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기억하며 살 수 있을까? 때론 기억 자체보다 그 당시 누군가와 함께했던 음악, 영화, 책과 같은 사소한 매개물로 더 선명하게 이어지기도 한다. 당신의 추억 언저리, 나의 추억 언저리, 그 어딘가에 존재할 듯 아련한 공기가 느껴지는 일본 음악들을 소개해본다.

 

Lamp

램프(Lamp)는 일본의 3인조 혼성 팝 밴드로 1979년생 동갑내기인 기타리스트 소메야 타이요(Someya Taiyo), 보컬과 아코디언 및 플루트를 담당하는 사카키바라 카오리(Sakakibara Kaori), 그리고 이들보다 한 살 어린 보컬 및 베이시스트 나가이 유스케(Nagai Yusuke)로 이뤄진 팀이다. 2000년 결성해 2003년 싱글 <산들바람 아파트 201호(そよ風アパ-トメント201)>를 발매하며 데뷔 이래 지금까지 18년 동안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삼인조 구성의 밴드로서 다소 심플한 사운드를 들려주던 초기 활동 시절부터 보사노바, 프렌치 팝 등 다양한 장르를 결합하는 시도가 뒤섞인 최근의 사운드까지, 램프는 사운드 적으로 변해가면서도 특유의 서정적인 감성을 놀라울 정도로 유지해왔다. 때문에 램프의 음악을 들으면 우리는 언제 어느 때라도, 지금이 아닌 다른 어딘가 머나먼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Lamp ‘오늘밤도 너에게 텔레폰 콜(今夜も君にテレフォンコール)’ MV

이러한 음악적 성향과 꼭 맞는 램프의 뮤직비디오는 대부분 밴드 멤버들이 직접 출연하여 어딘가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거나, 아이들의 놀이터를 배경으로 하는 식의 자유로운 풍경이 많으며 특유의 희뿌옇고 몽환적인 영상의 색채 역시도 음악과 꼭 어울리는 한 줄기를 이룬다.

Lamp ‘사치코(さち子)’ MV

 

Kirinji

키린지(Kirinji)는 형제인 호리고메 타카키(Horigome Takagi)와 호리고메 야스유키(Horigome Yasuyuki)가 1996년에 결성한 2인조 밴드로 1997년 싱글 <키린지(キリンジ)>를 발매하며 데뷔했다. 하지만 2013년 동생이었던 호리고메 야스유키의 탈퇴로 현재는 호리고메 타카키를 중심으로 6인조 밴드로 재편성되어 활동 중이다.

Kirinji ‘Aliens’

키린지의 대표곡으론 아무래도 2000년에 발매한 세 번째 정규앨범 <3>에 수록한 ‘Aliens’를 꼽지 않을 수 없는데, 시적이면서도 슬픈 느낌이지만 충분히 절제된 멜로디와 담담한 보컬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기묘한 애수를 불러일으킨다. 최근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2013)의 엔딩곡을 부른 싱어송라이터 하타 모토히로(Hata Motohiro)가 이 노래를 커버한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오면서 재조명받게 된 곡이기도 하다.

Kirinji ‘Crazy Summer’

그들의 석양
그대의 환상
Crazy Summer
밀려왔다 되돌아가는 파도와 빛 속
모래를 붙잡는 생각

누군가 웃고
하늘을 춤추는 원반
그 날도 너와 그렇게
이 웅성거림 속에서
난폭하게 사랑을 했지
여름의 끝에서

 

Chiaki Nishimori

치아키 니시모리(Chiaki Nishimori)는 일본, 교토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여성 솔로 뮤지션으로 특유의 깊고 맑은 호흡의 보컬과 클래시컬하면서도 화려하기보다는 오히려 소박한 피아노 소리가 인상적인 뮤지션이다. 한국에서는 그리 인지도가 높은 뮤지션은 아니지만 로컬을 기반으로 현재까지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2014년 발매한 정규 2집 <둘도 없는(かけがえのない)>을 통해 국내에서도 소수의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다.

앨범 케이스는 목재 합판으로 제작해 실제 나무를 만지는 듯한 감촉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또 시골의 낡은 학교에서 전 곡을 녹음하여 음악 소리와 함께 주변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소리,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풍경과 시간의 변화가 음악 안에 함께 녹아든 것만 같은 평온함을 안긴다.

Chiaki Nishimori ‘호박 눈물(琥珀涙)’

2015년 4월 12일 앨범이 녹음된 시골 학교에서 진행된 <둘도 없는 가운데(かけがえのないなかで)> 연주회에서의 마지막 곡이었던 ‘호박 눈물(琥珀涙)’ 라이브 영상을 통해 치아키 니시모리가 자아내는 아름다운 소리들의 단면을 감상해보자.

Chiaki Nishimori ‘푸른 잎(青葉)’

 

 

Writer

서울에서 살아가는 생활인이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노래로 지어 부르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 다른 낯선 세상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작업자. 다른 사람들의 작업을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유유'는 한자로 있을 '유'를 두 번 써서 '존재하기에 존재한다'는 뜻으로 멋대로 사용 중. 2018년 9월부터 그동안 병행 해오던 밴드 '유레루나' 활동을 중단하고, 솔로 작업에 더 집중하여 지속적인 결과물들을 쌓아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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