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의 시대가 왔다. 죽어가던 한국의 만화시장이 다시금 부흥을 맞이하고, 만화가를 꿈꾸던 젊은 인재들이 꿈을 펼쳐 볼 수 있는 기회의 장이 열렸다. 이렇게 많은 인재들이 다 어디 숨어있었을까를 궁금하게 하는 놀라운 수작들이 발견된 가운데, 특히나 ‘이런 세계관’을 한국에서 볼 수 있어 더욱 행복해지는 웹툰들을 소개한다.

 

젤리빈 <묘진전>

<묘진전> 1화 중에서

‘묘진’이라는 남자가 천계에서 인간 세상으로 떨어졌다. 그는 천계로 돌아가고 싶지만. 누적된 업보를 풀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다. 차가운 눈과 심장을 가진 묘진은 천계로 돌아가기 위해 ‘억지’ 선행을 베풀어보려 자신을 속이고 눈을 도려낸 여인의 아들을 자신의 양아들로 삼는다. 그 아이가 무사히 크면, 다시 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으면서.

<묘진전> 5화 중에서

<묘진전>은 묘진을 중심으로 ‘산이’, ‘진홍’, ‘막만’이라는 세 인물들의 이야기가 얽힌 작품이다. 복수와 용서라는, 다소 진부해보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가치들이 매력적인 세계관을 통해 재현된다. 신과 괴물들의 형상이 우리에게 퍽 익숙한 옛 조선의 모습을 빌어 등장하며, 어디서 본 듯 아닌 듯한 신화 속 이야기가 독특한 이야기 전개로 펼쳐져 독자들에게 신비로움을 선사한다.

<묘진전> 4화 중에서

얼어붙은 묘진의 마음을 대변하듯, <묘진전>의 색감은 시종일관 어둡다. 죽음은 잔인하게 묘사되고, 누군가를 증오하는 마음은 그보다 더욱 잔인하게 연출된다. 이렇게 잔인한 세상을 살아가는 묘진, 산이, 진홍, 막만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해봐도 좋다.

<묘진전> 페이지 

 

POGO <레사(Lessa)>

<레사> prelude 1 중에서

평화로운 한 마을에 ‘디맨’이라는 괴물들이 나타난다. 이마에 뿔을 달고 있는 이들은 한때 인간이었지만, 이제는 괴물이 되어 인간의 혼을 사냥한다. 힘과 체력 모두 압도적인 이들에게 한가지 약점은 바로 태양이다. 인간들은 이들에게 맞서 빛으로 만들어진 도시, ‘헥타곤 아일랜드’를 건설한다. 하지만 이 돈과 권력이 있는 자들만 살 수 있는 아일랜드 밖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라노’는 디맨을 사냥하러 다니는 디맨 사냥꾼이다. 그런 그가 디맨들의 신인 ‘레사’를 만난다.

<레사> prelude 6 중에서

<레사>는 한 캐릭터가 압도적인 힘을 가진 ‘먼치킨’ 장르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는다. 하지만 <레사>에 등장하는 전능한 신 레사는 흔한 먼치킨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인간처럼 사랑하고, 자신의 실수를 두려워하고 후회한다. 레사가 ‘신’이면서도 완전하지 않은 존재이기에, 독자들 또한 울고 웃으며 이 존재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다.

<레사> prelude 4 중에서

<레사>는 정통 판타지로, 깊은 세계관과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쌓아 올리는 작가의 내공이 심상치 않은 작품이다. 성서의 내용과 신화가 적절히 섞여 있어 독자들은 어렵지 않게 세계관에 이입할 수 있다. 하지만 <레사>를 보면 볼수록 이 웹툰만이 가지고 있는 장엄하고 커다란 대서사시에 감동할 수밖에 없게 된다.

<레사> 페이지 

 

므앵갱 <이제 사라질 시간>

<이제 사라질 시간> 표지

<이제 사라질 시간>에는 현대에 살고 있는 ‘정령’들이 등장한다. 세상에는 나무와 꽃, 물에 스며들어 살아가는 여러 정령들이 있고, 이들은 각자 고유의 힘을 가지며 자연과 상생하여 살아간다. 하지만 정령 ‘포시’는 태어나던 순간에 한 인간 남자아이에게 짓밟혀 날 수 없는 불구의 몸이 된다. 포시의 능력은 ‘누군가를 사라지게 하는’ 능력. 그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아이에 대한 복수심을 키운다. 여기에는 여리고 선한 마음을 가진 작은 참새 ‘짹’도 등장한다. 짹은 포시에게 붙잡혀 그의 날개 노릇을 대신하지만, 점점 이 정령에게 안쓰러운 마음을 느낀다.

<이제 사라질 시간> 1화 중에서

<이제 사라질 시간>에는 어딘지 모르게 망가지고, 뒤틀려 버린 존재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마음과 시선은 비껴가고 서로를 두려워하고, 종국에는 해치려 한다. 하지만 그 뭉개진 마음 사이에도 일말의 사랑과 삶에 대한 강렬한 애착이 드러난다.

<이제 사라질 시간> 2화 중에서

고운 색감과 그림체와는 달리 어두운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웹툰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에 판타지를 가미한 세계관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웹툰을 보다 보면 이 세계관에 등장하는 기이한 모습들이 곧 사회 속 우리를 닮았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누군가를 미워하면서도, 완벽히 미워할 수 없는 우리의 모습들을.

<이제 사라질 시간> 페이지 

 

우리는 때로 다큐멘터리가 아닌 판타지 속에서 우리네 삶의 모습을 더욱 깊이 발견할 때가 있다. 신선한 세계관으로 또 다른, 혹은 꼭 같은 삶을 비춰보고 싶다면, 앞서 소개한 웹툰을 한 번쯤 보는 것을 추천한다. 괴이한 괴물에게서, 타락한 신에게서, 분노에 일그러진 정령에게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

 

Writer

아쉽게도 디멘터나 삼각두, 팬텀이 없는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 공백을 채울 이야기를 만들고 소개하며 살고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고, 으스스한 음악을 들으며, 여러 가지 마니악한 기획들을 작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