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세계관을 향한 유저들의 감정이입이 매우 중요한 매체다. 그리고 게임 ‘음악’은 세계관의 기틀을 잡는 데에 엄청난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를 신(新)세계로 초대하는,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은 게임 음악들을 소개한다.
디아블로 OST

게임만큼이나 유명한 블리자드의 ‘디아블로’ OST는 Matt Uelmen이라는 기타리스트이자 게임 작곡가가 만들었다. 디아블로 시리즈로 유명세를 떨치게 된 이 작곡가는 음악만으로 디아블로 게임 세계관의 음침함과 스산함을 그대로 표현해냈다. 음악이 워낙 좋아서, 게임 유저들이 플레이 화면을 틀어놓고 음악을 감상했다는 일화는 이제 특별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Tristram’이라는 곡은 디아블로 게임을 대표하는 테마곡이다. 이 곡은 원래 디아블로1에 나오는 ‘트리스트람 마을’의 배경음으로, 악마들에게 먹혀버려 희망이 사라진 마을의 스산한 기운을 음침하고 신비로운 기타 선율로 표현하고 있다. 디아블로1은 다른 시리즈보다 훨씬 고어적인 측면의 연출들이 돋보이는 작품이어서, 이 게임이 출시될 당시에는 RPG 게임보다는 ‘호러 게임’이라고 표현될 정도였다. 악마의 잔인함을 드러내는 흉측한 시체들, 그리고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OST의 콜라보는, 말 그대로 악마의 대군주 ‘디아블로’를 완성했다.
개인적으로 ‘Tristram’에 버금가는 OST는 ‘Wilderness’라고 생각한다. 기타 선율과 그 뒤를 받치는 묵직한 비트가 긴장감을 유발하며, 캐릭터를 정신없이 뛰어가게 만든다. 곧 닥쳐올 불행을 예견하는 듯한 불길한 선율들은 등장하는 악마 크리쳐들의 모습을 조금 더 두렵게 만든다.
디아블로 OST는 다른 게임 음악이 무릇 그렇듯, 너무 튀지도, 그렇다고 밋밋하지도 않게 세계관을 표현해준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정교하게 구성된 음악들은 캐릭터들의 목소리, 악마들의 비명, 무기를 휘두르는 소리와 같은 사운드 디자인과도 잘 어우러져, 유저를 이 심층적인 세계관 안으로 더욱 깊숙히 빨려 들어가게끔 만든다.
사일런트 힐2 OST

‘사일런트 힐2’는 그 스토리와 OST 등의 조화가 매우 훌륭한 게임으로 정평이 나 있다. 공포게임의 원조 격이라고도 불리는 이 게임은 그저 고어적이고 엽기적인 장면에만 집착하지 않고, 유저들의 오감을 모두 긴장으로 몰아넣는 사운드 연출이 훌륭하다는 평을 받는다. 물론 오래된 게임이라 조작감과 시점 처리 등이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러한 단점 또한 이 게임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묵직한 스토리 전개와 연출력으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다. 특히 사일런트 힐2의 OST 또한 게임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유저들의 요청 때문에 음반을 세 번이나 재발매했을 정도였으니,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하는 ‘True’라는 곡은 사일런트 힐 게임을 모르는 대중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 사일런트 힐이 가지고 있는 비밀에 대해 주인공이 알게 되고, 이에 대한 혼란과 공포를 담은 이 곡은 혼란스러움, 분노, 슬픔 등이 모두 어우러진 소용돌이를 표현했다.
‘White Noiz’라는 곡은 사일런트 힐이라는 게임의 세계관을 조금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곡이다. 성스러운 스산함과 짙은 안개 속을 걷는 듯한 공포, 절망이 함께 녹아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이 마을을 누비는 ‘인물들’의 마음을 잘 대변한 곡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젤다의 전설 : Breath of the wild OST

게임 유저들에게는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젤다의 전설’. 여기에도 역시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OST들이 많다. 파스텔톤으로 정돈된 아름다운 게임 속 세계와, 그곳을 노니는 영웅 ‘링크’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는 것 또한 OST의 몫이다.
이번 OST는 역대 젤다의 전설 시리즈와는 다른 면모를 많이 갖추고 있다. ‘야생의 숨결’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음악의 볼륨감을 최대한 줄이고 그 안에 자연의 소리를 더욱 존재감 있게 넣었다. 하지만 유저가 중요한 전투를 시작할 때면, 갑자기 긴박함과 웅장함을 강조하는 음악이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유저들은 특히나 전투 신에서 더욱 극적인 아드레날린을 느낄 수 있게 된다.
특히 이번 시리즈의 테마곡을 스웨덴 방송 교향악단에서 연주하기도 했는데, 풀 오케스트라의 연주만으로도 게임 속 세계의 모습이 그려질 정도이니, 젤다의 전설이 OST 하나는 꽤 잘 뽑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삶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마다, 사람들은 잠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이(異)세계로 떠나기를 염원한다. 그런 이들에게 앞서 소개한 게임 음악들을 한번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우리 앞에 펼쳐지는 공간의 모습이 순식간에 다른 색과 다른 느낌으로 채워지는 경험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디멘터나 삼각두, 팬텀이 없는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 공백을 채울 이야기를 만들고 소개하며 살고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고, 으스스한 음악을 들으며, 여러 가지 마니악한 기획들을 작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