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드벤처 타임> 속 캐릭터들

8년 넘게 이어져 왔던 <어드벤처 타임> 시리즈가 올 9월 미국에서 마지막 에피소드를 방영하며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핀’이라는 한 인간 소년과 몸을 자유자재로 늘릴 수 있는 마법의 개 ‘제이크’가 함께 떠나는 모험담에서 시작됐던 애니메이션은 어느새 우주를 넘나들며 온갖 시련을 겪고 상실과 희망을 맛보게 하는 웅장한 서사로 나아갔다. <어드벤처 타임>은 어린이를 위한 단편 애니메이션 TV 시리즈로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운 모든 조건(?)을 갖춘 상태로 시작했다. 하지만 8년의 세월 동안 방대한 세계관을 구축하고 다양한 캐릭터들의 성장 서사를 쌓아오며 수많은 어린이와 어른들을 모험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리고 이제 이 작품은 많은 이의 모험심과 상상력, 슬픔, 희망과 연민 등의 감정을 자극한 하나의 위대한 예술 작품으로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노래를 부르며 ‘베이컨 팬케이크’를 만드는 제이크

<어드벤처 타임>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인기를 얻게 된 건 일명 ‘병맛’의 매력을 어필하면서다. 노란 개 ‘제이크’가 아침을 만들며 ‘베이컨 팬케이크’ 노래를 부르는 영상과 무지갯빛 유니콘을 닮은 생명체 ‘레이디 레이니콘’이 한국어로 말하는 장면은 분명 많은 사람의 뇌리에 박혔을 것이다. 이처럼 <어드벤처 타임>은 예상을 뛰어넘는 엽기적인 스토리 전개와 그만의 독특한 세계관으로 초기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베이컨 팬케이크’ 노래를 부르는 제이크
<어드벤처 타임>의 배경인 ‘우 랜드’ 속 캔디 왕국

특히 <어드벤처 타임>이 ‘병맛’이란 장르로 각광받은 데에는 무한한 상상력을 불어넣은 세계관이 한몫한다. <어드벤처 타임>의 배경인 ‘우 랜드’(Land of Ooo)는 사탕으로 이뤄진 캔디 왕국, 불꽃이 가득한 불의 왕국, 악마가 사는 다른 차원의 세계 ‘나이토스피어’ 등이 존재하는 미스터리하고도 판타지적인 세계다. 그리고 그 안에는 뱀파이어, 악마, 로봇이나 그 외에도 형언할 수 없는 온갖 기괴하고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 스토리는 핀과 제이크가 괴물을 무찌르고 왕국을 구해나가는 단순한 서사를 중심으로 흐르는데, 그 안에서 비춰지는 ‘우 랜드’ 곳곳의 모습과 새로운 종족의 캐릭터들은 언제나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달에서 바라본 <어드벤처 타임> 속 지구의 모습

한편 <어드벤처 타임>의 세계관은 판타지 장르의 영화나 문학 속에 나오는 것 같이 현실이 아닌 환상 속 세계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우 랜드’는 사실 핵전쟁인 ‘버섯 전쟁’이 일어나고 인류가 멸종한 지 1000년이 흐른 후의 세계다. 종종 시리즈에서 지구를 멀리서 비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지구의 4분의 1이 핵폭발로 인해 잘려나간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어드벤처 타임>을 처음엔 마냥 환상적인 모험담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그 세계를 깊이 들여다볼수록 어딘가 음울하고 어둡다.

환상의 세계 같은 ‘우 랜드’

그렇다고 해서 <어드벤처 타임>이 여타 SF 장르에서 그리는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를 표방한다는 것은 아니다. 무너진 건물 잔해, 회색빛의 암울한 이미지가 도드라지는 SF영화들과 달리 <어드벤처 타임>에서 그리는 포스트-아포칼립스의 세계는 알록달록한 색감이 눈에 띄고 유쾌한 모험이 가득하다. 즉 <어드벤처 타임>의 세계관은 환상적인 판타지 세계와 음울한 아포칼립스의 분위기가 묘하게 섞여, 디스토피아 속에 유토피아가 담긴 새로운 세상을 창조했다.

