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유’에서 또 다른 ‘유’를 창조해나가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온전히 ‘나의 것’인 예술 작품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예술가는 다른 이의 예술에서 영감을 받고, 그가 만들어 낸 작품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것은 영화에도 여전히 적용된다.
영감의 영역 안에서 상호작용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준 영화와 감독들을 소개한다.

 

봉준호와 1979년 작 <복수는 나의 것>

2000년대. 한국 범죄스릴러의 새로운 획을 긋는 영화가 등장했다. 바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90년대의 사회상을 서늘하게 그려냈던 이 영화는, 평단과 대중들 모두를 사로잡았다. 그 후에 범죄스릴러 영화가 극장가를 가득 메우기 시작한 것은 또 다른 이야기지만. 후에 봉준호 감독은 이마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 것>(1979)의 광팬이라는 것을 밝혔고, <살인의 추억>을 제작할 때, 이를 통해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점을 소개했다.

<복수는 나의 것>(1979) 포스터

이마무라 쇼헤이의 대표작, <복수는 나의 것>은 실제 사건을 토대로 연쇄살인범의 행적을 추적하여, 인간이 가진 밑바닥의 모습을 담아낸 영화다. 거침없는 표현과 거칠면서도 사실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며, ‘인간’에 대한 냉철하고 서늘한 시각을 반영해내고 있다. 영화에는 살인에 대해 죄책감이나 망설임을 보이지 않는 살인기계 ‘이와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카메라는 끔찍한 살인의 순간을 감정을 빼고 냉정하고 건조하게 응시한다. <복수는 나의 것>의 특징이 있다면, 이 영화는 ‘스릴러’라는 단어에서 관객들이 기대하는 스펙터클을 최대한 배재한다는 점이다. ‘이와오’는 관객들이 그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서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그의 과거가 짧게 보이긴 하지만, 그것이 곧 그의 살인을 정당화하거나 이입할 수 있는 서사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복수는 나의 것> 트레일러

봉준호 감독은 <복수는 나의 것>과 <살인의 추억>이 그 당시 시대의 사실적인 공기를 그린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직접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2006년 칸영화제에서 한 일본 제작자가 <괴물>을 보고 이마무라 쇼헤이가 만든 괴수 영화라고 얘기한 것에 ‘영광’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고.

 

 

션 베이커와 <꾸러기 클럽>

플로리다의 거대한 놀이공원, 디즈니랜드 맞은편에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머무는 모텔촌이 있다. 디즈니랜드라는 구색에 맞추어 마치 하나의 성처럼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곳. 그 안에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해맑게 자라는 아이들이 있다. 2018년의 화제작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감정은 다큐멘터리이지만 장면은 너무나 영화적인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평단의 평가를 받았다.

<꾸러기 클럽>(1994) 포스터

이런 션 베이커가 영감을 받은 영화가 있다. 바로 <꾸러기 클럽>이라는 1994년도 영화다. 한국에서는 이를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미국 사람들에게는 추억의 영화다. 아이들의 짓궂으면서도 사랑스러운 면모를 가득 담아낸 영화 <꾸러기 클럽>에는 한 남자아이들이 만든 클럽이 나온다. 그 클럽의 규칙은 ‘여자아이를 좋아해서는 안 된다’라는 것. 그 나이 또래들이 흔히 갖고 있는 ‘위악’으로, 그들은 ‘괜히’ 여자아이들을 배척하고 미워하는 척을 하며 남자아이로서 우위를 점한다. 하지만 이 클럽은 그 클럽에 소속되어 있는 한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를 좋아하게 되면서 그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들이 세워놓은 이 규칙은 어차피 필패 할 수밖에 없는 법! 결국 이 클럽 아이들은 모두 여자아이들과 사이좋게 지내게 된다.

<꾸러기 클럽> 트레일러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꾸러기 클럽>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선과 악을 구분 없이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이 두 영화는 아이들이 오로지 선하고 순진하게 그리지 않는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위악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동시에, 아이들만이 가지고 있는 어쩔 수 없는 순수함을 함께 보여준다. 두 영화를 함께 보며, 이 영화들이 가진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해보는 것도 즐거울 것이다.

 

 

쿠엔틴 타란티노와 <국외자들>

쿠엔틴 타란티노 <장고:분노의 추적자>(2012) 포스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영향을 받은’ 영화는 무수히 많겠지만, 그중에서 고다르 감독이 만든 <국외자들>(1964)을 소개하고 싶다. 고전 영화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연출기법과, 고다르만이 남길 수 있는 영화의 정점들이 어떤 식으로 타란티노 감독에게 영향을 미쳤을까.

<국외자들> 포스터

쿠엔틴 타란티노는 실제로 인터뷰에서 장 뤽 고다르 감독의 <국외자들>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음을 고백했다. <국외자들>은 제목처럼 현실에서 동떨어진 이방인들을 다루는 영화다. 이 영화에는 돈을 훔치기로 결심한 남녀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 엄청난 결심을 함에도 불구하고 평범하고, 심각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일상을 보낸다. 박물관을 장난치며 뛰어다니고, 같이 춤을 추고, 웃음을 터뜨리고, 장난을 친다. 이 영화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현실의 무게와는 다르게 장면 마디마디가 ‘장난’과 ‘유머’로 이루어져 있다. 비극성을 강조하는 오브제로 ‘유머’ 자체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국외자들> 트레일러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들에도 이러한 비슷한 점들을 찾아볼 수 있다. 잔인한 장면의 나열에도 불구하고, 유머를 잃지 않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은 이미 많은 영화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바 있지 않은가. 영화 <국외자들>을 보고 있자면, 왜 타란티노 감독이 이 영화를 추천하고 영향을 받았다고 얘기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예측불허한 인간의 비결정적인 모습을 비극과 유머로 풀어내는 방식이 무려 64년도에도 존재했다는 것에 다시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을 테니.

 

좋은 영화는 좋은 영화를 만든다. 이 간단한 문장이 성립되는 순간을, 영화를 사랑하는 누구나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메인 이미지 <국외자들> 스틸컷

 

Writer

아쉽게도 디멘터나 삼각두, 팬텀이 없는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 공백을 채울 이야기를 만들고 소개하며 살고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고, 으스스한 음악을 들으며, 여러 가지 마니악한 기획들을 작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