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30대 여성의 ‘정신적 지주’라 불리며 오랜 시간 동안 베스트셀러에 오른 만화 작가 마스다 미리. 그가 그린 만화들은 30대 여성들이 겪을 법한 일상 속 고민들을 간결한 그림체와 담담하고도 위트 있는 대사에 담아내며 많은 독자들에게 위로를 준다. 특히 작품 속 일본 여성의 삶은 우리나라 여성들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너른 공감을 이끈다. 여성들이 살아가며 겪는 작은 고민들부터 사회적으로 받는 억압과 이로 인해 생기는 갈등의 모습들이 마스다 미리의 작품 속에 모두 담겨 있다.

마스다 미리의 대표적 캐릭터 수짱 ©MASUDA Miri

마스다 미리가 4연작으로 그린 ‘수짱 시리즈’는 ‘수짱’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개인의 삶을 풀어내며 30대 여성의 삶과 일상을 집중적으로 관망한다. 수짱 시리즈는 30대 중반인 수짱과 그의 친구들이 일, 연애, 결혼, 출산, 육아, 노후 등의 문제에 대해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만화의 대부분은 수짱이 자문자답하며 혼자 생각을 풀어나가는 의식의 흐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수짱이 툭툭 내뱉는 독백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소소한 생각들과 닿아 있으며 때때론 인생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들까지도 깊게 던진다.

수짱 시리즈는 각각 다음과 같은 제목들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아무래도 싫은 사람>, <수짱의 연애>. 특히 첫 두 시리즈의 제목은 인생에서 종종 마주칠 법한 굵직한 질문들로 지어져 있다. 우리네 마음 깊숙이 숨겨놓은 불안감이 튀어나올 때 한 번씩 드는 의문들 말이다. 수짱이 앞 두 시리즈에서 던지는 평범하고도 거대한 질문들을 차근히 살펴보며 그 질문에 대한 우리 나름의 해답을 찾아가 보자.

 

1.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표지

‘사람은 변하는 것이 가능할까?’ 직장에서 돌아오던 여느 퇴근길에 수짱은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더 나은 ‘나’로 바뀌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궁금해진다. 한 카페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으며 도시의 단칸방에서 홀로 지내는 34살의 수짱은 자신의 평범한 인생이 이대로 계속 흘러가도 괜찮은 건지 점검해본다.

자신을 더 알기 위해 수짱이 써 내려 간 일기장을 읽다 보면 수짱과 함께 나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특히 수짱이 현재 카페에서 일하는 알바생들을 보며 느낀 점들을 읽다 보면 순간 내 얘기인가 싶어 움찔해진다.


“진짜의 나는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좋은 걸까?
그건 옳은 게 아니라고 한다면, 지금 이대로의 자신은 싫다고 생각하는 나도 올바른 삶의 자세는 아니라는 건가?”

그 알바생들처럼 지금 이곳에 있는 나는 진짜 자신이 아닌 ‘임시의 나’라 생각하고 ‘미래의 나’가 진짜 자신이라 생각하는 건 쉽사리 드는 착각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중

책의 후반부, 수짱은 짝사랑하던 카페의 매니저가 자기 직장 동료와 결혼하기로 한 것을 알게 되며 그를 마음속으로 험담하고 질투하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한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중

자신이 되고 싶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의 간극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던 수짱은 결국 그런 싫은 부분까지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다. 좋은 부분과 싫은 부분까지 합쳐진 것이야말로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온전한 ‘나’이고 그런 모습도 꽤 괜찮다고 말이다. 그렇게 수짱은 소소하고도 묵직한 자신만의 결론을 찾으며 조금은 더 성장한 ‘나’로 나아간다.

 

2.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표지

전편이 수짱의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였다면 2권인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는 결혼, 노후 등 현실과 더욱 직결되는 고민들을 다룬다. 수짱은 어느 날 문득 이대로 늙어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없이 할머니가 되었을 자신을 상상해본다. 그러다 노후 걱정이 들어 요가학원도 등록하고 유언장에 관한 책도 사본다. ‘나이가 든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깊은 고민에 빠져든 수짱은 지금처럼 이렇게 홀로 늙어가도 괜찮은 건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다.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중

30대 중반에 접어든 수짱의 친구 ‘사와코’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엄마, 셋이서 함께 살고 있다. 사와코는 독립한 이후 할머니를 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오빠와 달리 매일 저녁 할머니 방에서 보내는 소소한 시간을 좋아한다. 그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남자를 만나 빨리 결혼하고 싶지만 혼자 남을 엄마와 할머니가 걱정이다.

수짱과 사와코는 요가학원에서 만난 이후 종종 함께 시간을 보내며 고민을 나누다 점차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 나간다. 결혼을 인생의 유일한 정답이라 생각했던 사와코는 엄마의 노후 계획으로부터 새로운 선택지를 발견하게 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각자 자신의 집에서 따로 살다가 가끔씩 둘이 만나 밥을 먹자는 엄마의 제안에는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은’ 미래가 충분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중

수짱은 어느 날 사와코와 함께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자신이 나중에 할머니가 되어도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할머니가 되어도 나는, 나.’라고 되뇐다.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아이가 있든 없든 나는 결국 늙어서도 나일 뿐이라고 말이다.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중

수짱은 사와코의 집에서 식사를 하다가 문득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말한다. 할머니와의 인사를 통해 수짱은 먼 미래 할머니가 되었을 자신을 상상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조금은 내려놓게 된 게 아닐까. 그렇게 책을 마무리 짓는 수짱의 모습은 읽는 독자들 역시 ‘결혼’과 ‘육아’라는 단어로부터 조금은 더 자유로워져 스스로를 보듬을 수 있도록 토닥인다.

 

Writer

소소한 일상을 만드는 주위의 다양한 것들을 둘러보길 좋아합니다. 무엇보다 ‘이야기’들엔 사람들의 일상을  단단하게 지켜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믿음을 갖고 공연, 영화, 책 등 여러 장르의 작품을 소개해, 사람들의 일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문화예술 큐레이터가 되길 꿈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