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타들어갈 것 같은 한여름의 열기가 지나갔다. 다가올 추석 연휴를 기약하며 각자의 짧고 긴 여름 휴가 역시 떠나보냈다. 아래 소개하는 다양한 회화 작업을 통해 우리가 휴가를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새로운 휴가를 소망하는 방식에 대해 짚어보자.

 

꿈, 설렘, 두근거림

곽미영 <제주여행> Via neolook

곽미영 작가는 새파란 하늘과 진초록 들판을 기본 소재로 여행을 떠난 모습들을 그린다. 작가는 사실적인 그림체 대신, 하늘을 닮은 파라솔, 하트 모양 구름, 풀밭에 솟아난 창문 같은 상상 속의 풍경을 불러들인다. <인디애나 존스>(1981)에나 나올 법한 빨간 비행기와 큐브 퍼즐에서 쏟아지는 풍선들은 싱그러운 기분마저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여행이 현실의 탈출구’라고 말하는데, 대개가 그렇듯 매일 비슷하게 반복되는 현실에서 해방되어 완전히 달라진 여정에 몸담을 수 있기를 꿈꾸는 것이다.

곽미영 <두근두근 하늘은> Via neolook

사실 우리가 휴가를 맞이하면 집에 가만히 있기보다(물론 그것이 더 좋을 때도 있다!) 가보지 않은 해외로 떠나거나 공연장, 미술관에 들르거나, 하다못해 먼 동네의 맛집이라도 찾아 나서는 이유가 다 그런 기대감에 있지 않은가? 곽미영 작가의 작업들을 찬찬히 뜯어보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모티프들이 많은데도, 그런 기대감을 표현해내고 있기에 보는 이의 마음에 자연스레 스며든다.

곽미영 <지금 만나러 갑니다. Ⅱ> Via neolook
곽미영 <여행일기Ⅱ> Via neolook

 

혼자만의 불편한 시간

박상희 <수영장1> Via neolook

그런데 우리가 주어진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간, 새로운 시간과 마주한다고 해서 언제나 속 시원한 해방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환경이 바뀌어도 마음에 지워진 짐을 덜어내지 못해 불편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 때가 종종 있다. 이때 마음에 지워진 짐을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단순히 ‘짐’이라고 요약하기에는 부족한, 멜랑꼴리하고 어딘가 거북한 감각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내는 작가가 있다. 그는 박상희 작가. 그는 단색의 평면 위에서 오리 튜브를 타고 수영하거나 그 속으로 다이빙하는 사람들을 화폭에 한 명씩 담아낸다.

박상희 <수영장> Via neolook
박상희 <점프> Via neolook

전혀 리얼하지 않은 수영장 물과 바닷가 모래사장은 사람들이 느끼는 일종의 ‘부자연스러운’ 현실 감각을 나타내준다. 구체적으로 말해, 우리가 휴가를 떠나도 이런저런 미디어와 모니터에 둘러싸여 있던 상태에서 벗어나 바람과 공기와 햇볕과 휴가의 감정이 주는 ‘깊이’에 푹 담기지 못하는 상황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다채로운 현실을 수치화된 데이터로 만들어내며 변덕스러운 감정을 깔끔하게 정리하길 권하는 현대 사회에서, 하늘색, 살구색, 초록색 따위로 딱 떨어지게 구획된 2D 물과 모래의 그림이야말로 가장 적절한 표현 결과일지 모른다. 그 속에서 우리는 외딴 섬처럼, 볼록하게 도드라진 캐릭터처럼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박상희 <썬베드-소녀> Via neolook

 

그럼에도 소망하는 우리

이경현 <Picnic> Via neolook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우리 중 어느 누구만 그런 불편함과 외로움을 끌어안고 지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또는 학교에서 늘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느끼고, 벗어난 공간에서 휴가를 보내며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형태의 위기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매번 휴가가 주는 달콤함을 취하며 더 오래 일상을 버틸 힘을 얻는다. 이경현 작가의 작품 <Picnic>이나 <Camping> 속에 와글와글 모여 있는, 눈코입 없는 얼굴의 사람들은 그러한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모두가 거의 동일한 방식의 위안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동일함은 휴가를 부르는 긴 여름을 지나 가을의 추석 연휴, 커다란 보름달 앞에 다 함께 모여 소원을 비는 순간에까지 이어진다.

이경현 <Wish> Via neolook

우리가 사랑하는 여름 휴가 시즌은 이제 거의 지나가버렸지만, 아직 추석 연휴가 남아 있다. 물론 가족과의 바쁜 약속들이 이어질 테지만, 일상에 다시 한번 쉼표를 찍고, 가빠진 숨을 고르며 ‘앞으로의 나에게 이러이러한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솔직하게 소망해보는 건 어떨까. 거기에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 다시 내년 여름이 오기까지, 휴가와 휴가 사이를 살아가는 힘이 숨겨져 있다. 말하자면 ‘생활’하는 힘이다.

이경현 <Camping> Via neolook
이경현 <Playground> Via neolook

 

(메인 이미지 Via opengall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