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치>의 흥행이 심상치 않다. 개봉 6일 만에 박스오피스를 역주행해 1위를 하는가 하면 개봉 10일 만에 관객수 100만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대형 블록버스터도 아니요, 출연진 라인업이 화려한 것도 아니요, 감독은 심지어 91년생. 이 작품이 데뷔작이다. 이래저래 참으로 믿기 힘든 결과다. 게다가 줄거리도 간단하다. 사라진 딸을 찾아 나선 아버지를 그린 추적 스릴러. 한강 매점에서 졸고 있던 철부지 아버지부터 무시무시한 전직 요원까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영화 속 아버지들이 딸을 찾아 헤맸던가. 그만큼 흔하다면 흔한 설정. 그렇다면 대체 <서치>는 무엇이 어떻게 다르길래 이토록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걸까. 답은 다름 아닌 그 형식에 있다.

영화 제작자 티무르 베크맘베토브(Timur Bekmambetov)는 제작사 벨제레브를 차리고 디지털 기기의 스크린만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스크린라이프(Screenlife)’라는 영화 장르를 선보인다. 영화 <서치>는 그가 <언프렌디드(Unfriended)>에 이어 두 번째로 내놓은 ‘스크린라이프’ 영화. 그는 공포영화의 한 장르가 된 ‘파운드푸티지’처럼 ‘스크린라이프’ 또한 새로운 영화 언어로써 트렌드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의 확신을 영화 <서치>는 증명해낸다.

영화 <서치> 속 카메라는 절대 디지털 기기의 스크린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 오직 OS 운영체제와 모바일, CCTV 화면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주인공의 액션 대신 마우스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주인공의 대사 대신 머뭇거리는 커서를 보여주는 식이다. 그런데 신기하게 우리는 커서 하나에, 알림 메시지 하나에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얼굴과 목소리가 빠진 그 공백을 관객들은 일상에서 자신이 그 기기를 사용할 때의 상황을 떠올리며 채워 넣기 때문이다. 좁디좁은 스크린 안으로 형식을 옭아맬수록 역설적으로 이야기는 더 넓게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도 ‘스크린라이프’는 제법 경제적이다. 시간의 흐름을 설명하는 장면을 집어넣는 대신 컴퓨터 OS 시계를 보여주고, 새로운 소식은 새로운 이메일이 수신되었다는 컴퓨터상의 알림 메시지로 보여준다. 게다가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예산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다. 영화 <서치>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헌데 이 ‘스크린라이프’라는 형식을 처음 시도한 것이 영화계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사실, ‘스크린라이프’라는 명칭만 없었을 뿐 이미 아주 오래전 광고에서는 이 방법이 여러 차례 쓰인 적이 있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에게도 이렇게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형식인데, 짧지만 강렬한 영상을 만들어야 하는 광고인들에게는 오죽했겠는가. 일찌감치 광고인들은 검색창 하나로, 컴퓨터 화면 하나로 더 깊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끌어내는 법을 알고 있었다. 영화 <서치>가 나오기 무려 8년 전부터 말이다.

 

 

검색어만으로 러브스토리 한 편을 완성한, 구글의 ‘Parisian Love’ 광고

2010년까지만 해도 구글은 TV 광고를 한 적이 없었다. 딱히 할 필요가 없었다. ‘구글’이라는 단어 자체만으로 검색의 대명사가 된 지 오래였으니까. 그런데 구글이 2010년 미국 슈퍼볼에 난데없이 광고를 한다. 다른 때도 아니고 하필이면 슈퍼볼 중간에 광고를 하다니! 놀랄 만한 소식이었다. 슈퍼볼 중간에 광고를 하기 위해선 30초당 3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33억 원을 내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었을까.

사실 구글이 처음부터 TV광고를 하려던 건 아니었다. 구글 크리에이티브 랩에서는 항공편명만 입력해도 출도착시간이 나오고, 검색어의 오탈자가 자동수정되고, 외국어로 된 검색어는 다중언어번역이 되는 등 보통 사람들은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기능을 효과적으로 설명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매뉴얼로 정리를 해볼까 검색기능을 이용해 퍼즐을 맞추는 온라인 게임을 만들까 고민을 하던 그들은 기능적인 이점을 전달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구글 검색을 우리의 삶 속에 녹여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머리를 맞대어 만들어낸 것이 바로 ‘파리지앵 러브(Parisian Love)’ 광고.

