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과 사랑의 상징으로 남은 뮤지션 밥 말리(Bob Marley). 그의 여러 면모를 담은 다큐멘터리 <말리>(2012)를 소개한다.

밥 말리는 영국이 자메이카를 통치하던 때, 영국 군인 아버지와 자메이카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다. 그의 어린 시절은 순탄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부재, 지독한 가난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러나 밥 말리는 일찍이 깨달은 삶의 고통과 진리를 음악으로 풀어낸다.

17살에 처음 스튜디오 레코딩을 경험한 그는 이듬해인 1963년에 밴드 ‘웨일러스(Wailers)’를 결성한다. 스카, 블루스, 재즈 등 흑인 장르로 유명하던 음악에 레게의 무드를 짙게 드리운 웨일러스 노래는 자메이카인들에게서 큰 사랑을 받고, 마침내 밴드는 아일랜드 레코드와 계약하며 더 넓은 세계로 발돋움한다. 이는 단순히 한 밴드의 성취라기보다는 영미 팝 세계가 레게 음악에 눈을 뜨는 계기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밥 말리는 웨일러스의 중심축이 되어간다. 밴드 이름 역시 ‘밥 말리 앤 웨일러스’로 바꾸기에 이른다. 결국 <Natty Dread>(1974) 앨범을 마지막으로 원년 멤버인 피터 토시, 버니 리빙스턴이 팀을 탈퇴한다. 새로운 멤버로 재정비한 밴드는 체제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는 한편, 세계 평화와 사랑을 노래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Bob marley ‘No Woman No Cry’ 공연 실황(1979)

당시 자메이카는 정치적 이념 대립으로 분열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밥 말리는 공연 도중 총격을 받아 위험에 빠지기도 했지만, 자신의 신념과 평화를 위해 끝없이 노래하고 무대에 선다. 그러나 그는 몸을 서서히 잠식한 암으로 36살이라는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아들인 지기 말리에게 “Money can’t buy life”라는 말을 남긴 채. 밥 말리는 음악사에 이름을 새긴 후 사라진 것이 아니다. 불합리와 억압에 분노하며 저항했고, 그럼에도 사랑의 힘을 계속 노래했던 그는 가치의 상징이 되어 살아있다.

영화 <말리>(2012)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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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