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니 조던(Ronny Jordan)은 기타를 제대로 배운 적 없이 독학으로 공부했다는 점에서 웨스 몽고메리와 닮았다. 네 살 때 우쿨렐레를 손에 잡았고 여덟 살 때부터 기타를 쳤다. 자메이카 이민자인 부모를 따라다니며 런던 북쪽의 교회에서 기타 연주를 시작했다. 대학에서는 비즈니스를 전공하여 졸업 후에도 음악과 관련 없는 직업들을 전전했다. 자작곡 ‘After Hours’로 음반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웨스 몽고메리 같은 재즈 기타리스트뿐만 아니라 에릭 클랩튼, 척 베리, 티본 워커 같은 블루스 기타리스트, 그리고 초창기 힙합까지, 그의 음악적 스펙트럼이 너무 넓었던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데뷔 앨범 <The Antidote>(1992)에 수록한 초기작 ‘After Hours’는 US R&B 차트에 올랐다

그러던 중 재즈 레전드 마일스 데이비스의 너무나 유명한 1959년 스탠더드 ‘So What’을 리메이크한 싱글이 런던 클럽 DJ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그들의 플레이리스트에 올랐다. 댄스 플로어의 재즈 음악, 즉 1980년대 후반 런던 클럽에서 태어난 애시드 재즈(Acid Jazz) 또는 클럽 재즈(Club Jazz)의 발생기에 그의 크로스오버 음악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So What’은 런던 애시드 재즈의 클래식 레퍼토리로 등극하며, 그는 대표적인 애시드 재즈 기타리스트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유명한 재즈 스탠더드를 리메이크한 ‘So What’

런던의 클럽신에서 먼저 인기를 얻은 그는 뒤늦게 데뷔 음반 <The Antidote>(1992)을 발표했다. 곧이어 그를 미국 시장에 알리게 된 두 장의 힙합 재즈 앨범에 참여한다. 미국의 인기 래퍼 구루(Guru)의 솔로 데뷔 앨범 <Jazzmatazz, Vol.1>(1993)에 수록한 ‘No Time to Play’에 영국 스타일 카운슬(Style Council) 출신의 가수 DC Lee와 함께 피처링한다. 이듬해에는 <타임>지의 “Album of the Year”에 선정된 컴필레이션 앨범 <Stolen Moment: Red Hot + Cool>(1994)에 수록한 ‘Time Is Moving On’에 참여하면서, 미국 시장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다.

구루의 <Jazzmatazz, Vol.1>(1993)에 수록한 ‘No Time to Play’

그는 자신의 음악을 재즈와 힙합과 알앤비를 합친 어번 재즈(Urban Jazz)로 규정하면서, 보편적 장르인 스무스 재즈곡과 인기 래퍼를 피처링한 힙합 재즈곡으로 레퍼토리를 구성하였다. 미국 시장을 겨냥한 앨범 <A Brighter Day>(2000)는 빌보드 재즈앨범 차트 10위에 오르며 그래미 컨템포러리 재즈 앨범 후보에 올랐다. 인기 래퍼 모스 데프(Mos Def)를 피처링한 타이틀곡은 미국 랩 차트 20위에 오르며 인기를 모았다. 2010년에는 런던의 <Jazz Café>에서 조지 벤슨의 공연에 참여하며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래퍼 모스 데프를 피처링한 ‘A Brighter Day’(2000)

전 세계 공연 투어나 페스티벌에 열정적으로 참가하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던 그는, 2014년 한창 일할 나이라 할 수 있는 51세에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했다. 남아프리카 공연에서 돌아온 직후 자택에서 쉬던 중이었다. 별다른 외상도 없고 사인을 짐작할 수 없어 뒤를 수습하던 형제들은 부검에 들어갈 예정이라고만 그들의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그의 히트곡 ‘Heaven’처럼 그가 하늘에서 편히 쉬기를 빌어 본다.

앨범 <At Last>(2003)에 수록한 ‘Heav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