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걷는 모습이 담긴 뮤직비디오들을 모았다. 영상 속 인물들은 타이베이를, 낡은 뒷골목을, 건조한 마을과 서울을 걷는다. 멍하니 보다 따라 걷고 싶어지는 뮤직비디오들을 보자.

 

LUCKY TAPES ‘22’ MV

럭키 테잎스(LUCKY TAPES)는 2015년 데뷔한 일본의 3인조 밴드다. Kai Takahashi(보컬, 키보드), Keito Taguchi(베이스), Kensuke Takahashi(드럼)로 구성된 밴드는 청량하고 산뜻한 노래를 들려준다. 이들의 음악이 마냥 가볍지 않은 건 탄탄한 곡 구성과 연주력이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22’는 올해 5월 발매된 EP <22>의 타이틀곡으로,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시각 22시에 떠오르는 감상을 담은 노래다. 뮤직비디오엔 갖가지 설렘과 기대로 부풀어 오른 도시의 밤이 펼쳐진다. 럭키 테잎스의 멤버 Kai Takahashi와 댄서 Rina Mizumura는 네온사인과 간판 불빛만이 비추는 도시를 걷고 또 걷는다. 이들은 셔터를 내린 상점이 늘어선 쇼핑몰을 거닐고, 사찰에서 춤추고, 차 한 대 없는 도로 위에서 빙글빙글 돈다. 익숙한 풍경 속 자유롭게 걷는 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해방감을 안긴다. 지하상가, 낡은 골목, 마천루가 묘하게 조화로운 뮤직비디오 촬영지는 타이베이라고.

 

Kasabian ‘Cutt Off’ MV

카사비안(Kasabian)이 결성한 지 2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이들은 언제나 거칠면서 세련되고 우울한 듯 댄서블한 음악을 선사한다. 이 밴드의 첫 스튜디오 앨범 <Kasabian>은 그야말로 터질 것 같은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일렉트로니카와 록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사운드와 공격적이고 날 선 가사는 젊음 그 자체, 그리고 ‘Cutt Off'는 이 앨범의 수록곡이다. ‘Cutt Off’ 뮤직비디오는 폐허를 비춘다. 사람들은 겁에 질렸고 도시 어디에도 온기는 없다. 카사비안의 보컬 Tom Meighan만이 모든 혼란 속을 무심하게 걷는데, 이 광경은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공포와 혼돈을 홀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모습이 담긴 뮤직비디오, 록밴드의 출사표로 이만한 게 또 있을까.

 

Inshow-ha ‘Swap’ MV

Inshow-ha(印象派, 인상파)는 오사카에서 결성된 듀오다. 멤버 Mica와 Miu는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멋있다고 느끼는 걸 하겠다는 의미로 그룹명을 ‘인상파’라고 지었다. 그 이름처럼, Inshow-ha의 음악은 특정 장르로 규정하기 어렵다. 일렉트로닉, 록, 신스팝이 뒤섞인 노래들은 낯설지만 듣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을 품었다. ‘Swap’은 이들의 첫 번째 미니앨범 <Nietzsche>(2013)의 수록곡으로, 사랑의 욕망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노래. 뮤직비디오 역시 이들의 음악 세계처럼 기발하고 흥미롭다. 영상 속에서 콜라주 작품이 된 멤버 두 사람은 공상만화 같은 세계를 당당하게 걷는다. 걷는 도중 물에 빠지거나 하늘을 날기도 하는 멤버들은 어떤 상황이 닥쳐도 흐트러짐 없이 춤추고 노래한다. 흔하지 않은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상은 노래와 어우러지는 한편, Inshow-ha의 인상을 확실히 각인시킨다.

 

Men I Trust ‘Show Me How’ MV

인디포스트에서 소개하기도 했던 Men I Trust는 캐나다 몬트리올 출신의 밴드다. 이들은 단순한 리듬 위에 마음을 가라앉히는 차분한 멜로디를 얹는다. 이렇게 완성한 노래들은 모두 꿈결같이 미끈하고 몽글몽글한 무드를 풍긴다. 이 밴드는 노래를 만드는 일은 물론 녹음과 믹스, 마스터링까지 직접 해내며, 뮤직비디오 역시 자체적으로 기획하고 촬영한다. 덕분에 밴드는 그들이 원하는 이미지를 일관적이고 자연스럽게 구현한다. 밴드가 올해 2월 발표한 ‘Show Me How’는 애틋한 마음을 표현한 시(詩) 같은 노래. 곡의 간결한 사운드처럼 뮤직비디오 역시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을 건조하게 비춘다. Men I Trust의 멤버 Emma는 차갑고 맑은 공기 속을 그저 걷는다. 주차장과 오래된 극장,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사이를 걸으며 읊조리듯 노래하는 Emma의 모습은 쓸쓸한 감상을 안긴다.

 

Troye Sivan ‘My My My!’ MV

영상에 광(光) 자극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 광과민성 증후군(PSE) 등 관련 질환 보유자는 시청에 주의하십시오

남아공에서 태어난 트로이 시반(Troye Sivan)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뮤지션이다. 섬세한 감성, 나른한 보컬, 세련된 구성은 그의 노래가 인기를 얻은 큰 이유다. 커밍아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힌 트로이 시반은 삶의 고통과 슬픔뿐 아니라 기쁨과 욕망 역시 당당히 드러낸다. 올해 1월 발표한 ‘My My My!’는 불가항력적인 사랑을 노래한 곡. 뮤직비디오 속 트로이 시반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걸음을 내디딘다.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춤추듯 나아가는 그의 걸음은 솔직해서 더욱 매혹적인 몸짓으로 다가온다.

 

죠지 ‘오랜만에’ MV

네이버 온스테이지에서 새롭게 선보인 ‘디깅클럽서울’은 음악전문가들이 발굴한 1970~80년대 명곡들을 온스테이지에 출연했던 뮤지션이 재해석하는 프로젝트다. 처음을 장식한 뮤지션은 죠지(George). 그는 한국 시티팝의 대표곡인 김현철의 ‘오랜만에’(1989)를 다시 불렀다. 어떤 장르든 제 것으로 소화하는 죠지가 부른 ‘오랜만에’는 원곡의 세련미에 그루브를 더해 색다른 노래가 되었다. 한강과 송도에서 촬영한 뮤직비디오는 ‘시티팝’의 뮤직비디오로서 부족함이 없다. 한강을 걷던 죠지는 다른 누군가를 만나 함께 걷는다. 둘 사이엔 수줍고 어색한 대화와 풋풋한 미소가 피어오른다. 함께 이야기하며 그냥 걷기만 해도 완전한 순간이 있다. 죠지의 ‘오랜만에’ 뮤직비디오는 이 순간을 담백하게 담았다.

 

Editor

김유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