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영화를 통해 할 수 있는 경험은 다양하다. 한번 크게 웃고 만족을 느낄 수도 있고, 삶에 던져진 커다란 질문에 대한 힌트를 얻기도 한다. 영화가 우리의 삶에 작은 파문 혹은 명징한 해답을 던져주는 순간 때문에, 스크린을 응시하는 마음은 늘 설렌다.

그렇다면 영화가 개인의 삶을 넘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 거대한 질문에 대해 자신의 방식으로 묵묵히 증명 중인 감독들이 있다. 켄 로치, 다르덴 형제, 마이클 무어가 대표적인 예인데, 그들의 영화를 보면서 관객은 세상의 부조리를 응시하고 변화를 꿈꾸게 된다. 그 순간 영화는 단순히 한 편의 영화를 넘어 관객들 사이에 의미 있는 연대를 만든다. 하나의 작품이 수많은 개인의 마음을 흔들면 결국 세상은 움직이지 않을까.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냐는 물음에 대답 중인 켄 로치, 다르덴 형제, 마이클 무어 감독의 작품을 살펴보자. 

 

 

1.  켄 로치 - 노동자들이 ‘연대’를 통해 만드는 변화

켄 로치는 ‘블루칼라의 시인’이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 노동자들이 겪는 부조리에 대해 날카로운 시선으로 담아내는 감독이다. 비전문 배우와 함께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연출한 그의 작품은 영화보다 내 옆에 있는 이웃이 겪는 문제처럼 보인다.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의 문제를 보여주고, 관객은 어느새 그들의 편이 되어 응원하게 된다. 켄 로치의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 내내 응원한 건 다름 아닌 자신과 내 주변의 동료였음을 깨닫게 된다. 켄 로치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연대'다. 그의 작품에는 늘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들이 권리를 되찾기 위해 연대하고 투쟁하는 장면이 있다. 혼자서 세상의 불평등과 맞서는 건 벅찬 일이지만, 함께라면 변화는 현실이 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2016|감독 켄 로치 |출연 데이브 존스, 헤일리 스콰이어

‘다니엘’(데이브 존스)은 심장병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되고 실업 수당을 받기 위해 고용센터에 간다. 하지만 그를 반기는 건 부당한 대우고, 그곳에서 우연히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를 만난다. 두 사람은 연대하고 서로를 도우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을 둘러싼 현실은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다니엘은 포기하지 않고, 이웃에 대한 따뜻함과 부당한 사회에 대한 자신만의 투쟁을 계속해 나간다.

자본주의 안에서 노동자는 자기 자신을 챙기기도 바쁘고, 정당한 권리를 박탈당했을 때도 침묵을 강요당할 때가 많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면서 다니엘과 케이티를 지지하는 순간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나와 내 동료의 정당한 권리와 마음을 살피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잃어가는 세상에서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켄 로치의 영화는 늘 따뜻하다.

 

 

2. 다르덴 형제 - 태도로 증명해야 하는 삶의 물음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 일명 다르덴 형제의 영화가 인상적인 이유는 그들의 영화가 관객에게 윤리적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질문은 입으로 답할 수 없는, 삶으로 증명해야 하는 ‘태도’에 대한 물음이다. 영화는 내내 질문하고, 우리는 영화가 끝난 뒤에 삶으로 그 물음에 대답하게 된다. 앞에서 소개한 켄 로치 감독과 마찬가지로 다르덴 형제도 비전문 배우와 주로 작업하고 촬영방식도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손으로 카메라를 들고 찍는 핸드헬드와 편집 없이 길게 이어지는 롱테이크 촬영, 음악이 거의 나오지 않는 특징까지 더해져서 영화보단 누군가의 일상을 보는 느낌이 크다.

