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어느 날, 우연히 생긴 홈페이지에 무엇을 채워 넣을까 고민하던 박길종은 무엇이든 입점 가능한 상가를 만들기로 한다. 그리고 각자 살면서 배우고 느껴온 모든 것을 이용해 다른 사람들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상점들을 모았다. 현재 박가공의 ‘가공소’, 김윤하의 ‘다있다’, 송대영의 ‘영이네’로 채워진 길종상가는 말 그대로 '무엇’이든 만들어 주고 적당한 대가를 받는다. 그 ‘무엇’에는 가구, 음원, 조명, 식물, 글, 그림, 디자인, 인력 같은 단어가 골고루 들어가도 무방하다.

길종상가가 만들어낸 것들은 대개 공간을 이루며 필요한 용도 이상의 개성을 뽐낸다. 그러나 길종상가의 공간엔 정작 용도를 가늠하기 어려운 것들이 가득하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을지로에 자리한 작업실에서 그것들을 가지고 묵묵히 필요한 것을 만들어내는 길종상가의 관리인 박가공을 만났다. 이제 웬만한 사람들은 길종상가를 다 안다는 얘기를 꺼내자, 길종상가 관리인 박길종이자, 가공소를 맡고 있는 박가공의 상냥한 대답이 돌아왔다.

 

길종상가를 처음 알게 된 게 ‘일력’ 때문이었어요. 박가공 씨가 SNS에 매일 다른 모습으로 찍어 올리는 일력 사진도 아주 재밌게 봤고요. 그런데 올해 1월 1일부터는 일력 사진이 안 올라오네요. 혹시 아이디어가 고갈된 건가요?

아이디어는 계속 낼 수 있어요. 여기저기서 찍으면 되거든요. 그렇게 3년을 매일같이 했는데 이제는 조금 힘들어서 쉬려구요. 조금 귀찮기도 하고요.(웃음) 그런데 갑자기 안 하니까 허전하긴 하더라고요. 2012년도부터 만들기 시작한 일력도 벌써 5년 째네요. 원래 한 장씩 찢는 형태의 일력은 있었지만, 그 당시 옛날식 일력에 디자인을 접목해서 만들어 파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그러고 보면 그때는 미술이나 디자인 분야의 개인이 만든 물건을 직접 판매하는 것이 흔치 않았죠. 물론 지금은 이런 일력도 많이 생겼어요.

 

그중에서도 길종상가에서 만든 올해 일력은 품절대란이 일어났다고 하던데, 그동안 쌓여온 일력의 수만큼 길종상가의 인지도와 영역이 넓어진 것을 실감하나요?

처음 만난 분에게 ‘길종상가’라고 소개했을 때 그냥 알아보시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아, 그 유명한 길종상가’라고 말씀해주시는 분이 조금 늘어난 것 같긴 해요. 그게 저한테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아직 어색한 말이에요. 사람들이 왜 ‘유명’하다고 말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동안 여러 매체에 많이 소개됐고 SNS에서 알음알음 알려진 덕인데 그 영역은 넓으면서도 좁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이런저런 변화도 많았어요. 현재의 길종상가는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요?

일단 길종상가 멤버가 바뀌었죠. 처음 멤버였던 ‘유익점’이 빠지고 ‘영이네’가 들어왔어요. 영이네는 정보가 별로 없죠? 음악 작업에 일러스트를 가미한 그래픽 디자인 작업을 하는 곳이에요. 홈페이지 보시면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길종상가 초반부터 같이 해온 ‘다있다’는 마침 홈페이지 도메인이 만료되서 정보가 안 뜨는데요.(웃음) 꾸준히 활동 중이에요. 길종상가 이름으로 같이 하는 프로젝트 외에도 각자만의 일을 천천히 하고 있어요.

 

활동 분야가 서로 다른 가공소, 영이네, 다있다는 주로 어떤 방식으로 협업하나요?

저에게 개인적으로 의뢰가 들어오는가 하면, 길종상가 전체에 들어오는 의뢰가 있어요. 다만, 길종상가 전체에 의뢰가 들어왔다 해도 각자의 스케줄이나 의사에 따라 달라지죠.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건 아니고, 각자 자율적으로 결정해요. 

▲ 커먼센터 '혼자 사는 법'(2015) 전시장의 길종상가 방

길종상가 공동 작업은 주로 전시가 기억에 남아요. 특히 커먼센터 ‘혼자 사는 법’ 전시가 인상깊었어요. 텅 비어 있던 공간을 완전히 집처럼 꾸몄죠.

‘혼자 사는 법’이라는 주제를 놓고 어떻게 할지 의논하다가, 다있다의 김윤하 씨 아이디어로 에어비앤비 콘셉트로 하게 됐어요. 커먼센터는 원래 아무것도 없는 휑한 공간이었는데 바닥부터 천장까지 전부 손을 봤어요. 정말 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로 가구랑 소품을 세팅한 후 사진을 찍어서 에어비앤비 사이트에 올리고, 거기서 예약한 사람들만 이 방을 관람할 수 있게 했어요. 예약을 안 하면 커먼센터에 방문해도 이 방을 들어가 볼 수 없는 거죠. 전시 기간이 한 달 조금 넘는 정도였는데 하루 만에 한 달 치 예약이 매진됐어요. 그래서 전시 마지막 날은 예약 없이 관람할 수 있게 공개하기도 했죠.

▲ '에르메스 신라 호텔 매장 윈도우' 작업 스케치와 사진 (2016.2월)

최근 작업 중 하나인 에르메스 쇼윈도 매장 작업은 어땠나요? 대형 럭셔리 브랜드와 소규모 스튜디오와의 협업이라는 이슈뿐 아니라 독창적인 디자인으로도 많은 주목을 받았어요. 에르메스와의 작업은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해요.

