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데뷔해 성인이 된 현재까지 독보적인 연기로 주목받는 두 배우, 다코타 패닝과 엘르 패닝. 비슷한 이미지로 활동을 시작한 자매는 서로 다른 커리어를 쌓으며 현재까지 활발히 활동 중이다. 두 사람은 최근 ‘인디계의 퀸’이란 별명을 얻으며 영화계에 잔잔한 파동을 만들고 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온 마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이 두 자매에게 영화는 아마도 거대한 마을이 아니었을까.

두 사람이 선택한 영화를 통해 우린 어떤 세상을 볼 수 있을까. 비슷하면서도 다른, 각자의 ‘눈’과 ‘정체성’이 되어준 그들의 영화 출연작을 살펴보자.

 

1. 억압에 대항하여

<런어웨이즈>

The Runawaysㅣ2010ㅣ감독 플로리아 시지스몬디ㅣ출연 크리스틴 스튜어트, 다코타 패닝, 마이클 섀넌, 스텔라 매브

1970년, 한 시대를 앞서간 밴드 런어웨이즈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열여섯의 ‘체리 커리’(다코타 패닝)와 ‘조안 제트’(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여자아이’ 공식에서 벗어나고 싶다. 불행하고 불안한 이곳에서 벗어나, 지루하고 답답한 세상을 데이빗 보위처럼 뒤집어 흔들어 삼키고 싶다.

두 사람은 곧 음반 제작자 ‘킴 포리’(마이클 섀넌)를 통해 멤버 모두 여성인 락밴드 런어웨이즈로 데뷔한다. 그들은 남자로 우글대던 락밴드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며 연일 신드롬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들은 제작자에게 학대(성/정신적)와 노동 착취를 당하고, 세상이 원하는 ‘여성’ 밴드의 모습(‘카메라 앞에서 이상한 포즈를 취하라’는 등)을 노골적으로 요구당한다.

그러나 그들은 지치지 않고 자신들이 ‘주체’가 될 때까지 억압하는 것들과 싸웠다. 실제로 체리 커리는 약물중독을 이겨내 아이들을 상담하는 일을 했다. 조안 제트는 밴드 탈퇴 후 음반사들의 계속된 거절로 스스로 레이블을 만들었다. 그렇게 자립해 발표한 첫 곡이 바로 ‘I Love Rock ‘n Roll’이다. 이 곡은 7주 동안 빌보드차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런어웨이즈> 트레일러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Mary Shelleyㅣ2017ㅣ감독 하이파 알 만수르ㅣ출연 엘르 페닝, 메이지 윌리암스, 더글러스 부스, 조앤 프로갯

영화는 소설 <프랑켄슈타인, 근대의 프로메테우스>(이하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의 실화를 다룬다. 아나키즘 사상가인 아버지와 페미니즘 선구자인 어머니로부터 문학 등 여러 지식의 영향을 받은 ‘메리’(엘르 패닝)는 시인 ‘퍼시’(더글러스 부츠)와 사랑의 도피를 하던 중 여러 문인들을 만난다. 그는 이때 작가 ‘바이런’(톰 스터리지)을 조우하면서 문학 작업에 뛰어든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 여름밤, 메리와 바이런, 바이런의 주치의인 ‘폴리도리’(벤 하디), 퍼시, 메리의 이복언니가 함께 모인 별장. 누군가 무서운 이야기를 써보자는 제안을 한다. 당시 과학 발전의 ‘충격’과 무서운 이야기, ‘공포스러운 감각’에 흥미를 느끼던 메리는 이에 착안하여 <프랑켄슈타인>을 완성해 출판하려 한다. 그러나 18세의 여자가 쓴 과학소설을 출판해줄 출판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게다가 남편 퍼시의 이름으로 출판하라는 제안까지 받는다. 어쩔 수 없이 소설을 익명으로 출판한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원작자임을 증명하고,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

당시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출현은 문학계를 뒤흔든 사건이었다. 작가가 누구냐는 이슈는 끊이지 않았고, 작가를 추측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애초에 ‘여성 작가’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영화를 통해 당시 여성 작가 앞을 가로막는 벽이 얼마나 높았는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생명 창조, 과학기술 발전의 책임, 문명 비판뿐만 아니라 실제로 여성적 글쓰기와 빅토리아 시대 여성에 대한 다양한 인식과 철학적 사유를 찾을 수 있는 작품이며 최초의 SF소설로 알려져 있다.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예고편

 

2. 설령 지금 모습이 엉망이라도

<하우 투 토크 투 걸스 앳 파티스>

How to Talk to Girls at Partiesㅣ2017ㅣ감독 존 카메론 미첼ㅣ출연 엘르 페닝, 알렉스 샤프, 루스 윌슨, 니콜 키드먼

메가폰은 존 카메론 미첼이 잡았다. 때는 1977년의 런던. 섹스 피스톨즈를 사랑하는 십 대 펑크 로커 ‘앤’(알렉스 샤프)은 부끄럼이 많아 여자들에게 쉽게 말을 걸지 못한다. 앤은 펑크족들에게 무시당한 후 우연히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들의 파티를 방문한다. 여기서 앤은 외계 소녀 ‘잔’(엘르 패닝)을 만난다. 사실 잔도 앤처럼 외계인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정상’이 아닌 존재다.