이 광고에선 시종일관 검색창만 나온다. 앞서 이야기한 언어번역기능이라든지, 자동수정기능 같은 건 그저 거들 뿐 스토리에 녹아져 있다. ‘파리 유학’부터 ‘장거리연애’를 거쳐 ‘요람을 조립하는 법’으로 마무리되는 누군가의 검색어만 나열할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검색어만으로 눈물이 나는 참으로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사람이 읽는 책이 그 사람을 말해준다던 시절을 넘어, 그 사람이 검색하는 것이 그 사람을 말해준다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광고가 선포한 셈이다.

‘Parisian Love’ 속 장면

구글은 이 영상을 2009년 온라인에 올린다. 120만 뷰를 기록했지만 구글 직원들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광고를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리고 마침 한 엔지니어가 슈퍼볼에 광고를 해보는 것은 어떻겠냐며 아이디어를 냈고, TV 광고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구글의 CEO마저 이 광고에 반해 슈퍼볼에 광고를 하는 엄청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재미있는 건 영화 <서치>의 아니쉬 차간티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광고로 이 광고를 꼽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구글 크리에이티브 랩 출신인 감독이 구글에서 일할 당시 이 광고를 만든 사람이 자신의 상사였단다. 그는 그 상사로부터 “클릭만으로 사랑이 어떻게 보일 수 있는지, 깜빡이는 커서처럼 간단한 것이 어떻게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지 배웠다”고 말한다. 이 광고가 나오던 그 순간부터 영화 <서치>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아버지의 육아일기를 구글 지메일을 통해 보여주는, 구글 크롬의 ‘Dear Sophie’ 광고

‘파리지앵 러브’ 광고로 짜릿한 성공을 맛본 구글은 다음 해 ‘Dear Sophie’ 광고를 선보인다. ‘Web is what you made of’라는 구글 크롬 광고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Web is what you made of’ 캠페인은 사실 구글 역사상 가장 큰 오프라인 광고 캠페인이었다. 물론 구글도 기존에 하던 대로 굳이 광고를 하지 않고도 잘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새로 런칭한 브라우저인 구글 크롬이 3년이 지나도록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밀려 18%의 점유율밖에 차지하지 못했다는 것. 더 나아서가 아니라 더 익숙해서 익스플로러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구글 크롬을 다운받게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구글은 구글 크롬을 제품으로서가 아닌 삶의 일부분으로 끌고 들어오기로 했다. 구글 크롬으로 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을 감성적으로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Dear. Sophie’는 ‘Parisian Love’만큼 심플하지는 않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메일로 써내려가는 한 아빠의 육아일기가 가장 보편적인 감성을 건드린다는 거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광고 보다 보면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진다. 이 광고는 ‘마고’(미셸 라)와 ‘데이비드’(존 조)의 가족사를 디바이스를 통해 보여주는 영화 <서치>의 오프닝 시퀀스와 꽤 많이 닮았다. 어쩌면 영화 <서치>는 2011년 이 광고가 나오면서부터 그 싹이 움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쉬 차간티 감독이 이 광고 또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광고로 꼽았던 걸 보면.

지메일로 육아일기를 썼던 구글 직원의 실화를 바탕으로 이름을 바꾸고 배우를 써서 재구성한 이 광고 또한 ‘Parisian Love’만큼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2012년 원쇼 국제광고제 본상을 거머쥔 것은 물론 2012년 칸 광고제에서 필름 부문 은상까지 받은 것. 그보다 구글이 더 좋아했을 소식은 이 광고 이후,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점유율은 35%로 떨어졌고, 크롬은 29%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구글 캠페인 광고들

구글 크롬 ‘Jess Time’

‘Web is what you made of’ 캠페인에는 ‘Dear Sophie’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구글 크롬의 기능들을 활용해 커플이 화해하는 법을 다룬 ‘Coffee’와 독립해서 살고 있는 대학생 딸과 아버지의 대화를 보여주는 ‘Jess Time’ 등도 있다. 역시나 흥미로우면서 감동적이다.

