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서울재즈페스티벌에 허비 행콕(Herbie Hancock)과 함께 출연한 칙 코리아(Chick Corea, 1941~)는 관중들에게 “Hello, my country!”라고 인사했다. 재즈 아티스트 중 가장 많은 그래미 수상 기록(22회)을 보유한 최정상급 재즈 피아니스트가 혹시 오랜 옛날 한반도에서 건너간 우리의 먼 친척이 아닐까 생각하는 팬들이 많다. 그는 스페인계 미국인이긴 하나,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한반도의 영문표기가 ‘Corea’였으니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스페인계 후손답게 그의 대표작은 1971년의 앨범 <The Light as a Feather>에 수록한 ‘Spain’이다. 이 곡은 재즈계뿐만 아니라 팝계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연주한 유명 스탠다드 곡이 되었다. 그가 일본 공연 전날 동경 거리에서 우연히 발굴했다는 일본의 세계적 재즈 피아니스트 히로미 우에하라(Hiromi Uehara)와의 듀오 연주로 감상해 보자.

Chick Corea/Hiromi Uehara 'Spain'

그는 허비 행콕, 맥코이 타이너(McCoy Tyner), 키스 자렛(Keith Jarrett)과 함께 현존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Big 4’ 중 한 명이다. 여느 재즈 아티스트처럼 컬럼비아대에서 1개월, 줄리아드에서 6개월이란 짧은 정규음악 교육을 뒤로한 채 직업 재즈 아티스트로 나섰다. 그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밴드에서 허비 행콕의 후임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린 뒤, 자신의 밴드 ‘Return to Forever’를 이끌었다. 밴드 해체 후 ECM 레이블에서 만든 재즈 명연주자들과의 콜라보레이션 음반들은 그의 전성기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비프라폰의 거장 게리 버튼(Gary Burton)과의 협업으로 만든 <In Concert, Zurich>(1979)는 1982년 그래미를, 1998년 5명의 거장이 협연한 <Like Minds>는 1999년 그래미를 안겨 주었다.

버드 파웰을 추모한 ‘Bud Powell’ 역시 칙 코리아 작곡이다. 1979년 도쿄 실황
5명의 재즈 거장이 연주한 이 음반은, 1999년 그래미 최고재즈연주상을 받았다

2014년 방한 때에도 “Glad to be back to my country!”라고 말한 그가 정말 우리의 혈통을 공유하고 있을까? 그럴 것이라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바로크 시대의 거장 화가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가 그린 <한복을 입은 남자(Man in Korean Costume)>(1617)를 증거로 든다. 그림의 주인공이 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다시 이탈리아로 팔려간 조선인 안토니오 코리아(Antonio Corea)라는 것이다. 그의 후손들은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고, 이탈리아 남부의 ‘Albi’라는 도시에 아직 80여 명이 모여 산다고 한다. 칙 코리아의 선조가 안토니오 코리아라면, 한반도에서 이탈리아를 거쳐 스페인에 정착했다가 다시 미국으로 이주한 셈이 된다.

이탈리아 남부의 소도시 Albi. 현재 인구는 천 명이 채 안 된다

미국 게티 미술관에 전시된 루벤스의 <Man in the Korean Costume>

그렇지 않다는 입장은, 코리아(Corea)란 성이 라틴어 ‘Corrigia’에서 나온 것이며, 그 분파가 Corea(이탈리아), correas(스페인), Correa(포르투갈) 등 유럽 전역에 퍼진 성씨라는 것이다. 실제 이탈리아 남부의 Calabria 지역에는 ‘Corea’란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고, 미국, 스리랑카, 남미 등 전 세계에 존재하는 성씨다. 이 성씨는 7세기 이전 가죽세공이란 의미의 ‘Correa’라는 용어에서 기원한, 많은 서양 성씨처럼 직업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임진왜란보다 훨씬 이전에 ‘Corea’란 성이 이미 존재한 셈이다.

세계에 흩어져 정착한 ‘Corea’ 성씨. Y축은 가구 수를 말한다

객관적으로 보면, 루벤스의 그림 속 인물이 조선인이라는 증거는 없고 그림의 명칭은 근래에 소더비에서 경매 진행을 위해 붙인 것이다. Antonio Corea라는 인물은 17세기 한 여행 서적에 등장한 이름이고, Albi에서 살고 있다는 후손과의 관련성에 대해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임진왜란 당시 유럽으로 팔려간 조선인 Antonio Corea가 우연히 루벤스의 스케치 모델이 되었고, 이탈리아 남부에 정착하여 전 세계에 퍼져 있는 ‘Corea’ 성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아직은 추론인 셈이다. 칙 코리아 본인이 유전자 검사를 해보기 전에는 추론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칙 코리아 트리오의 싱글 ‘Now He Sing, Now He Sobs’(1968)는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역작이다

지난 11월 유튜브에 따끈따끈한 영상이 올라왔다. 우리의 먼 친척일지도 모르는 그가 75번째 생일을 맞아 뉴욕의 블루노트 클럽에서 축하 연주를 하는 모습이다. 그의 상징과도 같은 레퍼토리 ‘Spain’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75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건재함을 느낄 수 있다.

Chick Corea 'Spain'(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