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니아의 컬렉션


마니아는 곧 ‘컬렉터’(Collector)다. 좋아하는 것을 모으는 것이 그들에겐 행복감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여기 모으기에 행복한, 그리고 그것을 타인과 나누기에 더 행복한 마니아가 있다. 그들의 홈페이지에 적힌 ‘Share the Experience’라는 문구처럼.

서울 양재동의 한적한 골목 건물 3층에 자리한 ‘4560디자인하우스’는 위치에서도 알 수 있듯 평범한 갤러리는 아니다. 한 디자인 에이전시의 대표 박종만 씨가 취미로 모으기 시작한 컬렉션의 규모가 커지고 보관이 까다로워지자 회사 한편을 개인 갤러리로 만든 곳이다. 그렇게 마련된 공간엔 1950~70년대 미니멀리즘 디자인 제품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대부분이 독일의 생활가전 브랜드 브라운(Braun)사, 그리고 세계적인 디자이너 디터 람스(Dieter Rams)와 관련된 제품들이다. 이 두 회사와 디자이너의 존재감이 그 시대 및 시류의 중심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2. 4560디자인하우스의 뿌리, ‘바우하우스’

바우하우스 데사우 전경&브라운 로고. 바우하우스와 브라운사는 로고마저 서로 닮아 있다 ⓒBauhaus Dessau

하지만 이곳 4560디자인하우스는 물론 브라운사와 디터 람스를 이야기할 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존재가 있다. 바로 ‘바우하우스’다. 물론 바우하우스의 존재를 전혀 모른 채 이곳을 관람해도 그 자체의 매력에 충분히 빠질 수 있지만.

디터 람스 Via theultralinx

청소년기를 나치 시대의 정점에 보낸 디터 람스는 대학 졸업 후 건축회사에서 일하며 모더니즘을 접하게 된다. 그러던 중 브라운 형제의 혁신적인 생각에 공감하여 브라운사로 이직, ‘바우하우스-울름 조형대학-브라운’으로 이어져 온 모던 미니멀리즘의 씨앗을 본격적으로 키워가게 된다. 물론 디터 람스 자신도 수많은 인터뷰에서 강조했듯 이 모든 것을 혼자 힘으로 이룬 것은 아니지만, 그의 실력과 철학, 디자인 경영능력, 리더십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성취 또한 쉽게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현재 미니멀리즘 디자인의 또 다른 역사를 만들고 있는 애플, 무인양품, 발뮤다 등은 디터 람스가 브라운사와 함께하며 만들어낸 수많은 제품들과 닮아있다. 즉, 바우하우스부터 이어져 온 디터 람스의 디자인과 철학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여전히 직, 간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4560디자인하우스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작은 공간에서도 실감할 수 있다. 바닥부터 천정까지 가득 메운 1980~90년대의 일체형 애플 컴퓨터가 앞으로 관람하게 될 1950~70년대 미니멀리즘 제품들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 그 예고편을 보게 되는 것이다.

 

3. 시간여행 공간

4560디자인하우스 전시장 내부 ⓒ4560디자인하우스

정해진 시간에 사전 예약한 관람객들은 100% 도슨트 서비스를 받게 된다. 매시간 직접 도슨트에 나서는 대표의 인사와 함께 관객들은 관람을 시작한다. 초반의 어색한 분위기는 전시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음향 가전을 통해 곧 녹기 시작한다. 오래전 오디오로 함께 음악을 느끼고, 진짜 작동될까 싶은 라디오로 FM을 들으면서 말이다. 60여 년 전 제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들은 마치 시대와 시대가 이어진 듯한 기분에 젖게 한다. 그렇게 관객들은 잘 안 쓰는 구석 버튼 하나까지 미니멀하고 세련된 오래전 디자인들을 접하며 점차 관람에 몰입해 간다.

Braun, HF 1, 헤르베르트 히르헤, 1958년 ⓒ4560디자인하우스
Braun 소형가전 제품들 ⓒ4560디자인하우스

제품의 디자인과 시대적 배경, 그 제품을 구하며 겪었던 생생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쉼 없이 계속되는 순간, 이 모든 걸 다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다는 대표의 ‘최애 컬렉션’이 등장한다. 바로 1958년 헤르베르트 히르헤(Herbert Hirche)가 디자인한 옅은 회색의 스탠드형 TV다. 오직 버튼 하나만 중앙에 자리한 탓에 당시엔 불편하단 이유로 인기가 없었고, 그래서 구입한 사람도 많지 않아 지금도 만나기 어렵다는 이 TV는 마치 이곳 컬렉션들이 가진 매력을 한 몸에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이외에도 비비드하고 빈티지한 컬러 및 형태가 눈에 띄는 면도기, 전자계산기, 드라이기 등의 소형 생활가전부터 어릴 적 ‘우리’집에 있었던 것 같은 친근한 디자인의 각종 주방용품둘이 보물 다락처럼 가득하다. 그래서일까. 관람을 마친 후엔 마치 시간여행에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4. More is more

4560디자인하우스는 ‘Less is more’란 철학이 기반된 미니멀리즘 디자인의 공간이다. 하지만 그것을 모으고 또 모아 타인과 함께 나누는 ‘'More is more’'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공간을 만든 단 한 명의 마니아가 느끼는 행복감은 누가 뭐라 해도 맥시멈이다. 이 무덥고 복잡한 여름, 이 갤러리에서 미니멀한 형태 속에 함축된 매력과 철학을 직접 경험해보길 권한다.

 

메인이미지 ⓒ4560디자인하우스

 

필자소개
Jooyoung Her / 許株榮
자기 역할을 다 할 줄 아는 디자인, 이야기를 품은 브랜드, 몰랐던 세상을 열어주는 다큐멘터리, 소소한 일상을 담은 드라마, 먹지 않아도 기분 좋은 푸드 컨텐츠, 조용한 평일 오후의 책방을 좋아하고,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언어로 나누고 싶은 ‘나 혼자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