에르메스는 길종상가 멤버들과 아이디어부터 디자인까지 함께 해오고 있는 공동 작업이에요. 일 년에 계절별로 네 번 작업하는 방식으로 2년 전부터 시작해서 올해도 준비하고 있어요. 지금 에르메스 매장 두 군데를 하고 있는데, 제작기간이 보통 한 달 정도 걸려요. 그래서 3개월에 한 번씩 준비하는 거지만 막상 아이디어부터 제작 단계까지 합치면 거의 1년 내내 작업하고 있어요. 에르메스와의 협업은 꾸준히 할 수 있는 작업을 맡게 된 좋은 기회였죠. 또 스토리텔링을 염두에 둔 디자인도 그렇고, 평소에 안 쓰던 재료도 사용하게 되면서 전에 해왔던 작업과 꽤 달랐어요. 그런 면에서 더 재밌었고요. 또 에르메스 쇼윈도는 유독 큰 규모의 작업물이 많았는데, 그걸 계기로 작업실도 옮기게 됐어요. 이전 작업실은 굉장히 좁았거든요.

 

작업실 위치를 을지로로 옮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이태원 보광동에 있던 길종상가 쇼룸 바로 근처에 작은 작업실이 따로 있었어요. 그 동네에 전부터 오래 살았는데, 예전엔 '워크스'라는 디자인 스튜디오와 저희 쇼룸밖에 없었어요. 지금 우사단로라고 불리는 그 길에 이제는 가게나 스튜디오도 많이 생겼고, 그만큼 집값도 많이 올랐어요. 작업실을 옮기려 했을 때 집도 보광동 근처라 이태원을 생각했지만, 규모나 비용 면에서 지금의 을지로 작업실로 정하게 됐어요.

을지로라는 공간에 터를 옮기고 나서 겪은 가장 큰 변화가 무엇인가요?

을지로는 재료나 거래처 때문에 워낙 많이 오던 곳이라 운송료와 교통비 절약도 되고요. 작업하기에는 정말 최상의 세팅이 되어있는 곳이에요. 이전 작업실 건물은 일반 주택이어서 방도 나뉘어 있고 천장도 낮았어요. 작업 재료를 옮길 때도 불편했죠. 지금은 넓은 공간을 활용해서 여러 작업을 펼쳐 놓고 같이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칠을 해서 말려 놓는 동안 다른 작업 할 수도 있고요. 재료 사는 일도 훨씬 편해졌어요. 자전거 타고 왔다 갔다 하면서 바로 사 오곤 해요. 2015년 12월에 을지로로 왔으니 이제 갓 1년 넘었네요. 다음에 만약 다른 작업실을 구하게 되더라도 을지로에 있고 싶어요.

 

이태원에서는 개방된 형태의 쇼룸을 운영했는데, 을지로에는 작업실만 둔 이유가 있나요?

이태원 쇼룸은 주말에만 운영했고, 오는 사람도 많이 없었어요. 그래서 수익이나 여러 가지 이유에서 쇼룸을 유지하기에 어려움이 많았어요. 그 당시에는 ‘굿즈’ 같은 개념이 흔치 않은 때라 그랬을 수도 있는데, 만약 지금 다시 운영한다면 결과가 어떨지 모르겠네요.

 

현재 작업실 위치가 독특해요. 이 쪽이 목재를 비롯한 다양한 재료상이 밀집해 있는 곳인데, 한 골목만 안으로 들어오니 굴비가 가득하더라고요.

작업실 쪽은 카페나 음식점이 많은 을지로3가 쪽이랑은 전혀 다른 분위기죠. 작업실 앞에 있는 시장이 전국 최대의 건어물 시장이래요. 특히 작업실 바로 앞은 굴비 라인이고요. 다행히 냄새는 많이 안 나죠? 처음 작업실 왔을 때 건어물과 맥주를 갖다 놓고 건어물 파티 같은 걸 열어도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웃음)

 

을지로가 생각보다 굉장히 넓고 다양한데, 이 곳에서도 특히 많이 가는 공간이 있나요?

저 같은 경우엔 주로 을지로 중부시장 옆에 목재상을 많이 가고요. 을지로4가 뒷골목에 금속 골목도 많이 가고요.

작업실에도 직접 가공한 것들이 많을 것 같아요. 특히 몇 개는 어디서 봤던 것 같기도 해요.

지금 앉아있는 소파는 기성품이고요.(웃음) 전시에 쓰고 난 뒤에 해체한 것들이나 남은 것들을 놓아뒀어요. 전시 설치에 쓰였던 원기둥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몇 개는 테이블 다리로 쓰고 있고 몇 개는 팔기도 했어요. 사무실 안에 거울이나 유리도 전시 때 썼던 것들이에요. 저기 노란색 아크릴이랑 뒤쪽에 철망도 2015년 언리미티드 에디션 때 사용했던 거네요. 벽에 붙어있는 자석 타공판도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사용하고 난 뒤 가져온 거예요.

 

길종상가 작업 중 가장 의미 있었던 작업이 있나요?

그 질문은 항상 받는데요. 지나간 건 금방 잊히잖아요. 항상 당시에 몰두하고 있는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참, 가공소의 모든 물건은 정말 평생 A/S 해주나요?

물론이죠. 그런데 아직 특별히 A/S 해드려야 했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길종상가

홈페이지 bellroad.1px.kr
페이스북 www.facebook.com/KJarcade
박가공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parkgagong

 

인터뷰 유미래

사진 이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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