 

<로제타>

Rosetta |1999|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출연 에밀리 드켄, 파브리지오 롱기온

18살 ‘로제타’(에밀리 드켄)는 알코올중독인 엄마와 함께 트레일러에서 살고 있다. 가난이 일상인 로제타는 일하던 공장에서 해고 통보를 받는다. 일한 기간이 짧아서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고, 일자리로 찾기 힘든 로제타. 와플 가게에서 일하는 ‘리케’(파브리지오 롱기온)와 친구가 되고, 사장의 도움으로 와플 반죽하는 일을 하지만 며칠 만에 쫓겨난다. 일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리케와 갈등하는 등, 남들이 말하는 평범한 삶이 로제타에게는 닿을 수 없을 만큼 어려워 보인다. 청년노동과 관련한 뉴스에서 ‘로제타 플랜’이 자주 인용된다. 벨기에 정부는 2000년부터 특정 규모 이상의 기업이 고용 인원의 일부를 청년으로 채우게 하는 ‘로제타 플랜’을 시행하고 있다. 영화 <로제타>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도화선이 된 거다.

<로제타> 속 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우리에게 질문으로 돌아온다. 로제타를 해고하는 사장, 로제타에게 애증을 느끼는 친구 리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로제타까지 그들이 겪는 상황이나 혹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선택의 순간은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다. 그 상황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이고, 그 선택은 어떤 가치를 향해 있는가. 다르덴 형제가 영화를 통해서 하는 질문은 결국 우리가 삶을 통해 대답해야 할 물음이다.

 

 

3. 마이클 무어 - 뉴스가 알려주지 않는 사실을 흥미롭게 보여주기

‘다큐멘터리’라는 단어를 들으면 다소 정적이고 진지한 분위기가 떠오른다. 하지만 ‘마이클 무어’라는 이름을 들으면 오락영화보다 더 흥미로운 취재와 편집으로 무장한 다큐멘터리가 떠오른다. 마이클 무어는 미국 사회가 꼭 들여다봐야 하는 부조리한 단면에 카메라를 갖다 대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대부분의 사회가 겪는 문제와 사회구성원의 고민은 비슷하기에, 그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미국 국적이 아니어도 내가 속한 사회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이클 무어는 언론에서는 잘 다루지 않고, 다루더라도 편협하게 다뤄질 수 있는 부분을 오히려 확대해서 보여준다. 묻힐 수 있는 사회문제가 그의 작품을 통해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 토론이 시작된다. 마이클 무어는 작품마다 흥미로운 방식으로, 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생산적 갈등의 화두를 던지고 있다.

 

<화씨 9/11>

Fahrenheit 9/11|2004|감독 마이클 무어

<화씨 9/11>은 9/11 테러 이후 이뤄진 부시 대통령의 부조리한 결정들의 배경에 그와 사우디 왕가, 빈 라덴 일가와의 개인적, 사업적 관계가 있음을 말하는 다큐멘터리다. 이들의 특수한 이해관계는 미흡한 9/11테러 진상규명, 이라크 전쟁 참전군인에 대한 턱없이 부족한 보상, 나라에 테러공포를 주입하고 만든 개인 인권 침해법안인 ‘애국법’ 등의 결과를 불러온다. <화씨 9/11>이 57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쿠엔틴 타란티노는 마이클 무어 감독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의 영화가 나를 어떻게 바꿨는지 말하자면, 난 평생 투표를 안 하고 등록도 안 했으나 이번엔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등록을 할 겁니다.” 마이클 무어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이 말이 수상보다 더 값지다고 대답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늘어나면 세상은 분명 바뀔 테니까.

사회에 대한 불만은 구성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다양한 의견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음은 건강한 사회의 증거다. 마이클 무어의 작품은 보는 이에 따라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회의 단면을 한번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건 분명 의미 있는 일 아닐까. 내가 새롭게 알게 된 하나의 사실이 내 생각과 이웃의 생각을 넘어 세상을 바꾸는 경험을, 우리는 한 적이 있으니 말이다.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