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은 우리로 하여금 영화가 제공하는 경험과 상상에 온전히 몰입하게 하는 작품의 핵심적인 뼈대이다. 2018년 9월 6일 개봉한 <몰리스 게임>의 감독 아론 소킨이 바로, 영화감독 이전에 그와 같은 각본가로 이름을 날린 대표적 이야기꾼이다. 할리우드 가장 유명한 각본가 중 한 사람으로서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에 두거나 실화에 가까운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창조해내는 영화판 조물주 아론 소킨의 대표작을 살펴본다.

<몰리스 게임> 예고편

 

<어 퓨 굿 맨>(1992)

A Few Good Men | 연출 로브 라이너 | 출연 톰 크루즈, 잭 니콜슨, 데미 무어, 케빈 베이컨, 키퍼 서덜랜드, 케빈 폴락, 제임스 마샬, 크리스토퍼 게스트, 매트 크레이븐

<어 퓨 굿 맨>은 아론 소킨의 영화 각본 데뷔작으로, 자신이 썼던 동명의 희곡을 각색한 작품이다. 당시 이 작품은 큰 흥행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아론으로 하여금 첫 영화에서 1993 골든글로브 각본상 후보에 오르는 영예까지 안겨주었다. 이번 <몰리스 게임>에서도 중요한 아론 특유의 ‘법정 장면’ 사랑은 이 데뷔작부터였다. 당대 최고 스타였던 톰 크루즈와 데미 무어가 출연하였으며 베테랑 잭 니콜슨이 아론 소킨에 의해 탄생한 주옥같은 명대사를 남긴 영화이기도 하다.

Kaffee(캐피 중위): I want the truth! (진실을 원합니다!)
Jessep(제셉 장군): You can't handle the truth! (넌 진실을 감당 못 해!)

영화에서는 쿠바 주둔 미군 해병 부대 안에서 한 살인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사건 뒤에 감춰진 배후를 파헤치려는 ‘캐피’ 중위(톰 크루즈 분)와 강력한 카리스마로 똘똘 뭉친 ‘제셉’ 장군(잭 니콜슨)이 진실을 두고 법정 안팎에서 불꽃 튀는 설전을 벌인다. 군대 내 부조리 맞서는 줄거리의 이 이야기는, 비록 있는 그대로의 실화는 아니었지만 비슷한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함으로써 군 안팎 많은 이들에게 경각심을 주기도 한 바 있다.

<어 퓨 굿 맨> 예고편

 

<소셜 네트워크>(2010)

The Social Network | 연출 데이비드 핀처 | 출연 제시 아이젠버그, 앤드류 가필드, 저스틴 팀버레이크, 아미 해머, 루니 마라, 브라이언 바터, 조쉬 펜스, 더스틴 피츠시몬스

이후 TV시리즈로 잠시 외도하기도 했지만 <대통령의 연인>(1995), <찰리 윌슨의 전쟁>(2007) 등 각본을 맡는 영화마다 골든글러브 각본상 후보에 오르며 헐리웃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던 아론 소킨은, 드디어 <소셜 네트워크>(2010)를 통해 골든글러브는 물론 아카데미까지 첫 수상을 하게 된다.

Mark(마크): Did I use any of your code? (내가 너희 코드를 하나라도 훔쳤어?)
Divya(디비야): You stole our whole goddam idea! (네가 우리 아이디어를 몽땅 훔쳤잖아!) (중략)
Mark: If you guys were the inventors of Facebook you’d have invented Facebook. (페이스북이 너희 아이디어였다면 너네가 만들어냈겠지.)

<소셜 네트워크>가 거둔 비평적 성과는, 이 영화가 페이스북 설립과정을 논픽션 소설로 집필한 벤 메즈리치의 원작 <우연한 억만장자>(The Accidental Billionaires)에 기대어 적당히 성공한 사업가를 그려낸 전기영화가 아니었다는 데에 있다. 아론 소킨은 당시 재판 기록을 속속들이 살피는 디테일과 마크 저커버그의 인간적인 고민을 함께 어울리려는 노력을 부대하며 실화에 얽힌 인물들과 사건의 지도를 재밌고도 근사하게 재구성해낸다.

<소셜 네트워크> 예고편

 

<스티브 잡스>(2015)

Steve Jobs | 연출 대니 보일 | 출연 마이클 패스밴더, 케이트 윈슬렛, 세스 로건, 제프 다니엘스, 사라 스누크, 캐서린 워터스턴, 마이클 스털버그, 존 오티즈

아론 소킨은 <소셜 네트워크>에 뒤이어 2011년 빌리 빈의 신화를 다룬 <머니볼>, 2015년에는 애플의 CEO였던 스티브 잡스의 삶을 그려낸 영화로 또다시 골든글러브 노미네이트와 함께 상을 거머쥐며 탁월하며 훌륭한 전기영화 각색가로서의 명성을 굳힌다. 이중 <스티브 잡스>에서는 특히 아론의 장기 중 하나인 운율 넘치는 긴 대화가 시종일관 이어진다.

Steve Wozniak(스티브 워즈니악) : What do you do? You're not an engineer. You're not a designer. You can't put a hammer to a nail. I built the circuit board! The graphical interface was stolen! So how come ten times in a day I read Steve Jobs is a genius? What do you do? (네가 하는 일이 뭔데? 넌 엔지니어도 아니고, 디자이너도 아니야. 망치질로 못질도 못 하고, 그 회로 기판은 내가 만들었어. 그래픽 인터페이스는 훔친 거야. 그런데 어떻게 해서 하루에도 열 번씩 스티브 잡스가 천재라는 글을 읽게 되는 거야? 네가 하는 게 뭔데?)
Steve Jobs (스티브 잡스): Musicians play their instruments. I play the orchestra. (뮤지션들은 자기 악기를 연주하고, 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지.)

<스티브 잡스> 예고편

아론 소킨이 실화나 전기를 잘 다룬 각본가라지만, 사실 그는 단 한 번도 어떤 인물의 전체 일생을 다룬 적이 없다. 언제나 해당 인물의 가장 치열한 당대와 성공적인 미래를 연결하는, 짧고 흥미로운 순간을 집중하여 보여주곤 한다. 더불어 아론은 각 스토리들을 통해 우리 스스로도 고민해볼 만한 진지하고도 인간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이것이 금빛으로 빛나는 각자의 순간들을 모두가 관심 가질 만한 더욱 아름다운 황금빛 이야기로 재구성해내는 아론 소킨만의 방법이다.

 

메인 이미지 via ‘the office’ 

 

Writer

차분한 즐거움을 좇는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것과 일상에 대한 좋은 생각,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옮긴다. 학부 시절 네이버 파워블로그에 선정된 후 쓰기를 이어와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웹진 <음악취향Y>, 잡지 <재즈피플>, 신문 <아주경제> 등에 글을 기고한다. 누구나 늘 즐겁기를 바란다. 너무 들뜨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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