구글 크롬 ‘Coffee’

데이트했던 장소를 구글맵에 표시하고, 자신이 잘못한 점은 구글 시트로 작성하고, 둘의 다정했던 한 때를 찍은 영상은 유투브로 보여주는 ‘Coffee’ 광고는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광고 이후 둘이 다시 사귀게 되었는지, 메일을 받은 여자의 대답은 무엇이었는지 광고 속 이메일 주소로 메일을 보낸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 광고 속 커플이 실제 커플이라고 굳게 믿을 만큼 광고가 진정성이 있었다는 방증일 터. 재미있는 건 광고 속 이메일 주소로 메일을 보내면 자동으로 다음과 같은 메일이 온다. 광고 속 커플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증을 해소해주면서 구글 크롬 다운로드를 권하는 것 또한 잊지 않는다.

‘coffee’ 광고 속 이메일로 메일을 보내면 오는 답장

 

 

컴퓨터의 수많은 기능을 활용해 액션영화처럼 보여주는, 인텔의 ‘Chase’ 광고

구글 광고들처럼 ‘스크린라이프’가 꼭 감성적인 접근만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2011년 1월 CES2011에서 인텔은 새로운 2세대 인텔 Core i5 프로세서를 홍보하기 위해 흥미로운 영상을 한 편 발표한다.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활용해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펼쳐지는 액션영화의 추격 시퀀스를 만들어낸 것이다. 심심한 기술 소개 데모영상이 될 뻔했던 광고는 그렇게 한 편의 액션영화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씬마다 페이스북, 메신저, 워드, 아이튠즈, 텍스트 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컴퓨터의 수많은 기능을 절묘하게 활용하는데 인텔 최신 프로세서의 멀티 태스킹 능력을 보여주고자 했던 의도가 이보다 잘 전달될 수는 없다.

반응은 역시나 폭발적이었다. 일주일이 채 되기도 전에 조회수 100만 건을 돌파한 건 기본, 두 달 만에 Visible Measurements의 바이럴 광고 톱 10 차트의 1위에 올랐다. TED 컨퍼런스에서는 ‘Ad Worth Spreading’으로 선정되고, 2012년 클리오 광고제에서는 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당시 인텔의 부사장은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어떤 것에 대해서도 이렇게 좋은 반응을 본 적이 없었다”라고까지 말했다. 인텔로서는 충분히 흥분할만한 일이었다.

이 광고를 만든 한 스텝은 인터뷰에서 “많은 액션영화들에서 흔히 쓰이는 요소들을 디자인으로 삼았다”고 말한다. 그만큼 진부한 액션영화의 느낌을 원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촬영지도 프라하. 프라하야말로 <본 아이덴티티>와 <미션 임파서블>의 촬영지였으니까. 덕분에 광고를 찍는 내내 지역주민들이 스태프들에게 톰 크루즈는 어디 있는지 물어보는 웃지 못할 사연도 생겼다.

광고를 만든 이들의 의도가 이해가 간다. 가장 진부한 액션영화의 느낌이어야 오히려 그 진부함을 컴퓨터 스크린과 기능들 안에 넣어놓았을 때 더 신선해보일테니까. ‘이 다음 장면에선 위장을 하겠지?’ ‘차로 추격을 하겠지?’ ‘쫓아오던 사람을 따돌리겠지?’ 등등 예상 가능한 스토리 전개였기 때문에 그 스토리에 컴퓨터 기능을 녹여낸 것 하나하나가 더 돋보인다.

 

이메일로 마음을 전한다. 메신저에 마음을 쓰고, 인터넷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유튜브 영상이 마음을 울린다.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그건 아마도 인간의 마음일 것이다. 영화 <서치>를, 구글의 광고들을 보다 보면 아무리 디지털 기기가 발전하고, 소통의 수단이 바뀌어도 그 안에 담긴 인간의 감성은 손편지를 전하던 그 시절로부터 별반 달라진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스크린라이프’가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것도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Writer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카피 쓴다는 핑계로 각종 드라마, 영화, 책에 마음을, 시간을 더 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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