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PRS for Music 

생기 넘치는 로큰롤, 서정적인 발라드 그리고 우수에 가득 찬 브릿팝의 낭만. 최근의 월드 와이드 음반 판매량을 살펴보면 아델, 에드 시런과 같은 영국 아티스트들이 큰 격차로 1위에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뮤지션을 꼽자면 단연 비틀스가 아닐까. 우리에게는 단지 영어로 만들어진 노래라 ‘영미권 팝’으로 묶여 분류되기도 하지만, 전 세계에서 영국의 음악만은 애초에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대중적인 문화를 창조했던 역사의 갈래를 가장 충실히 이어가고 있다.

당연히 영국의 대중음악은 클래식, 포크와 같은 전통 음악의 계보를 이어가면서도 테크노, 하우스와 같은 일렉트로니카가 새로이 태어나 댄스 음악으로 자리 잡기에도 수월한 곳이었다. 그 흐름을 주도했던 영국의 인디 레이블, 닌자튠(Ninja Tune)이 1990년 이후로 올해 28주년을 맞았다. 쉽사리 팝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감 있게 일렉트로니카의 명성을 지키는 이 레이블의 매력은 무엇일까. 다채로운 사운드, 혁신적인 프로듀싱 그리고 탁월한 캐스팅으로 현재까지 그 명성을 이어가는 닌자튠의 대표 뮤지션들을 만나보자.

 

 

Coldcut

출처 - Independent 

닌자튠의 수장. 콜드컷(Coldcut)은 힙합과 소울을 기반으로 하여 이후 R&B와 재즈 그리고 클래식까지 많은 장르를 일렉트로니카 팝 사운드에 녹여내며, 80년대 결성 이후로 현재까지도 업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는 밴드이다. 당시 실험적이었던 샘플링으로 여러 무대에서 디제잉으로 자리를 잡고 라디오 방송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대표곡으로 ‘People Hold On’과 ‘Doctorin’ the House’ 같은 세기말 미래지향적 사운드부터, 재즈 스탠더드였던 원곡을 탁월하게 편곡한 ‘Autumn Leaves’ 등의 명곡이 있다. 콜드컷의 장기인 브레이크 비트를 최대한 활용한 ‘Timber, True Skool’은 영국을 대표하는 음악이자 레이블 닌자튠의 진가를 알 수 있는 빼어난 트랙들이다. 재기발랄했던 초기의 브리티시 힙합을 다시 꺼낸 ‘Walk a Mile in My Shoes’는 몽롱한 멜로디를 다채로운 편곡으로 녹여내어 콜드컷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남았다.

Coldcut – Autumn Leaves (No Flames Version)

콜드컷 활동 이전에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던 멤버 맷 블랙(Matt Black)의 영향력 덕분인지, 닌자튠은 몇 해 전에 25주년을 맞이하여 Ninja Jamm이라는 리믹싱 어플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전자음악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이 쉽게 리믹싱 도구를 접하는 동시에 자사의 음악을 자연스레 노출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 볼 수 있다. 결성 초기에 해적 방송이었던 Kiss FM에서 이름을 알렸던 것처럼, 밴드는 스트리밍 서비스와 손을 잡는 등 당대의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여 실험성을 더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Bonobo

출처 - Financial Times 

국내에서도 꽤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보노보(Bonobo)는 콜드컷의 장르 포용력에 인도 음악, 아프리카의 토속적인 사운드까지 수렴하며 매회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중견 뮤지션이다. 스산한 앰비언트 사운드를 시작으로 트립 합과 퓨처 개러지 같은 최신 유행 기류를 놓치지 않으면서 음악적인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댄서블한 넘버로 중무장해 페스티벌 무대를 압도하는 디제잉 스킬과 더불어, 어쿠스틱과 오케스트라 세션으로 잘 차려낸 풍성한 풀 밴드 스테이지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이다.
기억에 남는 히트곡이 없더라도 수많은 아티스트가 피처링으로 참여하는 이유가 있다. 가장 최근작으로 Rhye가 참여한 트랙 ‘Break Part’와 Nick Murphy의 섬세한 보컬 표현력을 십분 활용한 ‘No Reasons’, 대표작으로 인도 출신 뮤지션 Bajka가 함께한 ‘Days to Come’은 묘하게 하나의 지향점을 향한다.

