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세상을 떠난 훌륭한 예술가들을 떠올린다. 그러한 예술가들의 작품은 대개 '죽기 전에’ 듣거나 봐야할 목록으로 꾸준히 나타난다. 그래서 묘하게도 죽음은 예술가의 존재를 빛나게 아로새기는 장치이기도 하다. ‘27세 클럽’도 그렇다. 천부적인 재능을 떨쳐온 몇몇 음악가들이 유독 만 27세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두고 회자되는 용어지만, 동시에 2017년을 맞이한 현재의 우리가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27세 클럽은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뮤지션의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명곡'의 다른 말이다.

1. 브라이언 존스(Brian Jones)
(1942년 2월 28일~1969년 7월 3일)

반세기가 넘는 역사를 지닌 영국 최장수 록밴드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의 창설자이자 리더였고, 타고난 음악가였던 브라이언 존스의 죽음은 당시 음악계에 가장 큰 논란이자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브라이언 존스는 대표 포지션인 슬라이드 기타뿐 아니라 피아노, 하모니카, 마림바, 색소폰 같은 다양한 악기를 두루 섭렵한, 그야말로 ‘천재’였다. 초기 롤링 스톤스 앨범에 멋들어진 사운드를 첨가한 악기 연주는 물론, 귀공자 차림으로 패션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며 왕성한 인기를 누린 1960년대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롤링 스톤스의 대표곡을 한 곡만 뽑기란 쉽지 않지만, 그중 시그니처 앨범이라 꼽는 <Between The Buttons>(1967)의 수록곡 'Let's Spend The Night Together'를 들어보자. 기타가 아닌 피아노를 연주하는 브라이언 존스를 볼 수 있다.

롤링 스톤즈 'Let's Spend The Night Together' Live

그러나 전성기를 누리던 그에게 밴드에서 새로 영입한 매니저와의 갈등, 약혼녀와 밴드 멤버인 키스 리차드의 외도 같은 갖가지 수난이 이어졌다. 이후 약물중독으로 인한 폐인 생활로 자신이 만든 밴드에서 퇴출까지 당한 27세의 브라이언 존스가 발견된 곳은 자택 수영장. 당시 그의 죽음은 약물 과다복용과 익사로 판명이 났지만, 갑작스러운 죽음 탓에 자살인지 타살인지에 대한 논란이 꾸준히 이어지기도 했다. 브라이언 존스는 사망 1년 전인 1968년 롤링 스톤스와 공식적인 마지막 무대를 가졌다. TV영화로 제작된 공연 <Rock and Roll Circus>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가장 최근의 브라이언 존스를 만날 수 있다.

Rolling Stones 'Parachute Woman' (Rock and Roll Circus 1968)

 

▲출처- 위키피디아 

2. 지미 헨드릭스(James Marshall Hendrix)
(1942년 11월 27일~1970년 9월 18일)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왼손으로 악수합시다. 그 쪽이 내 심장하고 가까우니까." 같은 명대사와 수많은 패러디를 낳은 이빨 연주 퍼포먼스 등 여러 상징으로 회자되는 지미 헨드릭스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기타리스트계의 표상이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던 브라이언 존스를 천재라 언급하기도 한 이 왼손잡이 기타리스트도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천재 음악가 중 한 명이었다. 브라이언 존스가 부유한 가정 환경에서 다양한 음악을 접했던 것과 달리, 불우한 집안 형편 때문에 기타 하나 사지 못했던 지미 헨드릭스는 어렸을 적 값싼 우쿨렐레로 처음 악기를 접했고, 제대로 된 기타를 손에 넣자 마자 자신의 음악적 재능과 열정을 남김없이 발휘한다. 1967년 영국으로 건너가 3인조 밴드 '지미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The Jimi Hendrix Experience)'를 결성한 뒤 대표적인 앨범 <Are You Experienced>(1967)을 발표하며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켰다. 특히 라이브 연주에서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며 뿜어내는 폭발적인 사운드는 이후 사이키델릭 하드록 장르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The Jimi Hendrix Experience ‘Purple Haze‘ Live

고등학생 시절 마약중독으로 퇴학을 당했다고 알려진 지미 헨드릭스가 결국 약물 과다복용으로 인한 질식사로 사망하게 되었을 때 나이도 고작 27세였다. 브라이언 존스에 이어 동시대의 천재 기타리스트가 같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사망 직전, 밴드 ‘지미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를 해체하고 새로운 팀 ‘밴드 오브 집시스(Band Of Gypsys)’를 결성한 뒤 생애 마지막 앨범을 남겼다. 아래 영상은 1969년 12월 31일 밴드 오브 집시스의 마지막 공연이었던 뉴욕 필모어 이스트 공연 실황을 녹음한 앨범으로, 47년 후인 지금 들어도 아주 생생한 27세 천재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의 기타 리프를 느낄 수 있다.

