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야마 미호가 <나비잠>으로 우리를 찾는다. <러브 레터>와 명대사 “오겡끼데스까”로 우리에게 유명한 그는, 80년대 일본 여성 아이돌 사천왕 중 한 명으로 꼽히며 많은 음반 판매를 기록했고, 이후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온 바 있다.

재미있는 점은 나카야마 미호가 연기경력 초기 출연했던 청춘물들을 제외하고는 유독 이룰 수 없거나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매인 주인공들을 맡아왔다는 사실이다. 불운하고도 때로는 그래서 아름다운 나카야마 미호의 지난 작품 속 다양한 사랑의 거리감들을 짚어보자.

 

1. 닿을 수 없는

사랑은 쉽게 결론이 나거나 그 모양이 결정되지 않는다. 설령 둘 중 어느 한 사람의 부재가 긴 시간 이어지거나 이별이 찾아와도, 남은 사람을 통해서 사랑이 이어지거나 헤어졌던 두 사람이 다시 만날 수도 있다. 허나 그렇다고는 해도 결국 생의 이별은 아득히 닿을 수 없는 아픔의 거리로 남기 마련이다.

 

<러브레터>

1995 | 감독 이와이 슌지 | 출연 나카야마 미호, 토요카와 에츠시, 한 분샤쿠, 시노하라 카츠유키

<러브레터>의 나카야마 미호는 이미 생과 사의 운명을 달리한 남자를 추억하는 '와타나베 히로코', '후지이 이츠키' 1인 2역을 맡는다. 두 캐릭터는 각자 애인이자 사춘기 시절 풋풋한 감정의 대상이었던 남자와의 사별로 슬퍼하지만 다행히 주고받는 편지를 통해 서로 위로받는다. 사랑의 대상은 분명 영영 닿을 수 없는 거리만큼 멀어졌지만 남겨진 이들의 기억 공유를 통해 한 사람은 아픔을 덜어내고, 다른 한 사람은 추억을 완성할 수 있었다.

<러브 레터> 예고편

 

<도쿄 맑음>

1997 | 감독 타케나카 나오토 | 출연 나카야마 미호, 타케나카 나오토

<도쿄 맑음>은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 부부의 삶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 속에서 시마즈 요코 역을 맡은 나카야마 미호는 역으로 서글픈 사랑의 관찰 대상이자 남겨진 사람의 아픈 상처가 된다. 남편이 알아주지 않는 슬픔과 상처를 홀로 안고 살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요코. '시마즈 미키오'(타케나카 나오토)는 사진에 담았던 생전 아내의 모습과 그와의 일상을 회상하며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친다.

<도쿄 맑음> 예고편

 

2. 멀어지는

깨달았을 때 이미 먼 거리에 있는 사랑도 슬프지만 곧 다가올 이별을 느끼며 차츰 멀어지는 거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사랑 또한 안타깝기 그지없다. 서서히 배어드는 상처는 때때로 오랜 시간 가슴을 저리게 할 뿐 아니라 우리의 의식을 더욱 강렬하게 사로잡는다.

 

<나비잠>

2018 | 감독 정재은 | 출연 나카야마 미호, 김재욱, 마시마 히데카즈, 카츠무라 마사노부, 스가타 슌

오늘 개봉하는 신작 <나비잠>에서 나카야마 미호는 베스트셀러 작가 료코가 되어 어린 작가 지망생 '찬해'(김재욱)와 국적과 나이를 넘어선 사랑을 보여준다. 문제는 료코가 알츠하이머로 인해 사랑의 기억을 차츰 잃어간다는 사실. 가까워지는 동시에 멀어짐을 생각해야 하는 비극 속에서도 두 사람은 마지막 소설을 완성해간다. 이토록 낭만적 스토리는 '불치병'이라는 설정의 진부함마저 뛰어넘는다.

<나비잠> 예고편

 

<사요나라 이츠카>

2010 | 감독 이재한 | 출연 나카야마 미호, 니시지마 히데토시, 이시다 유리코

사랑하는 이가 다른 사람과 결혼함으로써 사랑이 멀어지기도 한다. 완전한 불가항력으로 슬픔과 무력감을 극대화하지만 한편으로 체념을 통한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죽음과 달리, <사요나라 이츠카> 속 두 사람은 예정된 남자의 결혼을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서로에게 빠져든다. 그러다가 갑작스레 현실로 돌아간 남자의 냉담한 반응에도 '마나카'(나카야마 미호)는 사랑에 대한 희망과 미련을 놓지 못한 채 멀어지는 거리에 손 뻗어 홀로 허우적대며 외로운 사랑을 이어간다.

<사요나라 이츠카> 예고편

 

3. 닿을 듯 말 듯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는 것도, 멀어지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결국 닿지 않는 관계도 있다. 이를 두고 으레 '썸'으로 일컫는 알콩달콩한 사랑의 사전단계를 상상할 수도 있지만 그와 같은 설렘은 어디까지나 해피엔딩이 결정, 전제되었거나 적어도 좋은 결말을 기대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고 현실성 적은 미래를 기다릴 뿐인 모호한 관계는 아쉬움과 허전함이 더욱 크게 남을 뿐이다.

 

<새 구두를 사야 해>

2012 | 감독 기타가와 에리코 | 출연 나카야마 미호, 무카이 오사무, 키리타니 미레이, 아야노 고, 아만다 플러머

머나먼 이국 프랑스 파리에서 우연한 계기로 가까워진 '아오이'(나카야마 미호)와 '센'(무카이 오사무). 두 주인공은 마치 잠깐의 여행처럼 일시적인 관계일 뿐임을 알기 때문인지 겉으로 보이는 나이 차이 때문인지 선뜻 서로에게 연애 감정으로 다가서지 못한다.

<새 구두를 사야 해> 예고편

아오이와 센은 그저 함께 거리를 걷고, 사진을 찍고, 요리를 할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각자의 고민과 아픔을 털어놓으며 좁혀질 듯 좁혀지지 않는 사이 지대를 맴돈다. 다행인 것은 이 거리감은 결코 무겁고 불안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언제든, 누구든 손을 내밀었다면 닿았을지도 모를 거리감에 보는 이들은 애간장을 태우겠지만, 그 가깝고도 먼 관계의 여운 또한 우리가 하는 사랑의 대표적인 모양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