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에게 있어 뮤직비디오는 음악만큼이나 중요한 요소가 됐다. 음원만으로는 큰 관심을 못 끌던 작업물이, 뮤직비디오 공개와 동시에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는 것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올해는 힙합 뮤직비디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차일디쉬 갬비노(Childish Gambino)의 ‘This Is America’, 드레이크(Drake)의 ‘God’s Plan’은, 잘 만든 뮤직비디오 하나가 신 전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증명했다. 최근 들어서는 팝 아티스트들뿐 아니라, 래퍼들도 뮤직비디오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직접 촬영과 편집에 힘을 쓰기도 하고, 간접적으로는 영상팀과 긴밀하게 협의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던지기도 한다. 세상에 수많은 영상 팀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힙합 신에서 가장 돋보이는 네 개의 영상 팀을 꼽았다. 앞으로 힙합, 알앤비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데 최소한의 가이드가 될 거라 믿는다.

 

AWGE

출처 – genius 

AWGE는 힙합 콜렉티브, 에이셉 맙(A$AP Mob)의 크리에이티브 팀이다. 에이셉 라키(A$AP Rocky) 같은 랩 스타가 직접 소속되어 있지는 않지만, 여러 분야의 최고 위치에 있는 아티스트들이 힘을 보태고 있다. 멤버 명단에서는 디렉터 로버트 갈라르도(Robert Gallardo), 스타일리스트 이안 코너(Ian Connor), 주얼리 디자이너 벤 볼러(Ben Baller) 등 대중들에게 익숙한 이름도 찾아볼 수 있다. 미국 할렘을 베이스로 활동하는 AWGE는 기본적으로 신비주의 컨셉을 고수한다. 팀의 첫 번째 원칙이 ‘Never Reveal What AWGE Means’일 만큼 그들의 방향성은 확고하다. 때문에, 공식 홈페이지를 살펴보더라도 별다른 정보를 찾기 힘들다. 당연히 제대로 된 인터뷰를 진행한 적도 거의 없으며, 공식 석상에서도 AWGE라는 정체성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A$AP Ferg ‘Plain Jane’

하지만 오직 작업물만으로 트렌드 최전선에 있다고 평가받는 AWGE. 그들을 가장 잘 이해할 방법은 역시 뮤직비디오를 살펴보는 것이다. AWGE는 그간 주로 에이셉 맙 멤버들의 뮤직비디오를 전담하며 신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에이셉 퍼그(A$AP Ferg)의 ‘Plain Jane’, 플레이보이 카티(Playboi Carti)의 ‘Magnolia’ 뮤직비디오를 살펴보면 특유의 색깔을 단번에 느낄 수 있다. 편집점을 굉장히 촘촘하게 잡고, 여기에 다양한 영상 소스를 더해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독특한 점이 있다면 영상 중간중간 사진을 넣어 재미를 더한다는 것. 사진은 비록 움직이지 않지만, 각각 1초도 안 될 정도로 빠르게 인-아웃시켜 오히려 속도감 있는 영상을 만들어 낸다. 이외에도 화면이 깨진 듯이 보이는 데이터 모싱 기법과 공간을 왜곡시키는 등 다양한 컴퓨터그래픽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게 특징이다.

 

 

the little homies (Kendrick Lamar & Dave Free)

출처 - mtv 

에이셉 라키가 AWGE에 영감을 주는 정도로 그친다면, 이 시대 최고의 래퍼라 평가받는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는 뮤직비디오 제작에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디렉터이자 프로듀서, 레이블의 임원인 데이브 프리(Dave Free)와 함께 크리에이티브 듀오로 활동하고 있는 것. 둘은 16살 때 처음 만나 힙합이라는 연결고리로 뭉쳤다. 이후 음악 내적인 활동은 물론, 레이블 운영 같은 비즈니스적인 부분까지 함께하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최근에는 더 리틀 호미즈(the little homies)라는 영상팀을 이뤄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중이다. 업계 최고의 둘이 뭉쳐서일까, 그들의 작업물은 매번 완벽한 퀄리티로 평단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Kendrick Lamar, SZA ‘All The Stars’

대표작으로는 켄드릭 라마의 ‘HUMBLE.’과 ‘All The Stars’ 뮤직비디오가 손꼽힌다. 두 작품 모두 전설적인 커리어를 써 내려 가고 있는 디렉터인 데이브 메이어스(Dave Meyers)와 협업한 결과물이다.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미장센과 독특한 카메라 무빙은 평단의 찬사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색감 활용도 훌륭하다. ‘All The Stars’의 중반부터 볼 수 있듯 빨강, 파랑, 노랑 계통의 색깔만으로 화면을 구성하면서도 다양한 소재를 등장시켜, 그 자체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의상, 머리 장식, 바닥에 놓여있는 소품 하나까지 디테일이 살아있다. 더 리틀 호미즈가 제작한 뮤직비디오가 하나같이 완벽하다는 평을 받는 건 모두 이 작은 디테일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 또한, 어떤 아티스트와 협업해도 자신들의 색깔을 드러낸다는 측면은 큰 장점이기도 하다.

