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감독들은 좁은 범위의 지역만을 비추며 더욱 깊게 파고든다. 이렇게 만든 작품은 관객을 오로지 한 마을로 끌어들여 그곳의 삶을 직시하게 한다.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을 그린 영화 4편을 소개한다.

 

<비트윈 랜드 앤 씨>

Between Land and Sea ㅣ2016ㅣ감독 로스 휘태커

아일랜드 서쪽에 ‘라힌치(Lahinch)’라는 마을이 있다. 이곳은 원래 골프 외의 스포츠를 찾아보기 어려웠던 조용한 마을이었다. 그러나 대서양의 파도에 반한 서퍼들이 라힌치로 몰려들면서, 마을은 서퍼들의 터전으로 바뀌어 간다. 2018년 국내 개봉한 <비트윈 랜드 앤 씨>는 라힌치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비추는 다큐멘터리다. 이곳 사람들은 명료한 목표를 안고 성실하게 산다. 이들은 ‘바다’ 위의 서핑이라는 가장 큰 기쁨을 누리기 위해 ‘땅’ 위에서의 일상 역시 착실하게 일군다.

다큐멘터리는 라힌치 사람들이 거친 땅을 고르고 그 위에 씨를 뿌리는 모습, 집을 짓고 아이를 낳는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준다. 이 일상은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결국 라힌치를 예전과 다른 모습으로 바꾸고야 만다. 삶이 모이고 쌓여서 달라져가는 공간을 지켜보는 일은 끝내 뭉클하다.

<비트윈 랜드 앤 씨> 예고편

 

<우드잡>

ウッジョブ 神去なあなあ日常, Wood Job! ㅣ2014ㅣ감독 야구치 시노부ㅣ출연 소메타니 쇼타, 나가사와 마사미, 이토 히데아키, 유카

하루하루 그저 편하게만 살고 싶은 ‘히라노 유키’(소메타니 쇼타)는 대학 입학시험에 떨어진 후, 홍보 전단의 모델이 예쁘다는 이유로 산림관리 연수 프로그램에 지원한다. 그러나 연수가 이뤄지는 곳은 휴대폰조차 터지지 않는 깊은 산 속 마을. 의욕도 열정도 없는 도시 청년은 낯선 산마을에 적응할 수 있을까?

영화는 주인공의 고군분투기를 유쾌하게 보여주는 한편, 산마을에서 일하고 터를 잡은 사람들의 삶 역시 실감 나게 그린다. 백 년 후에 살아갈 자들을 위해 나무를 심고 가꾸는 마을 사람들에게선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이들은 자신이 나서 자란 땅에 대해 감사함을 간직한 채 살아가며, 오랫동안 전해져 온 전통을 지키는 일에도 최선을 다한다. 특히 모든 이웃이 함께 꾸리는 전통 축제 장면을 보고 나면, 부지런하고 낙천적인 산마을 사람들의 매력에 빠지게 될 거다. 미우라 시온의 소설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이 원작.

<우드잡> 예고편

 

<소성리>

Soseongri ㅣ2017ㅣ감독 박배일ㅣ출연 도금연, 임순분, 김의선

사드 배치 문제는 연일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그 관점이 어떻든 사드에 대한 정보는 수없이 생산되고 공유되었다. 그러나 정작 사드가 배치되는 장소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영화 <소성리>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박배일 감독은 모두가 주목하는 ‘사드’가 배치되는 곳이지만, 누구도 알려고 들지 않는 ‘마을’ 자체를 조명한다.

영화는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의 작은 마을 소성리를 오랜 시간 지켜온 사람과 동물을 비춘다. 평범하고 느리지만 한결같이 흘러가는 소성리 사람들의 일상은 진정한 평화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마을엔 사람이 있고, 그들은 매일 비슷하고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짚는 영화.

<소성리> 예고편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Bedevilledㅣ2010ㅣ감독 장철수ㅣ출연 서영희, 황금희, 황화순, 박정학, 배성우

주민 모두 연결되어 서로를 속속들이 아는 작은 마을은 마냥 정다워 보인다. 그러나 이 구조는 종종 비상식적인 일을 도모하고 은폐하며 지속하는 굴레가 되기도 한다. 영화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은 고립된 섬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은행 직원 ‘해원’(지성원)은 휴가를 맞아 잠깐 살았던 섬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어린 시절 친구 ‘복남’(서영희)과 재회한다. 이방인인 해원의 눈에는 복남을 둘러싼 섬의 분위기가 어쩐지 뒤틀려 보인다. 복남은 남편에게 구타당하고, 시모로부터 육체와 정신 노동을 강요받을 뿐 아니라 시동생에게 성폭행마저 당하고 있다.

섬에 사는 모든 사람이 이 사실을 알지만 묵인하며, 침묵은 또 다른 폭력이 되어 복남의 삶을 조인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나 단 하나도 잊히지 않고 차곡차곡 쌓인 분노는 한순간 발화하고, 복남은 누구도 도망칠 수 없는 작은 마을을 낫 한 자루 들고 헤집기 시작한다. 영화는 아물 틈 없을 만큼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폭력이 방치되었을 때의 상황을 그리며 문제를 제기한다. 이때 ‘섬마을’이라는 배경은 기이하고 위압적인 분위기를 강화해 작품의 메시지를 더욱 명확히 전달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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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