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을 방문한 재즈 팬이라면 한 번쯤은 들르고 싶은 역사적인 재즈 클럽이 바로 빌리지 뱅가드(Village Vanguard)다. 1935년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문을 연 이 클럽은, 처음에는 포크 뮤직을 연주하고 시인들이 시를 낭송하는 곳으로 시작했지만 1957년부터는 재즈 전문으로 전환하여 수많은 재즈 라이브 음반의 녹음 현장으로 유명해졌다.

지난 6월 역사적인 재즈클럽 빌리지 뱅가드의 소유주 로레인 고든(Lorraine Gordon)이 9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는 1940년대 재즈에 광적으로 열광하던 젊은 백인 팬들을 지칭하던 힙스터였지만, 블루노트 레이블과 빌리지 뱅가드의 비즈니스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강인하고 영리한 경영자로 명성을 얻었다.

 

뉴저지의 광적인 재즈팬

뉴저지 출신의 로레인 스타인은 어린 시절 라디오를 통해 알게 된 재즈에 열광하였고, 15세부터 이미 재즈 음반을 모으기 시작했다. 수시로 성인인 것처럼 화장하고 뉴욕의 재즈클럽에 드나들던 그는, 18세이던 1940년 한 제과점에서 우연히 독일 이민자 알프레드 라이언(Alfred Lion)을 만난다. 그는 재즈 전문 레이블을 설립한 직후였는데, 레이블 이름은 블루노트(Blue Note)였다. 두 사람은 이내 재즈 이야기를 나누며 데이트를 시작했고 2년 만에 부부가 된다. 로레인 스타인은 블루노트에서 일하며 남편과 함께 재즈 뮤지션을 섭외하였고 음반 제작과 배송 일을 맡아, 재즈 팬에서 재즈 비즈니스의 세계로 들어선다.

NEA Jazz Masters의 로레인 스타인 영상

 

무명의 기인 피아니스트 몽크를 발굴하다

로레인 스타인은 기벽의 무명 재즈 피아니스트 델로니어스 몽크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남편에게 추천한다. 블루노트는 당시 레코딩 경력이 전무한 몽크와 세 장의 음반을 낸다. 당시 무명이던 그의 음반에 <Genius of Modern Music>(현대 음악의 천재)이라는 제목을 내걸었으나 음반 판매는 저조했다. 로레인 스타인은 답답한 나머지 할렘으로 나가 음반 가게 주인을 만났지만 “몽크는 피아노를 칠 줄 모른다”는 볼멘소리만 들었다. 그 말에 로레인 스타인은 “기다려봐요. 이 사람은 천재라구요.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되받아쳤다. 몇 년 후 몽크의 블루노트 음반은 가치를 뒤늦게 인정받으며 레이블의 평판과 사세를 끌어올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Genius of Modern Music Vol.2>(1951)에 수록한 ‘Ask Me Now’

그는 여름 축제에서 우연히 만난 빌리지 뱅가드의 경영주 맥스 고든(Max Gordon)에게도 몽크를 추천하여 연주 일정을 잡았지만, 클럽은 한산했고 그나마 입장한 사람들도 몽크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빌리지 뱅가드를 최고의 재즈 클럽으로 만들다

1949년 그는 알프레드 라이언과 이혼하고 빌리지 뱅가드의 맥스 고든과 재혼한다. 맥스 고든은 예술과 문학을 좋아했고 재즈보다 포크 음악을 더 사랑했다. 두 사람의 결혼 후 빌리지 뱅가드는 점차 재즈 비중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로레인 스타인은 이러한 방향성을 주도했다. 빌리지 뱅가드는 지하에 위치하여 마치 스튜디오와 같은 훌륭한 음향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덕분에 이 공간은 뮤지션들의 사랑을 받으며 100여 장이 넘는 재즈 실황 음반의 산실이 되었다. 1989년 맥스 고든이 사망하자 빌리지 뱅가드는 하루 문을 닫았다가 다음날 다시 문을 열었고, 로레인 고든이 다시 역사를 이어 나갔다.

빌리지 뱅가드에서 공연하는 바브라 스트라이젠드(2010). 관객 중에는 클린턴 부부도 있다.

 

뉴요커의 삶과 재즈에의 공헌

빌리지 뱅가드 창업자 맥스 고든과 로레인 고든

블루노트에서 음반 일에 치여 살았던 그는, 재혼 후 자유로운 뉴요커의 생활로 돌아온다. 1960년대에는 반전 반핵 단체인 Women Strike for Peace의 일원으로 시민 행동가의 대열에 합류했으며, 1980년대에는 브루클린 뮤지엄에서 예술과 관련된 일을 시작했다. 1989년 남편이 사망하자 하루 동안의 고민 끝에 빌리지 뱅가드의 유산을 이어받았다. 2006년에 출간한 자서전 <Alive at the Village Vanguard: My Life In and Out of Jazz Time>은 ASCAP Deeps Taylor 상을 받았고, 2013년에는 미국 최고의 권위있는 재즈상 NEA Jazz Master Award를 거머쥐며 재즈 음악에의 공헌을 인정받았다.

로레인 고든의 자서전 표지

“의사 결정할 일이 있으면, 맥스(남편)이라면 어떻게 했을지 반문해요. 그리고 그 반대로 하죠.”라며 농담을 하던 로레인. 그가 2018년 6월 9일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고 빌리지 뱅가드 측이 밝혔다. 또한 빌리지 뱅가드는 작은딸 데보라 고든이 이어서 운영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빌리지 뱅가드 홈페이지 

메인 이미지 via ‘the Austral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