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TV Time 

그 어느 때보다 먹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뜨겁다. 2018년 7월, 정부에서는 폭식 조장을 지양하고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먹방 콘텐츠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발표하였으나, 정작 국민들에게 상당한 질타를 받았다. 일반적으로 국내에서는 먹방을 ‘BJ가 음식을 먹는 방송’으로 인식하지만 반대로 해외에서는 ‘많은 양의 음식을 한꺼번에 먹는 방송’으로 보고 있고 정부에서는 이 점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 링크)

먹방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사랑받아온 콘텐츠다. 맛집을 찾아가거나, 유명 요리사가 나와 요리를 하는 프로그램이 수명이 짧다고는 하지만 꾸준히 나온다는 것이 그 증거다. 많은 사람들이 먹방을 보는 이유로 대리만족과 호기심, 정보 수집 등을 든다. 혼자서 식사하는 이른바 외로운 ‘혼밥족’들에게는 식사의 벗이 되기도 한다. ‘식욕’이라는 일차원적인 콘셉트를 가지고도 대부분의 먹방이 추구하는 것은, 편하고 친근한 분위기 가운데 음식을 즐기는 것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먹방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역시 주인공이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그 가게의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 전부인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7기까지 방영될 정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여기에 잘 차려진 요리가 아닌 디저트 먹방을 승부수로 둔 드라마가 있다. 일본 방송국 TV Tokyo(테레비 도쿄)와 넷플릭스가 공동 제작한, <세일즈맨 칸타로의 달콤한 비밀>은 먹방 콘텐츠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실험적인 연출로 유일무이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세일즈맨 칸타로의 달콤한 비밀> 예고편

 

달콤한 정원으로

주인공 ‘칸타로’(오노에 마츠야)는 출판사 영업부에 경력직으로 들어온 샐러리맨이다. 전직 프로그래머인 그가 굳이 영업 사원이 된 것은 오로지 디저트(스위츠) 때문이다. 영업을 위해 외근을 하면 주말이 아닌 평일에도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독특한 입사 동기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에 있어서 빈틈이 없다. 스토익하고 까칠한 성격으로 일의 능률은 사내 1등을 달리 정도로 압도적이다. 하지만 디저트 앞에서는 무장 해제를 하고 그 순간을 탐미하느라 자신의 의식을 잃고 망상에 빠질 정도로 연약한 반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칸타로가 ‘달콤함의 정원에 빠지는’ 순간, 화면은 디저트 가게에서 다른 제3의 장소로 전환된다. 자신의 망상인 그곳에서 직접 디저트의 메인 재료가 되어 다른 재료들과 하나의 맛을 추구하는 모험을 하거나 디저트에 별 뜻이 없던 주변 등장인물들이 달콤함에 눈을 뜨기도 한다. 80년대 드라마의 질척한 로맨스를 패러디하는 와중에도 모든 인물의 얼굴은 디저트일 뿐이다. 설탕 시럽과 과육 폭포수에 흠뻑 젖거나, 날개를 달고 천상의 맛을 느끼고, 멜론과 사랑에 빠지면서 영화 <라라랜드> 풍의 뮤지컬 댄스로 탐닉의 기쁨을 선보이는 와중에도 드라마는 각 에피소드의 메인 디저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일본 특유의 개그와 병맛이 집대성된 순간이다.

출처 - 넷플릭스 코리아

 

달콤함만이 알고 있으리

칸타로는 가게에 도착하면 그곳의 역사 혹은 전통 디저트의 기원을 설명하고 주방장이 메뉴에 쏟은 정성에 열변을 토하며 깊이 공감한다. 각 계절에 어울리는 디저트와 세세한 레시피를 소개하고 다른 인물에게 추천해주는 모습에서 상당한 전문성이 느껴진다. 왜 이 디저트가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지, 왜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지, 왜 먹어봐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디저트를 숭배하는 그에게 달콤함이란 집착의 대상이자 모든 일의 중심이 된다. ‘신만이 알고 있으리’를 언어유희로 패러디한 ‘달콤함만이 알고 있으리’는 매회 칸타로가 자신의 의지를 다질 때 나오는 멘트다. 스스로를 ‘스위츠 마조히스트’라 칭하는 그는 차가운 빙수를 먹기 위해 히트텍을 입고 더위를 이겨내고, 늦은 밤 푸딩을 먹기 위해 야근까지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다. 매회 역사적인 위인과 철학자들의 명언을 모토로 디저트를 먹기까지의 과정과 자신의 다짐을 담아내는 것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출처 - TV Tokyo

