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외국의 공항에 있던 작은 서점 코너에 수많은 음악가들에 관한 책이 쭉 꽂혀 있던 광경이 기억난다.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그러한 ‘대중스타’들의 자서전이 출판되는 게 외국만큼 보편적인 문화가 아니어서 그런지, 무척 신선하게 뇌리에 남았던 기억이다. 음악은 결국 음악 그 자체로 좋은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음악가들이 직접 쓰거나, 혹은 다른 사람에 의해 쓰이는 등 한 책을 통하여 그들의 음악을 새롭게 느껴보는 것도 음악 자체만큼이나 흥미로운 일로 다가온다. 짐 모리슨, 패티 스미스, 데이비드 보위, 전설적인 록 뮤지션들의 음악을 그들과 관련된 책과 함께 소개해 본다.

 

1. 월리스 파울리 <반역의 시인, 랭보와 짐 모리슨>(2001)

월리스 파울리 교수는 미국의 저명한 불문학자이면서 19세기 프랑스 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시인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에 관한 전문가이기도 하다. 시문학에 관한 연구에만 전념하던 그는 일흔이라는 나이에 스물일곱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요절하면서 팝 음악의 역사의 전설이 된 록 밴드 도어스(The Doors)의 메인 보컬 짐 모리슨(Jim Morrison)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생전에 짐 모리슨이 랭보의 작품들에 심취했고, 그러한 영향을 자신의 음악과 가사를 통해 풀어냈다는 접점을 발견한다. 이어 그는 짧은 삶 속에서 자신만의 강렬한 흔적을 남긴 두 명의 반항적인 예술가, 랭보와 짐 모리슨에 관한 강의를 진행하고, 그들에 관한 책 역시도 출간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시인과 록 뮤지션을 연결 지은 내용을 담은 이 책의 집필 기간 동안 저자의 나이가 여든에 가까웠다는 사실 역시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랭보는 1854년에 태어나 1891년 서른일곱의 나이로 죽었고, 짐 모리슨은 1943년에 태어나 1971년 스물일곱의 나이로 죽었다. 백여 년의 시간이 그들 사이에 끼어 있지만, 일상의 삶에 천착하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던 두 사람에게는 삶에 대한 끝없는 열망이라는 커다란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의 다리가 썩어들어갈 지경이 될 때까지 유럽 전역과 아프리카를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던 랭보와 무대에서의 기괴한 퍼포먼스들과 실험적인 사운드로 주목받았던 도어스의 보컬 짐 모리슨의 삶에 존재하던 공통적인 키워드, ‘태양’과 ‘불’에 관한 그들의 작업을 감상해보자.

아르튀르 랭보

인간이 그토록 일찍 태어나고, 인생이 그토록 짧은 것이라면,
그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싹에서, 태아에서, 애벌레에서
그 깊은 대양 속으로 잠기는 것인가?
저 거대한 도가니 속으로 잠기는 것인가?

(중략)

우리는 그 해답을 알지 못하는도다! 다만 무지와
편협한 망상의 망토에 짓눌리는도다.
어머니들의 음부에서 떨어져 나온 인간 원숭이들이여,
우리의 창백한 이성이 우리에게 무한을 감추는도다!

- 아르튀르 랭보 <태양과 육체> 중에서

짐 모리슨
The Doors ‘Light My Fire’ (Live)
The Doors ‘Waiting for the Sun’

 

2. 패티 스미스 <저스트 키즈>(2012)

“우리는 검은 숲속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 모험했던 헨젤과 그레텔이었다.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유혹도, 마녀도, 악마도 많았지만, 꿈꿨던 이상의 아름다움도 경험했다.”

패티 스미스(Patti Smith)는 지금도 통용되는 소위 “‘여성’ 음악가라면 이래야만 한다, 저래야만 한다”라고 하는 속된 사람들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정면 돌파하는 혁명적인 뮤지션이자 시인으로 활동해왔다. 1975년 데뷔 앨범 <Horses>를 발매하며 데뷔한 그는 이제는 전설이 된 펑크록의 대모이기도 하지만, 그 자신이 직접 집필한 책 <저스트 키즈> 속에서는 1967년 봄, 스무 살의 나이에 예술가로의 꿈을 이루기 위해 뉴욕으로 상경한 가난하고 앳된 어린 소녀이기도 했다. 뉴욕으로 올라온 패티는 커다란 도시 속에서 우연으로 가장된 운명과도 같은 인연의 흐름을 통해, 사진가이자 패티 스미스의 연인이면서 동료이기도 했던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를 만나게 된다.