과거 속 ‘아이스 킹’과 ‘마셀린’의 모습

이처럼 <어드벤처 타임>은 여타 장르의 전형성을 비틀고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통념을 전복시킨다. <어드벤처 타임>에 존재하는 왕국들은 모두 ‘공주(Princess)’들이 지도자로 군림하고 있으며, 시리즈 초반에 ‘악당’으로 출연하던 ‘아이스 킹’은 사실 기억을 잃고 점점 미쳐간 슬픈 사연을 지닌 인간이다. 사회적으로 각인된 공주의 이미지를 뒤집고 영웅 서사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주인공과 악당의 대립 구도를 비트는 등 <어드벤처 타임>은 우리의 예상을 보란듯이 깨버린다. 모두에게 익숙한 고정 관념을 탈피하고 사람들의 상식에 끊임없이 도전해왔기에 이 작품은 시즌이 지날수록 깊이를 더해갔다.

크리스마스 날 모여든 핀, 제이크, BMO

후반으로 갈수록 <어드벤처 타임>은 핀과 제이크의 모험담에서 더욱 확장되어 우주의 종말이나 다른 세계의 차원을 넘나드는 등의 방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렇지만 그 방대함 속에서도 캐릭터들 간의 관계나 갈등, 그 안에서 겪는 다양한 폭의 감정들도 빼놓지 않고 다룬다. <판의 미로>, <셰이프 오브 워터> 등을 연출한 영화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어드벤처 타임>을 “눈부신 휴머니즘”이 담긴 애니메이션이라 칭송했다. 인간이 멸종한 제2의 세계에서 오히려 휴머니즘적인 이야기를 조명한다는 점이 이 작품을 한층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아빠가 된 제이크와 그를 축하해주는 핀

<어드벤처 타임>의 세계관 내에선 완벽하고 단편적인 인물이 없다. 모두 결점이 가득하면서 자신만의 애환을 갖고 살아가는 캐릭터들이다. 공주들을 좇고 다니는 아이스 킹, 매일 불만족스러움을 비명으로 토로하는 ‘레몬 그랩’, 과학밖에 모르며 백성들을 대상으로 감시를 일삼는 캔디 왕국의 군주 ‘프린세스 버블검’. 온 세상을 구하겠다고 철없이 외치는 주인공 핀마저 모두 어딘가 모나고 부족한 존재들이다. 그렇지만 <어드벤처 타임>은 이 캐릭터들을 선과 악으로 가르고 판단을 내리기보다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내고 아이 같은 시선으로 따뜻하게 품는다. 그들이 어떤 애환을 갖고 살았는지 조급해하지 않으며 차근차근 납득시키기에 시청자들 역시 캐릭터 한명한명을 깊이 이해하게 된다.

마셀린과 프린세스 버블검. 시리즈 내에서 공개적으로 다루진 않았지만 제작자들은 둘이 과거에 연인이었다가 헤어진 사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어드벤처 타임> 내에는 수백 명의 캐릭터가 등장하며 이런 곁가지 인물들의 삶을 그리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우 랜드 왕국 내에 잠시 지나치는 엑스트라도 한번쯤은 자신만의 에피소드를 갖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캐릭터 하나하나가 마치 우리가 사는 현실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마냥 생생하게 살아난다. 단순한 악당에 불과했던 아이스 킹은 사실 1000년 전 연인을 그리워하다 미친 인간이었고, 프린세스 버블검은 자신이 아끼는 왕국을 지키려는 마음이 절실한 지도자였기에 강박증이 심해졌다. 우리는 그 삶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들이 겪었던 상실, 절망, 나약함, 희망과 연민 등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우 랜드와 점차 사랑에 빠지게 된다.