<Machine Gun: Live At The Fillmore East> - Jimi Hendrix 'Power of Soul'

 

▲ 출처- 위키피디아 

3. 제니스 조플린(Janis Joplin)
(1943년 1월 19일~1970년 10월 4일)

지미 헨드릭스의 죽음이 얼마 지나지 않아 제니스 조플린마저 세상을 떠났을 때, 음악계엔 기묘한 분위기가 감돈다. 1967년 몬테레이 팝 페스티벌에서 폭발적인 라이브를 선보이며 화제에 올랐던 지미 헨드릭스 못지않게 인기를 얻은 뮤지션이 바로 제니스 조플린이었다. 록 밴드 ‘빅 브라더 앤드 홀딩 컴퍼니(Big Brother & The Holding Company)’의 메인 보컬을 맡은 그는 흑인들의 장르라 여겨지던 블루스를 완벽히 소화한 백인 싱어로 불리며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제니스 조플린의 격렬하고 거침없는 가창법을 비롯한 그의 자유분방한 라이프 스타일은 당시 '여성' 보컬리스트에게 씌워지던 편견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빅 브라더 앤드 홀딩 컴퍼니 'Ball and Chain' 몬터레이 락 페스티벌 Live

빅 브라더 밴드를 떠나 새로운 이름 ‘풀 틸트 부기(Full Tilt Boogie)’로 솔로 앨범을 작업 중이던 그는 1970년 10월, 공연을 앞두고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앞서 27세에 약물 중독으로 생을 마감한 두 기타리스트와 마찬가지로, 이미 술과 마약으로 ‘히피적인’ 생활을 해오던 제니스 조플린 또한 영원한 27세의 목소리를 간직하게 되었다. 사후에 그가 죽기 전 완성한 9곡과 미처 녹음하지 못해 연주만 실린 곡 ‘Buried Alive In The Blues’를 담은 앨범 <Pearl>이 발매된다. 제니스 조플린의 유일한 솔로 앨범이자, 수많은 뮤지션들의 귀감이 되어준 명예의 앨범이다.

제니스 조플린 ‘Buried Alive In The Blues’

 

출처- 위키피디아 

4. 짐 모리슨(James Douglas Morrison)
(1943년 12월 8일~1971년 7월 3일)

영국에서 롤링 스톤스가 화려한 무대에 오르는 동안, 미국에서는 록 밴드 ‘도어스(The Doors)’가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었다. 오늘날 전설적인 밴드로 남은 도어스의 시작은 리드 보컬인 짐 모리슨이다. 니체와 랭보 같은 시인들을 탐닉하며 문학적인 면모를 쌓아오던 평범한 UCLA 학생 짐 모리슨은 교우인 레이 만자렉과의 만남을 계기로 1967년 밴드 도어스를 결성했다. 짐 모리슨의 타고난 음악성과 은유적인 가사가 결합돼 탄생한 도어스의 음악들은 곧바로 큰 인기를 얻었다. 데뷔앨범 <The Doors>는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 2위를 기록했고, 연이어 발표한 2집 <Strange Days>는 같은 파트 3위를 기록하며 미국 내 최고의 인기 밴드임을 증명했다.

The Doors 'The End'

시집까지 발간한 짐 모리슨은 노래하는 시인으로도 불리며, 현재까지도 블루스 록을 얘기할 때 빼놓지 않는 이름이 됐다. 동시에 음악계의 반항아로도 불리는 그는 술과 마약에 빠져 공연을 여러 번 망치기도 했다. 그러다 1971년 도어스를 탈퇴하고 떠난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샤워 도중 약물 과다복용에 의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물론 그의 나이 27세였다. 제니스 조플린의 사후 앨범이 발매된 해에 전해진 짐 모리슨의 부고는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때부터 기묘하게도 모두 27세에 죽음을 맞이한 젊은 음악가들을 두고 ‘27세 클럽’이라는 말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먼저 세상을 떠난 지미 헨드릭스와 제니스 조플린, 그리고 짐 모리슨의 이름을 합쳐 ‘3J’라고 불렀다. 이미 약물 중독자가 되어버렸을 시기에 짐 모리슨이 남긴 대표곡은 마지막 앨범의 타이틀곡 'L.A Woman'이다. 어떠한 약물과 상관없이 전혀 유해하지 않지만 중독적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도어스 'L.A Woman'

 

5.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Jade Winehouse)
(1983년 9월 14일~2011년 7월 23일)

1960~1970년대 소울과 블루스를 기반으로 재즈, 힙합, 펑크 같은 장르를 섭렵하며 자기만의 음악을 완성한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단연 현대 음악계의 천재 싱어송라이터였다.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은 2집 <Back To Black>의 대표곡 'Rehab'은 정식 앨범 발표 전 온라인 상의 히트만으로도 빌보드 하위 차트 1위에 올랐고, 2008년 그래미 어워즈를 휩쓸었다. 한편, 허스키하고 끈적거리는 목소리, 가느다란 팔에 새긴 문신, 뾰족한 하이힐과 짙은 눈화장으로 전세계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그의 또 다른 이미지는 술을 달고 사는 사고뭉치였다. 노래 가사로도 알 수 있듯 그는 극심한 알코올 중독자로 앨범 발매 전까지도 재활원을 들락거려야 했다.

"They tried to make me go to rehab

I said no, no, no.”
(그들은 나를 재활원으로 보내려고 했어

/ 아니, 안돼, 안돼.)

에이미 와인하우스 'Rehab'

파격적인 행동, 마약과 음주 문제로도 유명했던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결국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음악만을 남겨둔 채 2011년, 27세의 나이에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으로 당시 사람들은 ‘27세 클럽’ 뮤지션들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27세 클럽’의 저주를 말하며 두려워하기도 했다는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기묘하게도 1970년대 천재 뮤지션들의 자국을 고스란히 밟게 됐다. ‘27세 클럽’의 가장 젊은 27세가 된 셈이다. 에이미 와인하우스 생애 마지막 노래로 남게 된 노래, 토니 베넷과의 듀엣곡 'Body And Soul'을 감상해보자. 1970년대 뮤지션들에겐 남지 않았던 선명한 화질의 비디오와 함께 듣는 음악은 ‘27세 클럽’을 미신처럼 이야기하는 오늘날의 사람들을 묘한 기분에 빠뜨린다.

에이미 와인하우스 'Body And 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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