로버트 메이플소프가 촬영한 패티 스미스의 데뷔 앨범 <Horses> 커버
Patti Smith ‘Gloria’ (Live)

현재에 와서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이미 거장으로 손꼽히는 뮤지션과 사진가가 됐지만, <저스트 키즈> 속에서 그려지는 두 사람은 뉴욕의 높은 물가 때문에 허름하고 오래된 낡은 집을 구해 함께 살고, 생계를 위해 서점에서 일을 하고, 처음으로 무대에서 노래하고, 사진전을 열면서 꿈의 시작을 함께 걸어 나가던 모습들로 그려진다. 불안정하고 위태롭던 1970년대, 뉴욕의 첼시 호텔 등에서 다양한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성장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한편으로 무척이나 동화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1989년 42세의 젊은 나이에 에이즈로 요절한 로버트 메이플소프에 대한 기억을 담고자 집필한 이 책을 통하여 두 인상적인 예술가의 시작을 함께 엿볼 수 있다.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

작은 에메랄드빛 새
멀리 날아가려 하네
내 손안에 가두면
곁에 둘 수 있을까

작은 에메랄드빛 영혼
작은 에메랄드빛 눈동자
작은 에메랄드빛 영혼
작별 인사를 해야만 할까

- 패티 스미스가 쓴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위한 ‘추모곡’ 중에서

Patti Smith ‘Because the Night’

 

3. 사이먼 크리츨리 <데이비드 보위: 그의 영향>(2017)

보위가 무효로 만든 것은, 난센스, 허위, 뒤떨어진 사회적 의미들, 전통들, 특히 계급과 성에서 우리를 구속한 정체성의 늪이다. 보위의 노래들은 이 온갖 의미들이 얼마나 깨어지기 쉬운지 밝히며 다시 만들어 낼 능력을 우리에게 준다. 그의 노래들은 변화할 수 있는 우리 능력이, 그의 능력처럼, 무한할 수 있다는 믿음을 우리에게 준다.

- 사이먼 크리츨리 <데이비드 보위: 그의 영향> 중에서

데이비드 보위

영미권에서의 거대한 영향력에 비하면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는 오랜 시간 동안 한국 내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록 뮤지션은 아니었다. 그러던 흐름을 바꿔놓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죽음과 함께 발매된 <Black Star>(2016) 앨범에서 그 자신의 죽음에 대한 암시와도 같은 테마를 다룬 ‘Lazarus’와 같은 노래가 주목받으면서였다.

David Bowie ‘Lazarus’

“거대하고 분명한 슬픔에도 불구하고, 보위의 죽음은 최선이었다. 문화계 거물의 죽음에 ‘좋은’ 죽음, 품위 있는 죽음이 있다면, 이것이 그것이다. 죽음이 예술 작품, 예술가의 미학에 완전히 일관되는 선언일 수 있다면, 2016년 1월 10일에 떨어진 것이 그것이다. 보위는 죽음을 예술로 또 예술을 죽음으로 만들었다.”라고 사이먼 크리츨리의 책에서도 말하듯, 데이비드 보위의 죽음은 아직도 가장 아름다운, 예술과 죽음이 함께 한 마지막 풍경이기도 했다.

데이비드 보위
David Bowie ‘Starman’ (Live)

1972년 7월 6일 BBC의 상징적인 음악 프로그램 <Top of the Pops>서 훗날 전설이 될 ‘지기 스타더스트’라는 오렌지색 머리카락의 외계 생명체를 그 자신의 페르소나로 삼아 ’Starman’을 라이브로 부르던 보위의 모습을 TV에서 처음 보고, 이후 44년 동안 동시대를 살아가며 영향을 받은 저자 사이먼 크리츨리의 보위에 대한 개인적인 회고록과도 같은 이 책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출판된 데이비드 보위에 관한 책이다. 동시에 이는 보위에 대한 오랜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 혹은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 모두에게 적합한 보위에 관한 입문서이기도 하다.

David Bowie ‘Heroes’ (Live)

I, I will be King
And you, you will be queen
Though nothing will drive them away
We can beat them, just for one day
We can be Heroes, just for one day

난, 나는 왕이 될 거야
그리고 넌, 너는 여왕이 될 거고
비록 아무것도 그들을 떠나보낼 수 없지만
우리는 해낼 수 있어, 단 하루 동안
우리는 주인공이 될 수 있어, 단 하루 동안

- 데이비드 보위 ‘Heroes’ 가사 중에서

 

Writer

서울에서 살아가는 생활인이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노래로 지어 부르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 다른 낯선 세상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작업자. 다른 사람들의 작업을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유유'는 한자로 있을 '유'를 두 번 써서 '존재하기에 존재한다'는 뜻으로 멋대로 사용 중. 2018년 9월부터 그동안 병행 해오던 밴드 '유레루나' 활동을 중단하고, 솔로 작업에 더 집중하여 지속적인 결과물들을 쌓아나가고자 한다.
유유 인스타그램
유유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