앤과 잔은 펑크 여왕 ‘보디키아’(니콜 키드먼)와 만나고, 펑크록을 부르며 진정 ‘살아있음’을 몸소 느낀다. “I feel alive, I feel open!”이라고 외치며 펑크록을 부르는 잔으로부터 십 대 외계인들은 ‘펑크 정신’, 즉 ‘반항심’을 습득하게 되고, 이는 외계인들의 전통적이고 권위적인 의식(부모로 인식되는 외계인들의 명령)을 거부하는 사태로 이어진다. 영화는 마치 (귀여운 버전의) 록키 호러 픽처쇼를 연상시킨다.

<하우 투 토크 투 걸스 앳 파티스> 트레일러

 

<스탠바이, 웬디>

Please Stand Byㅣ2017ㅣ감독 벤 르윈ㅣ출연 다코타 패닝, 토니 콜렛, 앨리스 이브, 토니 레볼로리

자폐증을 앓고 있는 ‘웬디’(다코타 패닝)는 보호소에서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스타트렉>의 모든 내용을 다 외워버릴 정도로 열렬한 <스타트렉> 덕후다. 그러던 어느 날 웬디는 파라마운트 픽처스가 후원하는 스타트렉 콘테스트를 알게 되어 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마감일까지 시나리오를 우편으로 보내지 못한 웬디는 결국 직접 투고하기 위해 LA로 향한다.

낯선 곳에서 발견된 웬디는 자신을 보호소로 돌려보내려는 사람들에게서 도망치기 바쁘다. 그러나 오직 웬디가 마음을 열어 보이는 상대는 가족도, 보호소 멘토도 아닌, <스타트렉> 세계관의 외계어 ‘클링온어’로 말을 걸어준 경찰 ‘프랭크’(패튼 오스왈트)였다. 웬디를 찾던 보호소 멘토 ‘스코티’(토니 콜렛)는 자신의 아들에게 웬디가 그토록 <스타트렉>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며, ‘스팍’(<스타트렉> 캐릭터)이 누구냐고 묻는다. 스팍은 감정이 없는 벌컨과 지구인의 혼혈로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느끼는 인물. 웬디는 비정상과 정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스팍에게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는 결코 다르지 않다’고 말이다.

<스탠바이, 웬디> 예고편

 

3. 내가 선택한 나의 방식

<어바웃 레이>

About Rayㅣ2015ㅣ감독 게비 델랄ㅣ출연 나오미 왓츠, 엘르 패닝, 수잔 서랜든, 테이트 도노반

여성의 몸을 가졌지만 남성 정체성을 가진 ‘레이’(엘르 패닝). 그는 전학 가기 전에 성전환을 위한 호르몬 요법을 완벽히 끝낸 뒤 새 출발을 하고 싶다. 그러나 현재 레즈비언으로 새 삶을 살아가는 할머니 ‘돌리’(수잔 서랜든)마저 쉽게 그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싱글 맘 ‘매기’(나오미 왓츠)는 호르몬 요법 동의 사인 앞에서 더 큰 혼란을 겪는다. 그들이 ‘설득 가능한 것’으로 레이의 영혼을 제멋대로 치부하는 동안, 레이는 말한다. “난 그냥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할 수 있는 평범한 남자이고 싶어”라고.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레이보다 어린 이복형제가 레이에게 “그럼 형이 내 형이야?”라고 묻는 장면이다. 레이가 “나는 여자의 몸으로 태어났다”며 대답을 흐리자, 그들은 이상하다는 듯 말한다. “But you’re a boy.” 티 없는 순수한 눈으로 보는 레이는 그저 평범한 열아홉 살의 남자아이일 뿐이다.

<어바웃 레이> 트레일러

 

<나우 이즈 굿>

Now Is Goodㅣ2012ㅣ감독 올 파커ㅣ출연 다코타 패닝, 카야 스코델라리오, 제레미 어바인, 올리비아 윌리암스

내일 당장 종말이 올 것처럼, 무면허 운전, 도둑질, 마약, 섹스 등 극단적 버킷리스트를 실행하는 열아홉의 ‘테사’(다코타 패닝). 그가 제멋대로 행동하게 된 까닭은 4년 전 암 선고를 받은 후, 다른 십 대들처럼 일상을 누리지 못해 암 치료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차라리 병원보다 일상 속에서 자유롭게 삶을 마감하고 싶다.

원나잇에 실패한 테사는 우연히 옆집 ‘아담’(제레미 어바인)을 만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테사는 아담과 버킷리스트를 해결하는 동안 뜨거운 삶에 대한 애착, 욕망을 느낀다. 아주 강렬한 사랑과 같은 살아있는 감정 말이다.

하지만 테사는 죽음인지 삶인지 모를 앞을 향해 1분 1초도 눈을 돌리지 않는다. 시한부 삶으로 왜, 어째서, 이제서야 사랑을 나누는 건지 그는 후회나 번복도 결코 하지 않는다. 그러기엔 Now is Good,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기에 바쁘니까 말이다.

<나우 이즈 굿> 예고편

 

Writer

나아가기 위해 씁니다. 그러나 가끔 뒤를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