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에서 구두로, 구두에서 사람으로 창작의 캔버스를 옮긴 끝에 지금의 타투이스트 ‘판타’가 됐다. 세속적인 현실에 좌절을 맛보면서도 끊임없이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예술가답게, 타투이스트 판타는 사람의 몸에 그림을 새기는 행위를 통해 본인의 세계를 확장한다. 그는 타투가 하나의 패션이자 예술로 자리 잡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편견에 대해서는, 자신의 몸에도 타투를 ‘도배’하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판타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투를 원하는 개인들에게 신중하게 묻는다. 한 번 새기면 지우기 어려운 타투에 어떤 이야기와 의미를 함께 새길 것인지. 그러고는 절대 지우고 싶지 않을 예쁘고 아름다운 선을 그려 넣는다.

▲ 혁오 밴드 오혁의 오른팔 상박에 새긴 ‘욕조 안의 파도’. 오혁에게 새겼던 타투 중 판타가 가장 좋아하는 작업
▲ 타블로의 팔에 새긴 ‘우산’과 ‘비구름’. 작업 당시 라디오에서 우연히 에픽하이의 ‘우산’이 나와서 그날을 타블로의 날이라 말했다고 
▲ 비투비 임현식이 요청한 <몽상가들>에 나오는 ‘세 갈래로 나뉘어진 바나나’. 앤디워홀이 그린 <벨벳 언더그라운드 & 니코> 앨범 자켓 느낌으로 작업했다
 

타투이스트 판타에게 타투의 대중화는 분명 좋은 일이지만, 애석하게도 현실엔 좋은 일만 존재하지는 않는 법. 예컨대 개인의 사리사욕만을 채우려는 위험한 타투의 양산은 판타가 경계하는 일이다. 사람의 욕심이 빚어내는 사회의 이면에 답답함을 느끼는 판타는 그래서 종종 일탈을 꿈꾼다. 한때 철없는 젊은이들의 일탈로 치부되던 타투를 당당하게 만끽하는 오늘날의 젊은이가 상상하는 일탈은, 삭막한 현실에 없을 것 같은 환상적인 존재들을 떠올리며 즐거움을 얻는 일이다. 이야말로 몹시 정직하고, 환상적인 일탈이 아닌가.

Panta Says,

“아마 중학교 시절이었을 것이다. 나는 인간들이 만들어 낸 물질문명에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주에서 먼지보다도 작은 존재일 뿐인데 욕심과 이기심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서로를 밟고 정상으로 올라가려고만 했다. 아름다운 산들은 깎여 나가고 차갑고 딱딱한 건물들로 가려진 하늘은 답답하기만 했다. 그때부터 나는 현실로부터 멀어지고자 노력했던 것 같다. 나는 서른 살을 갓 넘은 지금까지도 어른 세계를 모르는 아이들이 볼 법한 어린이 프로그램이나 만화, 좀 더 어른스럽게는 판타지 영화나 드라마만 본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생명체가 등장하는 건 다 본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 것들을 보고 있을 때 내가 현재 속해 있는 시공간에서 벗어난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아진다.”

 

1. 세브달리자(Sevdaliza) ‘That Other Girl’ MV

네덜란드 출신 아티스트 Sevdaliza가 대기오염 문제를 주제로 발표한 첫 싱글 <Clear air> 뮤직비디오도 나의 사상과 잘 맞지만, 그의 뮤직비디오 중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라면 ‘That Other Girl’을 꼽고 싶다. 몽환적인 목소리와 멜로디 그리고 베이퍼웨이브(vaporwave)적 요소가 들어간 영상까지 모두 완벽하다. 베이퍼웨이브는 조금 유행이 지난 듯하지만 여전히 내 취향이다. 나는 이 뮤직비디오를 처음 본 순간부터 끝까지 ‘미쳤다’라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정말 미쳤다. 이럴 수가 있나. 중간 중간 음악과 영상이 주는 긴장감은 날 더 미치게 했다. 영상도 영상이지만, 그의 외모에서 풍기는 묘한 느낌이 영상을 더 완벽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2. 시규어 로스(Sigur Ros) ‘Glósóli’ MV

사랑에 깊이 빠진 적이 있었다. 그는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 준 사람이었다. 그가 좋아하는 것들은 다 알고 싶어 했는데, 그가 좋아하는 뮤지션 중 하나가 아이슬란드 출신의 포스트락 밴드인 Sigur Ros였다. 이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내 영혼이 답답한 몸에서 빠져나와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것 같다. ‘Glósóli’는 2005년 앨범에 수록한 곡으로, 간간이 들리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맑은 소리들은 순수한 어린아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몽환적이면서도 차갑고 축축한 느낌이다. 아이들이 바닷가 바위들 틈에 누워서 자는 모습은 정말 천사 같다. 뮤직비디오가 끝날 때쯤 아이들이 절벽에서 뛰어 내린다. 다행히 그들은 나는 연습을 하는 아기새들처럼 날았다. 나도 날고 있었다.

 

3. <아홉 개의 빛, 아홉 개의 감성> 전 - 올리비에 랏시(Olivier Ratsi) 'ONION SKIN'

디뮤지엄에서 전시했던 <아홉 개의 빛, 아홉 개의 감성(9 LIGHT IN 9 ROOMS)>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영상이다. 다른 작품들은 누구나 좋아할 만큼 아름답고 예쁜 것이었기에 나로선 별 감흥이 없었다. Olivier Ratsi의 작업은 나를 10여 분 동안 그 앞에 서 있게 만들었다. 어둠 속에서 호러 영화를 연상케 하는 소름 끼치면서도 긴장감을 주는 사운드가 흘러 나오고 기하학적인 선과 면들이 계속해서 겹쳐지고 해체하기를 반복한다. 그는 차원의 문을 열어주었고 나는 그 공간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 압도감은 앞에 서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작품에 매료되어 Olivier Ratsi의 다른 Onion Skin 영상들도 봤는데 역시 이 영상이 제일 마음에 든다.

 

4. 미국 드라마 <Dominion> Fanmade MV

신이 있을까? 신이 있다면 천사와 악마도 있을 것이다. 나는 종교는 없지만 이들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Dominion>은 가장 재밌게 본 드라마다. 나를 포함한 인간들은 이기적이고 추악하다. 신이 준 선물들을 모두 파괴해 버렸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고통은 우리가 만들어 낸 게 아닌가 싶다.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은 아주 먼 미래다. 온갖 전쟁과 재해로 지구는 희망이 없는 별이 되어 버렸고 신은 자취를 감추었다. 신의 자식이자 수행원인 천사들도 분열했다. ‘대천사 가브리엘’은 인간들이 육신을 가질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목표는 육신 없이 어둠 속에 살던 천사들에게 인간의 육신을 취할 수 있게 하는 것. 반면 ‘대천사 미카엘’은 아버지인 신께서 만든 인간들을 해쳐선 안 된다고 생각해 적게 나마 남은 인간들을 보호한다. 흥분해서 글이 길어졌다. 여기서 포인트는 천사들의 검은 날개다. 우리가 생각하던 하얀 날개와 상반되는 검은 날개를 펼쳐 날아다니는 천사는 정말 아름답다.

 

타투이스트 판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판화를 전공하고 섬유미술 패션디자인을 부전공했다. 이후 구두 디자인 회사를 다니다 우연히 타투에 매력을 느낀 그는 2014년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타투이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오혁, 타블로, 비투비 임현식 같은 유명인들의 타투 작업과 패션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한남동에 작업실을 두고 꾸준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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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이미지 출처- 타투이스트 판타 제공,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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