위기에 빠진 캔디 왕국과 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LSP. LSP는 핀과 제이크의 친구로 나오는 조연 중 한 명이며, ‘Lumpy Space Princess’를 줄인 애칭으로 불린다. 우리나라에선 ‘울룩불룩 공주’로 번역된다. <어드벤처 타임>을 창조해낸 초기 크리에이터 팬들턴 워드가 LSP의 성우를 맡았다

무엇보다 <어드벤처 타임> 속 캐릭터들은 모두 다른 캐릭터와 관계를 맺고 변화해 나간다. 결점투성이였던 캐릭터들은 시리즈 세계관 속 긴 시간을 거쳐 성장한다. 핀은 왕국을 구하겠다는 단순한 용기를 갖고 모험을 떠나다가 온갖 아픈 진실과 시련을 마주한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구할 수 없는 것들을 깨달으며 더욱 입체적인 면을 가진 소년으로 자란다(마치 어린이었던 시청자들이 어른으로 성장해가듯 말이다). 그 외 수많은 조연들도 자신만의 성장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쿨하고 반항적인 청소년의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지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었던 뱀파이어 퀸 마셀린. 모든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비호감인 캐릭터로 자주 꼽히는 자기중심적인 LSP까지. 모두 한번쯤은 우 랜드를 위기에서 구해내는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난다. 이처럼 <어드벤처 타임>은 단편적으로 봤을 때 장난스러운 판타지 모험담을 벌이는 것 같지만 8년간의 이야기를 모아놓고 보면 한 편의 거대한 성장 서사를 이룬다.

Adventure Time.
Come on grab your friends,
and go to very distant lands.
Jake the dog, and Finn the human.
The fun will never end,
it’s adventure time!

- <어드벤처 타임> 오프닝 곡 가사 중

핀과 제이크가 함께 사는 ‘트리 하우스’

<어드벤처 타임>은 거대하고 환상적인 모험을 그리다가도 핀과 제이크가 사는 트리 하우스로 돌아와 그들이 사는 소소한 일상을 보여준다. 트리 하우스는 핀과 제이크가 서로 장난치며 함께했던 모험을 추억하는 공간으로 우 랜드에 비해 소박하고 현실적인 배경이다. 그곳에서 둘은 비디오 게임을 하고, 밥을 먹으며 농담을 나누고 베이컨 팬케이크를 만드는 등 일상적인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들은 또다시 함께 모험을 떠날 준비를 한다.

트리 하우스에서 함께 일상을 보내는 핀과 제이크

결국 <어드벤처 타임>은 제목처럼 친구와 함께 하는 작은 모험들과 그 안에서 피어오르는 변치 않는 우정에 대해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비록 시리즈는 끝나도 오프닝 속 핀과 제이크가 주먹을 맞부딪치는 경쾌한 소리처럼 우리들 역시 팔을 걷어붙이고 언제나 계속될 모험들을 친구들과 즐겨보라고 전하며 <어드벤처 타임>은 막을 내린다.

 

필자 소개
Jude (김유영)
텅 빈 무대와 백 스테이지, 사람들 간의 복작거림이 좋아 오랫동안 무대 근처에서 머물고 싶은 아마추어 연출가입니다. ‘아마추어’의 어원은 Amor(사랑)에서 비롯됐다는데, 그 애정 어린 시선을 간직해 공연, 영화, 책 등 다양한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문화예술 큐레이터를 꿈꾸고 있습니다.

 

Writer

소소한 일상을 만드는 주위의 다양한 것들을 둘러보길 좋아합니다. 무엇보다 ‘이야기’들엔 사람들의 일상을  단단하게 지켜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믿음을 갖고 공연, 영화, 책 등 여러 장르의 작품을 소개해, 사람들의 일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문화예술 큐레이터가 되길 꿈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