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L.A. Times>와의 인터뷰에서 조 샘플(Joe Sample, 1939~2014)은 자신의 음악을 이렇게 설명했다. “재즈인들은 블루스를 혐오하고 블루스 연주자들은 록을 혐오하고 로커들은 재즈를 혐오하는 등 불행히도 이 나라에는 다양한 형태의 음악에 대한 많은 편견이 존재한다. 어떻게 음악을 혐오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 모두를 한데 섞었다.” 그의 피아노 연주는 딱히 장르를 규정하기 어려운, 부기우기, 재즈, 블루스, 펑크, 소울의 요소를 섞은 그야말로 퓨전이다.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Street Life’(1979)는 빌보드 팝, 소울, 디스코의 3개 차트 상위에 랭크되었으며, 해당 앨범은 2백만 장이 팔려 1970년대를 상징하는 앨범이 되었다. 그는 이 노래를 불러 유명해진 가수 랜디 크로포드(Randy Crawford)와 함께 내한해 2007년 서울재즈페스티벌에 참여한 바 있다. 조 샘플이 이끈 더 크루세이더스(The Crusaders)와 랜디 크로포드가 함께한 공연 영상을 보자.

The Crusaders & Randy Crawford 'Street Life'(2003 @ Montreux)

샘플의 음악 인생은 재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친구들로 이루어진 The Jazz Crusaders(The Crusaders의 전신)는, 미국의 재즈 드러머인 아트 블레키(Art Blakey)가 이끈 Jazz Messengers를 모방한 하드 밥(Hard Bop) 재즈로 유명했다. 이들의 음악은 1960년대 미국 급진파 단체들의 환호를 받았다. 대표적 에피소드로 1974년 공생해방군(SLA)이라는 미국의 극좌 단체가 신문재벌 상속녀인 패티 허스트(Patty Hearst)를 납치한 사건을 들 수 있다.(이 사건은 패티 허스트가 자신을 납치한 SLA에 감화되는 ‘스톡홀롬 증후군’의 대표적 케이스로 남는다.) SLA는 몸값을 요구하는 테이프에 The Jazz Crusaders의 ‘Way Back Home’(1970)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다. 이에 따라 The Jazz Crusaders 멤버들은 영문도 모른 채 FBI로부터 급진파 조직과의 관련성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Way Back Home’을 들어보자.

The Crusaders 'Way Back Home'

1970년대 재즈의 인기가 쇠퇴하면서 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재즈에서 벗어나 록, R&B, 펑크로의 전향을 시도하였다. The Jazz Crusaders도 1979년 밴드 이름에서 ‘Jazz’를 빼고 The Crusaders로 바꾸며 펑키한 음악으로 변신하였다. 조 샘플은 피아노를 마치 타악기처럼 힘있게 두드리는 파워 주법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가 연주할 때 피아노 줄이 터지지 않을까 관계자들이 초초해 할 정도로 건반을 강하게 두드렸다. 아래 영상은 그의 자작곡이자 대표곡으로 칭송되는 ‘Carmel’ 실황인데, 드럼 외에 퍼커션 주자가 한 명 더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붉은 셔츠의 퍼커셔니스트는 브라질이 자랑하는 에알토 모레이라(Airto Moreira)다.

조 샘플(Joe Sample) 'Carmel'

그러나 오리지널 멤버들이 떠나면서 The Crusaders의 공식적인 활동은 약화되었으며, 샘플은 솔로 활동과 겸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인들과 협연하거나 다수의 레코딩 작업에 참여한다. 팝(비치 보이즈, 로드 스튜어트), 소울(마빈 게이, 조지 벤슨), 재즈(엘라 피츠제럴드), 블루스(비비 킹, 에릭 클랩튼), 록(스틸리 댄) 등 참여 장르도 다양하였다. 블루스는 특히 그가 즐겨 연주하는 장르 중 하나다. 아래의 블루스 연주 영상은 에릭 클랩튼(기타), 마커스 밀러(베이스), 데이비드 샌본(색소폰), 스티브 겟(드럼)의 화려한 면면으로 이루어진 프로젝트 그룹으로, 1997년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Montreux Jazz Festival) 실황이다.

몽트뢰에서 블루스 피아노를 연주하는 조 샘플 

1980년대 들어 샘플의 음악은 더욱 부드럽고 섬세해졌다. 누구보다 먼저 전자피아노를 받아들인 그는, 과거의 파워 연주에서 벗어나 도회풍의 세련된 연주에 소울 또는 팝 가수와의 콜라보로 자주 빌보드 팝음악 차트에 이름을 올렸다. 어떤 이들은 이를 ‘Smooth Jazz’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곡이 빌 위더스(Bill Withers)와 같이 한 ‘Soul Shadow’와 마이클 프랭크(Michael Franks)와의 ‘Leading Me Back to You’이다. 두 곡 모두 조 샘플 작곡이다.

조 샘플 'Soul Shadows'
마이클 프랭크스 보컬의 'Leading Me Back to You'

샘플의 자작곡 중 ‘In All My Wildest Dreams’는 후에 힙합 영웅 2Pac의 ‘Dear Mama’에 샘플링된 것으로 유명하다. ‘Dear Mama’는 빌보드 랩싱글 차트에서 5주간 1위를 차지했고, 국회 도서관에 영구 보존된 랩의 클래식 같은 곡이다. 그 외에도 De La Soul의 ‘WRM’s Dedication to the Bitty’, 토니 블랙스톤(Toni Braxton)의 ‘What’s Good’, Arrested Development의 ‘Africa’s Inside Me’에도 샘플링되었다. 조 샘플의 원곡 ‘In All My Wildest Dreams’와 2Pac의 ‘Dear Mama’를 비교 감상해보자.

Joe Sample 'In All My Wildest Dreams'
샘플의 곡을 샘플링한 2 Pac의 'Dear Mama'

그의 음악은 재즈, 펑크, 소울, 블루스, 팝에 걸쳐 있으며 힙합을 포함한 후대의 음악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조 샘플은 건강이 악화된 후에도 루이지애나 전통 스타일의 밴드를 조직하여 유럽 순회공연을 하였고, 새로운 영역인 뮤지컬을 기획하던 중 2014년 폐암으로 75년의 생을 마감했다. 5세부터 피아노를 시작했으니 70년의 파란만장한 피아노 어드벤처가 종료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