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열린 많은 영화 시상식의 작품상은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과 <쓰리 빌보드>가 양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퍼시픽림>, <헬보이>,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등으로 국내 관객에게도 익숙하지만 <쓰리 빌보드>의 마틴 맥도나 감독은 상대적으로 낯선 이름이다. <쓰리 빌보드>로 영화계가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 된 마틴 맥도나에 대해 알아보자.

마틴 맥도나. 출처 – Variety 

 

제2의 셰익스피어

런던 웨스트엔드에 작품 4개가 동시 상영된 극작가가 두 명 있다. 한 명은 셰익스피어, 또 다른 한 명은 오늘 이야기할 마틴 맥도나다. 꾸준히 좋은 작품으로 평단과 대중을 다 사로잡은 마틴 맥도나에게 ‘제2의 세익스피어’라는 수식어가 붙은 건 당연한 일이다. 그의 대표작인 <필로우맨>은 07년도 국내 초연 당시에 박근형이 연출을 맡고, 배우 최민식, 윤제문, 이대연이 출연했다.

 

영화를 사랑하는 극작가

마틴 맥도나의 부모는 잉글랜드에 일하러 온 아일랜드사람인데, 마틴 맥도나가 10대 때 생계를 위해 아일랜드로 떠난다. 그는 형과 함께 영국 런던에서 자라는데, 참고로 그의 형인 ‘존 마이클 맥도나’도 <더 가드>, <캘버리>, <워 온 에브리원> 등의 각본을 쓰고 연출한 영화감독이다. 마틴 맥도나의 데뷔작인 <킬러들의 도시>의 주연인 콜린 파렐도 아일랜드 출신으로, 그가 맡은 역할인 ‘레이’는 극 중에서 아일랜드인에 대한 농담을 자주 한다.

영국 연극계를 휩쓴 그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영화에 대한 애정을 밝혀왔고, 자연스럽게 영화감독에 도전하게 된다. 마틴 맥도나의 작품 속에서 그가 영향받은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세븐 싸이코패스>의 ‘빌리 빅클’(샘 록웰)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에 나오는 ‘트래비스 비클’(로버드 드니로)과 성이 같고, <쓰리 빌보드>에서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맨드)의 반다나는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디어 헌터> 속 ‘닉’(크리스토퍼 웰켄)을 연상시킨다.

출처 - Baobacgiang 

 

유니크한 스토리텔러

마틴 맥도나를 둘러싼 다양한 수식어와 화려한 수상 기록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가장 큰 특징은 관객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만든다는 거다.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극의 분위기,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들, 인물들이 충돌할 때 극대화되는 극의 에너지, 사건의 아이러니를 통해 관객을 사유하게 하는 것까지 그의 영화는 쉽게 정의하기 힘들고, 또한 매력적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은 좋은 이야기에 대한 열망일 거다. 그동안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확률이 높은 스토리텔러 ‘마틴 맥도나’의 작품을 살펴보자.

 

<킬러들의 도시>

In Bruges |2006 |출연 콜린 파렐, 브렌단 글리슨, 랄프 파인즈, 클레멘스 포시

영국에서 살인을 저지른 킬러 ‘레이’(콜린 파렐)와 ‘켄’(브렌든 글리슨)은 보스 ‘해리’(랄프 파인즈)의 지시에 따라 벨기에의 브리주로 도망친다. 켄은 들뜬 마음으로 중세의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한 브리주를 관광하지만, 레이는 따분함을 느끼며 하루라도 빨리 브리주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두 사람이 타협해서 관광을 하던 어느 날, 길거리 영화촬영장에서 레이는 ‘클로이’(클레멘스 포시)에게 호감을 느끼고 가까워진다. 그러나 해리가 새로운 명령을 내려오면서 레이와 켄은 골치 아픈 갈등을 마주한다.