Bonobo Boiler Room London — Live at Alexandra Palace

아티스트의 통일된 개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오로지 잘 만든 음악 하나에 집중하고 싶다는 그의 포부답게, 보노보는 일렉트로니카 그 자체에 그치지 않고 악기의 개별 사운드를 파헤치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샘플링한 사운드로 다시 실제 악기의 날 것 그대로를 재현하려는 노력은 최근에 부쩍 늘어났다. 그중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로 좋은 평을 받았던 트랙 ‘Cirrus’만 보더라도 보노보의 음악은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호화찬란함이 있다.

 

 

The Cinematic Orchestra

출처 – Wegow 

지금은 라운지 뮤직의 일부로 여겨지는 누 재즈. 다운 템포의 차분함에 클래식한 재즈와 일렉트로니카의 섬세한 그루브를 갖추었다면 대중성과 예술성은 태생부터 확보하였다고 봐도 좋겠다. 이름만 들으면 경음악을 지향할 것만 같은, 시네마틱 오케스트라(The Cinematic Orchestra)는 DJ 멤버를 비롯해 색소폰과 피아노 담당까지 갖추어 트렌디한 사운드를 고풍스럽게 살려내는 밴드이다.

The Cinematic Orchestra - To Build A Home

이름 그대로 시네마틱한 사운드는 깊은 여운을 남기는 동시에 예스러운 분위기로 국내 여러 CF에 삽입되기도 하였다. 밴드는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재해석하거나 다큐멘터리의 사운드트랙을 총괄하며, 실험적인 시도에 전문성을 더하고 있다. 대표곡 ‘To Build a Home’은 긴 러닝타임에도 심연을 울리는 아련한 멜로디로 큰 사랑을 받았다.

 

 

ODESZA

출처 - Billboard 

앞서 소개한 뮤지션들이 닌자튠의 정착기와 전성기를 이끌었다면, 뒤이어 소개하는 두 뮤지션은 현재의 닌자튠을 대표하며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모두 이어받고 있다. 일렉트로니카 듀오 오데자(ODESZA)는 일찍이 하이프 머신에서 총망 받는 신예로 주목받으면서 개최하는 공연마다 매진을 기록한 거물급으로 성장했다. 꿈결 같은 멜랑꼴리한 선율에 가차 없이 밟아대는 묵직한 비트감으로 대표되는 밴드의 사운드는 ‘Higher Ground’, ‘Across the Room’, ‘Say My Name’과 같은 트랙에서 피처링 아티스트의 감성을 예리하게 캐치하기까지 한다.

ODESZA - Line Of Sight (feat. WYNNE & Mansionair)

Line of Sight에서 보여준 미래지향적인 멜로디와 다이내믹하고 풍성한 프로듀싱은 오데자의 능력이 집약된 순간이다. 일상의 희로애락을 이야기하면서도 아릿한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향취는 곧 밴드의 심미안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닌자튠 소속답게 장르 변용에 능한 데다 이전 세대의 음악에서 현대의 감성을 캐치하는 놀라움이 공존한다.

 

 

Young Fathers

출처 - The Guardian 

영국 에든버러 출신의 얼터너티브 힙합 밴드 영 파더스(Young Fathers)는 최근의 힙합과는 다소 다른 노선을 취한다. 아프리카 출신 멤버 두 명의 존재감으로 전하는 특유의 토속적인 리듬감과 부족 느낌의 공격적인 코러스 라인은 요즘 유행하는 소위 ‘센 척’과는 거리감이 있다. 이들은 일상에서 흔히 느끼는 고립감, 어두운 내면, 체제를 향한 저항 정신을 중의적으로 우회하여 토로한다.

Young Fathers – Holy Ghost

3집 수록곡 ‘Fee Fi’에서와 같이, 날 것 그대로의 사운드가 오르간과 가스펠풍 코러스와 만나니 음산한 와중에 무게감이 상당하다. 변칙적인 전개에 역대 가장 캐치한 후렴구를 갖추었지만 성서를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하게 이야기하는 Holy Ghost는 묘하게 해석의 여지를 남겨놨다. 팝의 정공법은 거부하고 기이한 음악을 추구한다는 영 파더스. 사이키델릭의 어두움에 온갖 다채로움을 녹여내니 귀는 마냥 즐겁고 머리는 파헤치려는 욕심으로 가득 차고 만다.

 

닌자튠 홈페이지 

 

Writer

실용적인 덕질을 지향하는, 날개도 그림자도 없는 꿈을 꾸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