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출신의 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kul)의 이름은 낯설다. 그의 작품 또한 그 이름만큼 낯선 서사 구조와 영상으로 가득하다. <엉클 분미(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2010)로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받으면서 그의 이름과 작품은 대중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갔지만, 여전히 그의 작업은 기존 영화 문법의 시각에서 적응하기 쉽지 않다. 더욱이 그는 시네마와 미디어 아트를 오가며 활동하기에 작품 세계와 그 해석의 층위는 사각 평면의 스크린을 훌쩍 뛰어넘는다.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엮어가는 감독은 최근 개막한 광주 비엔날레에 작가로 참여하며 예술 활동의 범위를 더욱 확장하고 있다. 시각 예술, 공연 예술 그리고 영화를 넘나드는 파격적인 행보는 그의 영화 속 메타포인 정글과 같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감독이 창조한 낯선 정글 속에는 무엇이 있을지 지금 바로 알아보자.

<엉클 분미> 포스터

그는 태국 방콕 출신으로 의사인 부모를 따라서 태국의 북동부 콘깬(Khon Kaen)이라는 도시에서 자랐다. 영화에 눈을 뜨기 전 그는 콘깬 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는데, 당시 비디오테크를 오가며 비디오(Video)라는 매체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시카고 예술 대학교(school of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배우면서 1994년 첫 단편을 찍었다. 이후 2000년도에 그는 <정오의 낯선 물체>라는 첫 장편으로 데뷔한다.

 

실제와 허구의 뒤섞임

<정오의 낯선 물체> 포스터

그의 첫 장편 데뷔작인 <정오의 낯선 물체(Mysterious Object At Noon)>(2000)는 다큐멘터리와 픽션 사이의 공간을 부유한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즐겼던 놀이인 ‘우아한 시체(exquisite corpse)’로부터 영감받은 영화는 생선을 파는 한 여성이 카메라에 등장하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기구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기억 속에서 꺼내며 관객의 감정을 동화시킨다. 그러던 찰나, 감독은 갑작스럽게 화면 너머에서 개입하며 감정의 흐름을 방해한다. 그러곤 대뜸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다른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청한다. 여자는 이내 자신이 꾸며낸 이야기를 들려주고, 감독은 이를 시작점으로 태국의 북부에서 남부로 내려오며 만난 여러 사람들에게 앞선 이야기를 이어 달라고 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설화와 같이 이들은 실재와 허구가 뒤섞인 그 이야기를 새롭게 계속해서 이어간다.

<정오의 낯선 물체> 스틸컷

더불어 감독은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카메라에 담아내는데, 스크린에는 그 모습과 그들이 던지는 이야기가 뒤섞이며 펼쳐진다. 영화는 기존에 지배적이던 전통적 장르와 서사 구조를 거부한다. 그리고 스스로 명확하지 않은 영역에서 떠돌아다니기를 선언한다.

 

전통적 영화 문법에 대한 반기

<친애하는 당신> 포스터

감독은 기존의 영화 문법으로 자신의 영화를 끼워 맞추지 않는다. 두 번째 장편이자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의 출품작인 <친애하는 당신(Blissfully Yours)>(2001)에서 감독은 획일적인 영화 구조에 보다 직접적인 반기를 든다. 125분 러닝 타임의 영화는 중반에 느닷없이 제목을 띄운다. 아무런 정보 없이 눈앞에 놓인 스크린을 따라온 관객에게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영화라는 사실을 인지시킨다. 감독은 낯선 구조를 통한 시선의 해방과 새로운 영화 형식의 가능성을 실험적으로 도모한다.

<친애하는 당신> 스틸컷

한편, 영화는 태국 국경의 한 시골 마을에서 불법으로 체류하는 주인공과 그의 여자친구 그리고 주인공을 돕는 한 중년 여성의 사이에서 오가는 관계와 감정의 풍경을 담는다. 국경에서 불법 체류 중인 버마인이라는 인물의 배경은 국가 간의 정치 및 사회적 문제에 관한 우회적 접근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서사의 흐름에서는 이와 맞닿은 지점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어쩌면 이 또한 영화의 역할과 뻔한 쓰임새를 비판하는 감독의 목소리일 수도. 또한, 영화 그 자체의 미학에 초점을 두는 감독의 관심사를 대변한다.

