 “닥터입니다(I’m the Doctor)”라고 소개하면 상대방이 “닥터 누구…?(Doctor Who…?)”라고 반응하는 데서 따왔다고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닥터 후>는 1963년 첫 방영 이후 2018년까지 무려 약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방영을 이어오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SF 시리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1990년부터 2004년까지 1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휴방 기간을 가졌던 적이 있어, <닥터 후>는 보통 1963년부터 1989년까지 방영된 총 26개의 시즌을 올드 시즌, 2005년부터 현재까지 방영된 10개의 시즌을 일컬어 뉴 시즌으로 구별한다.

10대 닥터와 12대 닥터의 ‘재생성’ 장면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닥터 후>가 방영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외계인인 닥터의 종족, 타임 로드(Time Lord)가 재생성을 할 수 있다는 설정 때문이다. 주인공 닥터는 위급한 상황에 처하여 죽음에 가까워지면 일종의 재탄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재생성을 하게 된다. 이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지식과 기억은 보존하되, 얼굴과 체격 등 겉모습은 전부 다 바꾸는 방식으로, 극 중 닥터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가 바뀌더라도 계속해서 닥터라는 인물이 극 중에서 설득력 있게 등장할 수 있게 하는 기발한 설정이다.

<닥터의 날(The Day of The Doctor)> 포스터

또한 이러한 설정을 살려 2013년에 방영된 50주년 스페셜 에피소드 <닥터의 날(The Day of The Doctor)>의 경우에는 10대 닥터 역을 맡은 데이비드 테넌트와 11대 닥터 역을 맡은 맷 스미스 등 여러 닥터들이 동시에 한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진풍경을 펼쳐 보이기도 했다.

 

2. 컴패니언(Companion)

<닥터 후>는 기본적으로 매 에피소드마다 새로운 외계인과 새로운 사건을 겪는 옴니버스의 형식을 취하다 보니 스토리가 워낙 방대하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외계 종족인 닥터와 지구인인 컴패니언이 함께 시공간을 넘나드는 여행을 하며 위기에 처한 지구와 우주를 구해내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등장한 닥터는 모두 백인 남성 지구인의 외형을 하고 있었기에, 함께 여행을 떠나는 컴패니언들 역시도 대부분 백인 여성인 경우가 많았다. 이는 닥터가 외계인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BBC의 제작 환경에 의해 지속된 설정으로, 그동안의 <닥터 후>에 대한 주된 비판 요인 중 하나였지만, 뉴 시즌이 계속 나오면서 개선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9대 닥터와 10대 닥터, 로즈 타일러

뉴 시즌의 주요 컴패니언들을 대략적으로 살펴보자면 9대 닥터인 크리스토퍼 에클스턴, 10대 닥터인 데이비드 테넌트와 함께 했던 ‘로즈 타일러’를 빼놓을 수 없다. 배우 빌리 파이퍼가 분한 로즈는 뉴 시즌의 첫 컴패니언으로, 10대 닥터와는 연인과 비슷한 느낌의 관계로도 발전했으며 이후의 스페셜 에피소드에도 여러 번 등장하는 등 뉴 시즌 전반에 걸쳐 주요 컴패니언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또한 처음 등장했을 때는 평범한 지구인이었으나 계속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11대 닥터와 에이미 폰드, 로리 월리엄스

11대 닥터인 맷 스미스와 함께한 컴패니언 ‘에이미 폰드’는 배우 카렌 길런이 연기했으며 <닥터 후>의 다른 컴패니언들과는 달리 어린 소녀이던 당시 닥터를 만난 경우이다 보니 닥터에 대한 강한 팬심과 동경을 품고 함께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에이미의 남자친구인 로리 월리엄스도 닥터와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닥터와 두 컴패니언들은 점점 남다른 깊은 유대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3. 다양한 외계 악당들

달렉(Dalek)

<닥터 후>에 등장하는 악역 외계인들은 대부분 지구의 정복 혹은 인류의 멸망 등을 꿈꾸며 지구로 침공해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시리즈 내내 닥터의 숙적으로 등장하는 종족으로 ‘달렉(Dalek)’을 꼽을 수 있다. 클래식 1시즌의 2편부터 등장해온 달렉은 전우주에서 최강이자 최악인 전투 종족으로 항상 "말살하라!(Exterminate!)”라는 말을 내뱉으며 달렉 종족 외의 모든 외계인들을 멸망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시간 전쟁에서 숙적이었던 타임 로드 종족 닥터에 대해 깊은 증오심을 품는 모습을 보인다.