 

 

MSFTSrep

출처 – etonline 

이름부터 어떻게 읽어야 할지 막막한 이들은 미스피츠 리퍼블릭(MSFTSrep)이다. 힙합 팬이 아니더라도 익숙한 영화배우, 윌 스미스(Will Smith)의 자녀인 제이든 스미스(Jaden Smith)와 윌로우 스미스(Willow Smith)가 만든 크리에이티브 팀이다. 둘 외에도 테오(¿Téo?), 해리 허드슨(Harry Hudson) 같은 팝, 컨트리 아티스트가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영상 팀이라는 범주로 소개하고 있지만, 사실 이들의 활동반경은 훨씬 넓다. 의류 컬렉션을 발표하기도 하고, 순수 예술에 가까운 작업물을 만들기도 한다. 최고의 재능을 물려받은 이들이 모였으니 예술계 다방면으로 세를 확장하는 건 어쩌면 시간문제. 다만 최근에는 잠시 다른 활동을 최소화하고 영상 제작에 힘을 싣는 중이다.

Jaden Smith ‘GHOST’ (ft. Christian Rich)

미스피츠 리퍼블릭이 추구하는 뮤직비디오의 방향은 뚜렷하다. 등장인물을 최소화하고, 오직 한두 인물에 초점을 맞춰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는 것. 제이든 스미스의 ‘GHOST’, ‘ICON’은 물론 테오의 ‘Palm Trees’에서도 이러한 모습은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아티스트의 손짓부터 표정,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완벽해야 영상 자체의 완성도도 높아진다. 쉽게 말하면 인물이 어느 정도 연기력을 갖춰야 한다는 건데, 이런 면에서 미스피츠 리퍼블릭 멤버들은 모두 훌륭한 재능을 지녔다. 연기 경험이 있는 제이든과 윌로우는 물론, 어느덧 셀럽에 가까워진 다른 멤버들까지 연기를 곧잘 소화해낸다. 이처럼 인물을 최대한 돋보이게 하는 연출을 하지만, 여기에는 언제나 훌륭한 배경이 뒷받침된다. 도쿄의 길거리, 멕시코의 한적한 해변, 콜롬비아의 광장까지. 인물과 가장 잘 어울리는 배경을 선정하는 것도 이들의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BRTHR

Photo by Mr. Lozo

브라더(BRTHR)는 알렉스 리(Alex Lee), 카일 와이트먼(Kyle Wightman)이 결성한 영상 팀이다. 앞에서 언급한 팀들처럼 힙합 아티스트와 친분이 있거나 직접 소속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오직 실력을 통해 현재는 힙합 신에서 가장 주목받는 영상 팀으로 떠올랐다. 둘은 뉴욕에서 공부하던 학창시절에 처음 만나 여태까지 함께 활동해온 나름의 베테랑 듀오다. 현재 스물다섯, 스물여섯이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하고 있다. 블랙뮤직 신에서 다양한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것은 물론, 아디다스의 커머셜 영상, 입 생 로랑 같은 패션하우스의 영상을 맡아 제작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래퍼 키스 에이프(Keith Ape)와 컨버스의 콜라보레이션 영상을 제작한 것도 이들이다.

Travis Scott ‘goosebumps’ (ft. Kendrick Lamar)

브라더의 작업물은 그 어떤 영상팀의 작업물보다 화려하다. 컴퓨터 그래픽을 영상마다 완벽하게 사용하고, 색감을 의도적으로 왜곡시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의 ‘goosebumps’ 뮤직비디오는 브라더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은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지나칠 정도로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조잡한 면은 찾아볼 수 없다. 이 바탕에는 비주얼 아트를 전공해 쌓은 확실한 기본기와, 수년간 쌓은 자신들만의 뚜렷한 색깔이 있다. 브라더가 선보이는 영상은 대부분 그로테스크한 컨셉이 주를 이룬다. 해골과 지옥, 악마는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소재. 이 때문에 혹자는 항상 비슷한 영상만 만든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만큼 화려하고 완성도 있는 영상을 만들 수 있는 팀은 브라더가 유일무이하다. “따라 하고 싶어도 따라 할 수 없다”는 말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팀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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