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여름이 왔다. ‘태양 때문에’ 방아쇠를 당겼다는 <이방인> 뫼르소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될 만큼, 여름의 햇빛은 너무 강렬하다. 그래서인지 여름‘밤’은 사계절 밤 중에서 가장 환영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무 뜨거웠던 우리를 위로하듯 살랑거리며 지나가는 바람과, 그제야 울어대기 시작하는 지친 풀벌레의 울음까지. 지독한 여름을 견디는 우리를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여름밤’이 아닐까. 이 여름밤을 닮은 음악들을 소개한다. 당신이 낮보다 조금은 더 행복하길 바라며.

 

‘고래와 정민’의 노래들

홍대 인디신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고래와 정민’의 음악들은, 어딘지 모르게 여름밤을 닮았다. 따뜻하면서도 상쾌하고, 아주 서정적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풀벌레 소리를 같이 배경음으로 넣어도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은 음악들 속에, 고요한 가사가 넘실거리며 우리를 위로하고, 어쿠스틱 기타와 콘트라베이스가 그려내는 현의 음악들은 과하지 않게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고래와 정민 ‘우연’

‘누구에게나 같게 흘렀던 긴 시간들이, 서로를 다르게 만들었지만. 갈래길에 서 있던 널 만나고 새로운 둘만의 길을 걸어’

밤 산책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떠올리는 생각들은 무엇일까. 아마도 누군가와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대부분일 것이다. 나를 떠나갔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나를 괴롭게 하는 이에 대한 원망, 앞으로 만들어갈 관계에 대한 기대와 희망 등. 생각이 꼬리를 물고 도착하는 곳에는 어김없이 ‘누군가’가 존재한다.
고래와 정민의 음악들은 대부분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노래한다. ‘우연’이라는 곡은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보냈지만 결국은 ‘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만나 새로운 길과 시간을 만드는 것에 대한 우연적 관계를 노래한다.

고래와 정민 ‘달’

‘매일 달을 보고 고백하지만 사실 달님에게 할 이야긴 아니잖아요.
나에게 고백해줘요, 우리의 비밀이 늘어가고 있어요.’

‘달’이라는 곡은, 말 못 할 고백을 달이 아닌 ‘나’에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해바라기가 부른 ‘어서 말을 해’라는 곡처럼, 수많은 사람들은 진심이 담긴 한마디를 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것이 사랑 고백이든, 용서를 구하는 말이든. 우리의 뇌리와 가슴에 남아있는 진심 어린 말들을 전할 용기를 가져보자. 이 곡처럼, 그 얘기는 달이나 해님에게 해봤자 소용이 없을 테니, 꼭 가야 할 사람에게 가닿기를.

 

‘다브다’의 노래들

다브다의 음악은 서정적인 동시에 폭발적이다. 그래서 그들이 음악 속에 가지고 있는 이 몽환적임은 겨울의 앙상함보다는 여름의 익어가는 풍성함을 닮았다. 작열하는 태양에 꽂혀서 피어나는 아지랑이 속 꿈결처럼. 그리고 여름밤에 더욱 밝게 빛나는 것처럼 보이는 어두운 도심 속 불빛과도 닮았다.

다브다 ‘청춘’

‘나 언제든 버려질 준비가 되어야만 하네
아무도 볼 수가 없어 여기 빛나는 사람들을’

다브다 곡들은 가사를 너무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저 가사가 주는 의미의 끝 맛만 맛볼 수 있으면 상관없다. ‘청춘’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 곡은, 파도가 넘실거리듯 역동적인 선율과 덤덤하면서도 경쾌한 보컬에서 느껴지는 꿈결 같은 환상을 선사한다. 드럼과 베이스에 맞춘 박자감이, 열에 지쳐 조금은 힘없이 뛰고 있던 심장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다브다 ‘꿈의 표정’

‘꿈의 표정’은 정말 마치 꿈결을 걷는 듯 영롱한 기타 선율이 이어진다. 이 곡을 들으며 밤길을 걷다 보면, 바람이 조금은 더 부드럽고, 어둠을 틈타 밖으로 나온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은 더 여유로워 보이는 느낌을 받게 된다. 또 무언가를 걱정한 채 걷고 있었다면, ‘내일은 조금 더 낫지 않을까’하는 작은 위안도 받게 된다. 이런 곡을 닮은 일상이라면 살아갈 만하지 않을까.

 

‘허세과’의 노래들

기타리스트이자 이제 싱어송라이터가 된 허세과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은 많겠지만, 그는 홍대 인디신에서는 아주 잔뼈가 굵은 기타리스트다. 옥상달빛과 요조, 안녕하신가영의 기타 세션으로 오래도록 활동했던 그는, 이제 자신의 이름으로 명랑하면서도 보송보송한 곡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의 기타와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청량함’은 역시 여름밤에 빼놓을 수 없다.

허세과 '같은 별' (카페 언플러그드)

‘어젯밤 우리 보았던 그 모습은 신기루처럼
말이 없던 나의 하루
모든 시간들에 네 이름만 떠오르고 있어’

첫 싱글로 발표했던 ‘같은 별’에는 가사의 첫 소절부터 ‘시원한 바람’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멜로디와 가사들은 시원한 바람 한 소절을 불어넣는 듯하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반짝이는 순간들이 신나는 선율로 되돌아오고,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조금은 상쾌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허세과 ‘신발끈’

‘새로 산 신발을 신고 조심스레 끈을 묶던 그때가 있었는데
그때가 무색해질만큼 귀찮아 짜증이 나네
어쩌면 너에게 내가 이 신발끈처럼 귀찮은 존재가 아닐까’

‘같은 별’보다는 훨씬 차분하지만, 그만큼 부드러운 선율로 마음을 어루만지는 ‘신발끈’이라는 곡은 누군가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식는 가슴 아픈 순간을 신발끈에 비유한다. 가장 슬프고 우울한 감정을 조금은 우아하게, 서정적으로 표현해주는 이 곡은 마음 아픈 관계의 이별을 감내하는 누군가에게 많은 위로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영상은 없지만,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는 신발끈을 원곡으로 들을 수 있다.)

 

작열하는 여름만큼, 우리는 세상이 권하는 ‘뜨거운’ 열정을 갖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너무 뜨겁기만 하면 언젠가는 결국 산화되어 버릴 테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뜨거운 것을 식힐 수 있는 선선하고 청량한 시간이다. 이 음악들이 그 시간을 조금 더 도와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선선한 여름밤에 이 음악들을 들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쉼표 같은 시간을 갖기를.
바쁜 하루의 굴레를 일단 잠깐 멈춰보자. 무엇이든 멈추면, 열이 내려가는 법이다.

 

 

Writer

아쉽게도 디멘터나 삼각두, 팬텀이 없는 세상에 태어났지만 그 공백을 채울 이야기를 만들고 소개하며 살고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고, 으스스한 음악을 들으며, 여러 가지 마니악한 기획들을 작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