사이버맨(Cyberman)
우는 천사(Weeping Angel)
사일런스(The Silence)

그밖에 <닥터 후>에는 달렉보다도 더 감정이 결핍된 채로 기계적으로 외부 종족을 업그레이드시키려는 사이버맨(Cyberman), 겉보기에는 천사 형태의 석상처럼 보이지만 관찰자가 눈을 돌리는 순간 공격적인 괴물로 변모하여 살아있는 생명체의 시간 에너지를 흡수하는 우는 천사(Weeping Angel),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지 않으면 같은 공간에 있어도 그 존재 자체에 대해서 잊게 만드는 사일런스(The Silence) 등 다양한 외계 악당들이 등장하여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4. 시즌 11에 최초로 등장하는 여성 닥터

13대 닥터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닥터 후>의 주인공 닥터는 그동안 백인 남성의 외형으로만 등장하였지만 곧 방영될 새로운 시즌에서는 여성 배우인 조디 휘테커가 13대 닥터로 발탁되어 화제를 모았다. 50년 만에 탄생한 최초의 여성 닥터라는 사실에 영국은 물론 전 세계의 후비안(닥터 후 팬들을 부르는 명칭)들이 열광하였으나, 한편으로 ‘여성’이 닥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발하는 반응도 존재했다. 이러한 성차별적인 반응들에 대하여 온라인 영어사전 사이트 ‘메리엄웹스터(Merriam-Webster)’는 “닥터라는 단어에는 성별이 없다(‘Doctor’ has no gender in English)”고 대응하기도 하였으며, 10대 닥터 역할을 맡았던 데이비드 테넌트 역시도 조디 휘테커의 캐스팅에 대해 지지하는 반응을 보였다.

시즌 11을 총괄하는 프로듀서 크리스 칩넬(Chris Chibnall)은 영국의 또다른 히트 드라마 <브로드처치(Broadchurch)>에서부터 함께 호흡을 맞춰온 조디 휘테커와 함께할 앞으로의 <닥터 후>에 대해 “나는 항상 13대 닥터로 여성을 맞이하길 원해 왔는데, 마침내 이런 결과를 얻게 돼 매우 기쁘다.”라고 밝혔으며, 당사자인 조디 휘테커 역시도 첫 여성 닥터를 맡게 된 소감으로 “엄청나게 압도적인 기분이다. 페미니스트로서, 여자로서, 배우로서”라고 답변하며 팬들의 기대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13대 닥터의 첫 등장 장면

<닥터 후>가 항상 끊임없는 모험을 추구하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였던 것을 떠올리면, 사실 이제서야 성별이 ‘여성’인 닥터가 등장했다는 것은 너무나 늦은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소녀들은 더 이상 자신들이 ‘컴패니언’이 되기만을 꿈꾸지 않아도 되며, 그 스스로가 ‘닥터’가 될 수 있으리라는 꿈을 품게 되었다.

<닥터 후> 시즌11 예고편

언젠가는 흑인 닥터, 동양인 닥터 등 더욱 다양한 모습의 닥터들이 등장할 수 있기를 바라며, 새롭게 시작될 새로운 <닥터 후>를 관심있게 지켜보자.

 

Writer

서울에서 살아가는 생활인이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노래로 지어 부르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 다른 낯선 세상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작업자. 다른 사람들의 작업을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유유'는 한자로 있을 '유'를 두 번 써서 '존재하기에 존재한다'는 뜻으로 멋대로 사용 중. 2018년 9월부터 그동안 병행 해오던 밴드 '유레루나' 활동을 중단하고, 솔로 작업에 더 집중하여 지속적인 결과물들을 쌓아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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