원제에 적힌 벨기에의 브리주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브리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산으로 지정된 벨기에의 관광도시로, 영화 속 장면 대부분은 브리주에서 촬영됐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이자, 조용한 도시에서 킬러들이 소동을 일으킨다는 설정에 어울리는 도시다.
마틴 맥도나의 영화에서 중요한 장치는 ‘아이러니’다. <킬러들의 도시>에는 존재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죽음을 택하는 인물, 규칙보다 목숨이 더 중요한 인물이 등장한다. 융통성 없는 인물이라고 정리하기에는, 그들의 신념은 삶을 지탱하는 기반처럼 보인다. 타협이 익숙한 사회에서 자신만의 신념을 위해 달리는 인물들을 보면서, 내가 가졌던 신념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세븐 싸이코패스>

Seven Psychopaths|2012|출연 콜린 파렐, 샘 록웰, 우디 해럴슨, 크리스토퍼 월켄

시나리오 작가인 ‘마티’(콜린 파렐)는 일곱 명의 싸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구상 중이다. 그의 친구인 ‘빌리’(샘 록웰)은 강아지를 납치 후 주인에게 태연하게 돌려주며 현상금을 받아 챙기는 게 직업이고, 그의 동업자인 ‘한스’(크리스토퍼 웰켄)는 아픈 아내를 간호하는 데 힘쓰고 있다. 빌리와 한스는 마티의 시나리오 작업을 돕기 위해 싸이코패스 찾기를 도와주고, 빌리는 싸이코패스를 모집한다는 신문광고까지 낸다. 하지만 빌리가 갱단 보스 ‘찰리’(우리 해럴슨)의 개를 훔치면서 이들 일행은 쫓기는 신세가 된다.

<세븐 싸이코패스>는 등장인물들이 어떤 식으로 엮이게 되는지를 살펴보는 재미가 큰 영화다. 마틴 맥도나는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를 쓸 때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구상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제목을 보면서 일곱 명의 싸이코패스가 누구인지, 그들이 어떤 관계인지 궁금해하는 관객에게 <세븐 싸이코패스>는 기대 그 이상의 흥미로운 광경을 보여준다.
이야기 속 캐릭터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다면, 내가 만든 인물이 통제불가에 이르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거다. <세븐 싸이코패스>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캐릭터를 만드는 작가가 겪는 혼란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마티는 취재를 하고 빌리와 한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하지만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마티가 완성한 시나리오에는 아마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인물들이 가득하지 않았을까.

 

<쓰리 빌보드>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2017| 출연 프란시스 맥도맨드, 샘 록웰, 우디 해럴슨, 피터 딘클리지

딸을 잃은 엄마 ‘밀드레드’(프랜시스 맥도먼드)는 마을 외곽 도로에 세워진 세 개의 표지판에 각각 ”죽어가는 동안에도 강간을 당했다”, “그런데 아직도 범인을 못 잡았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윌러비 서장?”이라는 문구를 새긴다. 딸이 죽은 사건과 관련해서 진전이 없는 마을 경찰을 표지판을 통해 비난하자, 마을에서 존경받는 경찰서장 ‘월러비’(우디 해럴슨)과 경찰관 ‘딕슨’(샘 록웰)은 밀드레드를 회유하거나 압박한다. 이웃 주민과 지역 언론도 점점 밀드레드를 적대시하지만 밀드레드는 묵묵하게 자신의 방법으로 세상과 맞선다.

<쓰리 빌보드>의 가장 큰 미덕이라면 주요인물들이 모두 입체적이라는 거다. 감독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도구적으로 소모되는 캐릭터 없이, 인물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극이 전개되는 내내 설득력 있는 변화를 보여준다. 어떤 인물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선악구도 바뀌기 때문에 영화 속 인물들에 대해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쓰리 빌보드>는 표지판 속 ‘언어’와 밀드레드의 ‘행동’이 만들어내는 갈등과 연대의 이야기다. 밀드레드는 울거나 감정을 토로하는 대신 행동한다. 표지판의 문구를 통해 경찰을 비판하고, 경찰서에 화염병을 던진다. 딸이 죽고 꿈쩍도 하지 않던 세상이 그가 움직이자 서서히 변한다. 세상의 부당함 앞에 직접 행동으로 맞선다면, 그 안에 담긴 절실함은 기적에 가까운 연대를 이뤄내고 조금씩 세상을 움직일 거다.

 

 

Writer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용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