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루시!>로 돌아온 청춘스타 조쉬 하트넷. 때마다 시대를 대표하는 청춘스타가 존재하고 이들의 청춘 시절은 나름 풋풋하게 빛나고 아름답다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간혹 의외의 매력을 발산하거나 뜻밖의 길을 걸어가는 배우들도 있다. 내겐 조쉬 하트넷이 그러하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벗어나 나이를 먹고 이제는 불혹에 가까운 나이에 영화로 돌아온 조쉬 하트넷의 지난 필모그래피를 살펴본다.

 

<패컬티>

The Faculty | 1998 | 감독 로버트 로드리게즈 | 조대나 브류스터, 클리어 듀발, 로라 해리스, 조쉬 하트넷, 숀 하토시, 일라이저 우드, 셀마 헤이엑, 팜케 얀센

갓 스무 살의 조쉬 하트넷이 주연에 도전했던 <패컬티>에서는 사실 하트넷 말고도 반가운 얼굴들이 많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일라이저 우드, ‘분노의 질주’ 시리즈로 유명한 조대나 브류스터 등이 모두 10대의 나이로 출연했으며, 이젠 중년 배우로 더 익숙한 셀마 헤이엑이나 팜케 얀센 모두 젊은 간호사와 선생님으로 분한다.

<패컬티> 극장 트레일러

감독은 <엘 마리아치>(1992)와 ‘황혼에서 새벽까지’ 시리즈, ‘스파이 키드’ 시리즈로 유명한 로버트 로드리게즈. 어두운 분위기와 B급 감성을 좋아하는 로드리게즈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영화는 한 고등학교에 침입한 외계인과 그에 맞서는 학생들의 엽기적인 스토리를 다룬다. 여기서의 하트넷은 아직까지 유난히 더욱 창백해 보이는 피부에 더벅머리가 귀여운 전형적인 하이틴 스타의 모습을 보인다.

 

<블랙 호크 다운>

Black Hawk Down | 2001 | 감독 리들리 스콧 | 출연 조쉬 하트넷, 이완 맥그리거, 톰 시즈모어, 에릭 바나, 윌리암 피츠너, 이완 브래너, 샘 셰퍼드

조쉬 하트넷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2001년 즈음이 기점이다. 뭐든 부수기 좋아하고 동시에 애국주의자이기도 한 마이클 베이(<아마겟돈>(1998), ‘트랜스포머’ 시리즈 감독)가, '태평양 전쟁'을 소재로 역시 그의 구미에 맞는 영화 <진주만>을 만들어 흥행과 비판 모두를 얻어냈고, 그 간판에는 군인에 완벽히 어울렸던 하트넷이 있었다.

<블랙 호크 다운> 메인 예고편

같은 성공한 전쟁 영화라고 해도 영화로 보나 하트넷이 맡은 캐릭터와 연기로 보나 그가 더욱 돋보였던 것은 단연 <블랙 호크 다운>이었다. 풋볼 선수 출신으로서 키 190cm가 넘는 거구와 낮게 깔리는 목소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마초성, 야무지게 다문 입매가 듬직한 군인의 이상과도 같은 멋을 스크린과 사람들의 뇌리에 아로새겼다.

 

<모짜르트와 고래>

Mozart And Whale | 2007 | 감독 페테르 내스 | 출연 조쉬 하트넷, 라다 미첼, 개리 콜, 엘렌 에반젤리스타, 쉘라 켈리, 에리카 레어센, 존 캐럴 린치, 네이트 무니

무엇보다 조쉬 하트넷이 청춘스타일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그의 굳건해 보이는 외면 위로 반항아적인 어두움과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연약하고 부드러운 캐릭터 등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어딘가에 홀린 듯 강렬히 쏘아보는 눈빛, 어떨 때는 갈 곳을 잃은 채 흔들리는 깊은 눈, 거기에 굳게 다문 고운 입매로 청춘의 순수한 열정과 공격성, 그로 인한 좌절과 혼란 및 연민 등이 다양하게 어울릴 법한 매력을 지닌 그였다.

<모짜르트와 고래> 중(2007)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주인공 ‘도널드’를 연기한 <모짜르트와 고래>, 어리숙한 모습 뒤에 반전을 숨겨두었던 <럭키 넘버 슬레븐>(2006) 속 ‘슬레븐’ 등이 하트넷에게 잘 어울렸던 것이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에서 배트맨 배역이 그에게 갔던 것은 모두 어딘지 이율배반적인 그의 매력 덕분이었다. 성숙한 철학과 이중생활에서 오는 필연적인 고독, 심리적인 불안과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등이 복잡하게 뒤얽힌 배트맨 캐릭터는 어쩌면 조쉬 하트넷을 위한 역할이었을지도 모른다.

 

<오 루시!>

Oh Lucy! | 2017 | 감독 히라야나기 아츠코 | 출연 테라지마 시노부, 조쉬 하트넷, 미나미 카호, 야쿠쇼 코지, 쿠츠나 시오리, 메간 멀러리, 레이코 에이리스위스

하지만 조쉬 하트넷은 한창 헐리우드에서 주가가 뛰어오르던 시기 이병헌, 기무라 타쿠야 등 아시아의 별들과 함께했던 <나는 비와 함께 간다>(2008)를 끝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며 스스로 정상에서 내려온다. 누군가는 하트넷이 “영화계에서 찍혔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단지 청춘스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슬럼프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그는 분명히 말한다.

“To get so consumed with chasing a goal that doesn’t necessarily have to define you is a fool’s errand and I wanted to have a healthy perspective on it.” ... “It didn’t feel like I was totally in control of my own destiny(나 자신을 찾는 일과 상관없는 목표를 좆는 데 열중하는 것은 헛수고다. 나는 건강한 시각을 갖고 싶었다.” ... “내 운명을 스스로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 <HuffPost> 2017.10.12

이후 독립영화와 저예산 영화들에 간간이 얼굴을 비추다가 2014년 <페니 드레드풀>의 주연 ‘이단 챈들러’ 역으로 복귀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조쉬 하트넷의 귀환을 반기면서도 한편으로 그의 공백에 궁금해했지만, 조쉬 하트넷을 사랑했던 이라면 이런 하트넷의 이력이 되려 그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오 루시!> 메인 예고편

그랬던 당신이라면 이제는 거꾸로, 돌아온 조쉬 하트넷의 변화된 모습들을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다. 이전에도 얼마든지 로맨틱한 모습을 선보였던 그이지만 이에 더해 한껏 유해진 하트넷의 환한 미소를 보는 것, 풋내 없이 자연스럽고 능청스러워진 그의 연기를 보는 일은 무척 낯설면서도 반가운 일이다. 나는 이렇게 추억의 청춘스타를 돌려받음과 동시에 새로운 베테랑 배우를 덤으로 얻었다.

 

메인 이미지 <럭키 넘버 슬레븐>(2006) 스틸컷

 

Writer

차분한 즐거움을 좇는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것과 일상에 대한 좋은 생각,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옮긴다. 학부 시절 네이버 파워블로그에 선정된 후 쓰기를 이어와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웹진 <음악취향Y>, 잡지 <재즈피플>, 신문 <아주경제> 등에 글을 기고한다. 누구나 늘 즐겁기를 바란다. 너무 들뜨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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