<열대병> 포스터

앞서 보여준 영화의 구조와 그 형식에 관한 실험은 그의 세 번째 장편 <열대병(Tropical Malady)>(2004)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발전한다. 영화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내용과 소재의 외형이 분명히 다르다. 전반부에서는 군인과 한 소년의 사랑 이야기와 일상 속 모습을 도심의 배경 아래에서 부드럽게 전개한다. 반면에 후반부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어둠이 드리운 정글 속에서 한 설화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언뜻 보면 다른 이야기가 하나의 영화에 담겨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구분된 두 가지의 영역은 문명과 자연의 상호 대립이라는 커다란 담론을 순환시키며 관객에게 낯선 걸음으로 다가간다.

 

무한과 초현실의 공간, 정글

그의 영화 혹은 작품에 있어서 ‘정글’은 모든 서사가 담기는 배경이자 인물의 역사와 주변 관계를 이어주는 중요한 링크이다. 2010년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수여한 <엉클 분미>는 감독의 정글 미학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엉클 분미> 스틸컷

신장 질환을 앓고 있는 ‘분미’(타나팟 사이세이마르)는 남은 생을 보내기 위해 처제가 있는 자신의 시골 농장으로 내려간다. 그러던 어느 날 식사 자리에서 느닷없이 죽었던 그의 아내가 유령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붉은 눈을 가진 괴물 원숭이가 된 아들도 눈앞에 나타난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아들은 자신이 괴물 원숭이가 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다. 다음 날 분미는 유령의 아내와 자신의 죽음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며, 불현듯 무언가가 생각난 듯 그는 정글 속 신비로운 동굴을 찾아 떠난다.

<엉클 분미> 스틸컷

앞선 작품들이 구조적인 해체와 새로운 형식을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이야기를 담아냈다면, <엉클 분미>는 영화의 실험적 형태보다는 서사의 내용에 초점을 맞춘다.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인간의 현세와 내세 그리고 자연 존재의 초월성을 다룬다. 더불어 감독 특유의 불친절한 영화 구조 위에 놓이며 동양의 사상적 정취를 만들어내는데, 스크린에 담긴 영화적 요소들은 정글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서로 관계한다. 이처럼 정글은 심미적 사용뿐만이 아니라 하나의 연출 장치로 기능하며 서사의 간극을 좁히며 낯선 전개를 최소화한다. 감독의 여러 작품 중에서 <엉클 분미>가 그나마 대중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것도 감독의 정글 미장센이 잘 작동했기 때문이 아닐까.

 

평면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실험의 확장

아핏차퐁은 감독뿐만이 아니라 작가로서 시각 및 공연 예술 분야에서도 활동 중이다. 지난 2015년 국립 아시아 문화 전당의 예술극장과 2018년 베를린 민중극장(Volksbühne)에 올렸던 작업이기도 한 <열병의 방>은 그가 단지 스크린에만 갇혀 있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열병의 방> 빛의 산란

<열병의 방(Fever Room)>은 외적 형태는 공연 예술에 가까우나, 내부의 작업물은 비디오 아트, 시네마 그리고 퍼포먼스가 결합된 다원 예술이다. 작가는 영화관이 아닌 공연장에서 객석과 무대의 기능을 뒤바꿈으로써 관객에게 새로운 시공간을 제공한다. 무대 위에서 객석을 바라보며 앉은 관객에게 작가는 2~4개의 분할된 스크린을 제공하며 자연과 문명의 다른 풍경을 병렬의 구조 안에서 보여준다. 이후 무대는 어둠에 잠기고, 스크린을 향하던 프로젝터는 빛을 산란하며 현실과 가상의 사이의 혼란이라는 입체적 경험을 제공한다. 더불어 그간 평면의 스크린을 통해서 새로운 구조를 실험하던 감독은 입체의 시공간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도모한다.

영화와 시각 예술, 그리고 공연 예술을 자유로이 오가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 자신이 만든 정글의 세계에서 다음에 무엇을 들고 올지 궁금하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홈페이지 

메인 이미지 출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홈페이지

 

 

Writer

DNA Berlin 갤러리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를 역임했다. 이후 독립 큐레이터이자 프로그램 기획자로서 활동하며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매달 한 명의 작가와 함께하는 <KUNST TALK>를 기획하여 운영했다. 현재는 국내의 오프라인 지면과 온라인 플랫폼에 시각 및 공연 예술을 주제로 한 글을 기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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