 

천의 얼굴 오노에 마츠야

칸타로를 연기한 배우 오노에 마츠야는 실력 있는 가부키 출신 배우다. 출중한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세일즈맨 칸타로의 달콤한 비밀>에서 망가지고 우스꽝스러운 개그에 몸을 아끼지 않는다. 단연 돋보이는 것은 그의 감정 표현. 회사 동료를 비롯한 사람들과의 접촉에서는 분노에 찬 연기, 냉소적인 분노를 무표정에서 정확한 딕션과 발성으로 조절한다. 반면에 디저트를 만나면 첫 입을 먹고 희열에 가득 차거나. 속마음과 의식의 흐름을 표현한 내레이션의 찰진 연기 덕분에 몰입도도 상당하다.

그런 다이내믹한 연기력을 받쳐주는 것 또한 제작진의 능력이다. 칸타로의 설명을 알기 쉽게 도식화하면서도 만화에나 나올 법한 판타지스러운 망상을 그대로 재현한 것은 마치 SF 물을 보는 것 같다. 마치 디저트를 눈앞에서 보는 듯한 촬영 구도는 색채감과 조명을 최대한 조절하여 그 효과를 극대화했다. 다시 한 번 디저트가 주인공이 된 순간이다.

출처 - 세일즈맨 칸타로 블로그

 

디저트를 위한 비법, 들키지 말아야 한다

칸타로는 ‘달콤한 기사’라는 닉네임으로 디저트 리뷰를 하는 블로거이기도 하다. 그가 업무 시간에 틈나는 대로 디저트를 즐기는 사이, 회사 동료 ‘도바시’는 자신이 즐겨 보는 블로그의 업로드 시간이 칸타로의 외근 시간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의구심을 갖고 칸타로가 그 블로거가 아닌지 밝히고자 하는 그녀의 추리력, 함정 설치 등은 다소 밋밋할 수 있는 먹방 드라마에 은근한 서스펜스를 더했다. 참고로 해당 블로그는 실제로도 존재한다. (블로그 링크)

신입으로 들어온 칸타로에게 1등 자리를 빼앗긴 회사 동료 ‘다카라베’와의 신경전, 가장 많은 에피소드를 함께하는 부장, 일회성 캐릭터들과의 일상에서 칸타로는 최대한 조심하면서도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까 봐 걱정한다. 병맛이다 못해 기괴하다는 이유로 호불호가 갈리는 에피소드 9는 디저트를 혐오하는 어머니와의 치열한 갈등과 함께, ‘칸타로가 왜 성인이 되어 디저트에 집착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을 소개한다.

출처 - TV Tokyo

다른 먹방 드라마와의 두드러진 차별점이라면 디저트 탐구 생활을 입체감 있는 여러 등장인물과의 사건에 녹여내 몰입도를 높였다는 것이다. 짧은 호흡에 매회 교훈적인 메시지를 녹여내면서도 샐러리맨의 일상을 가감 없이 표현하기도 했다. 괴상하고 기이한 편집과 자칫 변태 같아 보이기도 하는 표정 연기가 과하기도 하지만, 적당한 긴장감으로 다음 에피소드가 궁금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칸타로의 설득에 취해 어느새 구글 맵스를 열고 그가 소개한 도쿄의 유명 디저트 맛집을 즐겨찾기에 추가하기 시작했다. 일본 전통 디저트인 안미츠와 마메칸, 빙수와 오하기를 시작으로 푸딩, 에클레어 그리고 초콜릿 같은 익숙한 디저트가 많이 나온다. 사바랭, 바바루아 같은 생소한 디저트는 먹어본 적이 없어도 칸타로 덕분에 아는 척은 할 수 있게 되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모든 가게가 실제로 영업을 하는 곳이라고 하니, 다음 도쿄 여행은 ‘칸타로 디저트 순례’를 목표로 해봐도 좋겠다.

출처 - SIMKL

 

<세일즈맨 칸타로의 달콤한 비밀> 넷플릭스 

 

Writer

실용적인 덕질을 지향하는, 날개도 그림자도 없는 꿈을 꾸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