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 동안 현대미술 필드에서는 론 뮤익, 트레이시 에민 등 다양한 성별, 나이, 국적의 작가들이 조각, 설치, 퍼포먼스 등 장르에서 ‘침대’를 이용한 전시를 선보여왔다. 그 크기도 어마어마한 7미터 사이즈의 침대부터, 아찔한 철사로 만들어진 침대에 이르기까지 신선한 충격을 던지는 작품들을 감상해보자.

 

리얼보다 더 리얼한 우리, 론 뮤익의 침대

Ron Mueck, In Bad, 2005  Via collater

론 뮤익(Ron Mueck)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말도 안 되게 크거나 작은 사이즈의 조각으로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인물들의 피부 결, 주름, 머리카락, 심지어 피부 아래 희미하게 비치는 혈관까지 섬세하고 리얼하게 살려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In Bed>는 키가 7미터나 되는 여성이 침대에 누워 고민에 빠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대형 설치 작품이다. 고심하는 얼굴이 너무 커다란 나머지, 관객은 그 순간의 ‘느낌’을 온몸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다. 늦은 밤 고된 하루를 마치고 비로소 침대에 홀로 누워 고요에 잠기는 순간 말이다. 인물의 복잡한 눈빛 속에는 우리 누구나 안고 있는 삶의 한숨이 담겨 있는 게 아닐까? 론 뮤익의 ‘사이즈’를 넘어서는 조각 작업은 리얼보다 더 리얼한 우리의 모습을 찾아내기 위한 여정과 다름이 없다.

Ron Mueck, In Bad, 2005  Via collater

 

나의 비밀과 상처를 보여줄게, 트레이시 에민의 침대

Tracey Emin, My bed, 1998  Via tate

누구도 매일 밤 누군가와 성관계를 가졌던 자신의 침대를 미술관 안으로 끌어들일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이 아니라면. 설치 작품 <My Bed>는 정말로 그가 전날 밤 내팽개친 속옷, 술병, 콘돔 등으로 더럽혀진 침대를 그대로 갖고 온 것이다. 그리고 이 혼돈의 흔적들을 즉시 마주하는 관객들은 조금 창피한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장난’으로 이런 짓을 벌이지 않았다. 장난 같은 결단을 내려, 자신의 비밀과 상처를 고스란히 내보일 마음을 먹었을 뿐이다. 그는 술집 종업원으로 일한 미혼모 어머니의 많은 애인들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며 자랐다. 여러 번 유산과 낙태를 경험했고, 그 때문에 술, 담배, 마약, 우울증, 자살 기도에 시달렸다. 삶이 남긴 트라우마에 매몰되지 않으려 파격적인 작업을 하는 미술가가 되었다. 우리가 그의 작품 앞에서 느껴야 할 것은 감추고 싶은 상처들로 얼룩진 인생을 정면 돌파하는, 강력한 ‘의지’가 아닐까.

Tracey Emin, My bed, 1998  Via tate

 

사랑, 로망과 일상 너머, 에드위나 샌디스의 침대

Edwina Sandys, The Marriage Bed, 2001  Via vogelsanggallery

미술관에 들어서서 <The Marriage Bed>를 보게 되었다고 하자. “당신은 아름다운 장미들을 알아볼 거예요. 그런 다음 그것이 ‘침대’라는 걸 알아차리겠죠. ‘못’을 알아보는 건 그다음이에요.” 작가 에드위나 샌디스(Edwina Sandys)의 설명이다.

어쩌면 우리가 사랑을 겪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아름다운 순간들에 매혹되고 사로잡히다가, 그것이 로망을 넘어선 섹스 그리고 일상이 되고, 어느 순간 서로를 괴롭히는 칼날들을 내미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 과정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침대를 완전히 떠날 수 없다. 절반의 행복한 순간들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것에 기대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감각적인 작업으로 사람들을 매혹해온 에드위나 샌디스는, 미술이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앎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한다.

Edwina Sandys, The Marriage Bed, 2001  Via vogelsanggallery

 

나를 아프게 하는 동시에 쉬게 하는, 저우 지에의 침대

Zhou Jie, 36 Days, 2014  Via chinadaily

자그마치 36일 동안 철사들이 엉켜 있는 침대 위에서 알몸으로 잠든다고 상상해보자. 차갑고 아프지 않겠는가? 하루 만에 그만두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일이다. 그러나 중국의 퍼포먼스 미술가 저우 지에(Zhou Jie)는 패기 있게 일을 벌였다. 거기다 ‘미술관 안에서, 관객들 앞에서’라는 조건 하나 더 달고서.

그는 ‘철사’가 날카로운 소재이면서도 안으로 엉킨 그물망으로서 공격과 방어의 이중적인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각자의 삶 안에서 그와 같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며 살아간다고. 나를 다치게 하지만, 나를 지켜주는 무언가를 말이다. 그것은 타인일 수도, 내 안의 감정일 수도 있으며 ‘침대’와 같이 특정한 오브제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의 퍼포먼스를 보는 내내 제 몸이 아픈 것처럼 불편한 감각에 시달리게 되는데, 어쩌면 정곡을 찔려서일지도 모른다.

Zhou Jie, 36 Days, 2014  Via chinadaily
Zhou Jie, 36 Days, 2014  Via chinadaily

 

Writer

미학을 공부하고 글을 씁니다. 현대 미술과 문학에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