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택
산수화에 21세기 상상을 끼얹다

옮겨진 산수 유람기 121, 2014 (사진= 아트파크)

전통적으로 ‘선비’들의 산수화는 정신을 수양하는 차원에서 고요하고 자연스러운 풍경을 묘사하는 느낌이 강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산수화는 어떨까? 빠르고 현란한 디지털 시대에 산수화가 존재할 수 있기는 할까?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임택 작가는 우리 세대의 감수성에 꼭 맞는 현대판 산수화를 선보인다. 한낮의 거대한 보름달, 무지개, 꽃다발만큼 눈부신 꽃밭이 어우러진 골짜기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황홀경을 자아내며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총천연색 디지털 컬러로 연출된 그림을 따라 상상하는 어느 곳으로든 떠날 수 있는 여행의 기분을 만끽해보자.

옮겨진산수유람기 1210, 2012 (사진= 아트파크)
옮겨진산수유람기 151, 2015 (사진= 아트파크)
옮겨진산수유람기 0710, 2007 (사진= 아트파크)

 

장재록
New York in Black

Another Landscape-Times Square, 2011 (사진= 코리아 투모로우)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부, 24시간 내내 불이 켜져 있는 빌딩들의 도시, 뉴욕을 먹의 농담 하나로 표현한다는 건 어쩐지 불가능한 도전처럼 들린다. 채색을 쓰지 않고 먹만을 사용해 일필휘지로 그리는 수묵화 특유의 성질 때문이다. 장재록 작가는 먹이 지닌 카리스마를 절묘하게 발휘함으로써 이러한 염려를 손쉽게 무너뜨린다. 눈부신 간판들 아래 새카만 군중으로 가득한 타임스퀘어, 대형 거울 혹은 유리 빌딩인 양 매끄럽기 그지없는 차체…. 관객들은 먹이라는 재료가 다뤄지는 방식을 통해 흑백 그림의 질감에 집중하고, 도시 공간의 물질 자체에 주목하게 되는 듯하다.

이것은 도시인의 삶에 대한, 일종의 음울한 경고일까? 누군가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장재록 작가는 관객들이 자신의 작업을 통해 희망적인 미래를 불러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가 스포츠카를 하나의 피사체로 삼았던 것도 그것에서 속도감과 열정, 섹시함 등의 매력을 발견한 탓이다. 실로 도시인의 삶에서 단 하나의 태도란 가능하지 않다. 그의 최근 작업 역시 변화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Another Landscape-Times Square, 2011 (사진= 코리아 투모로우)
Another Landscape-bmw, 2011 (사진= 코리아 투모로우)
Another Landscape-Times Square, 2012 (사진= 코리아 투모로우)
Another Landscape, 2009 (사진= 서울아트코리아)

 

손동현
할리우드 영웅 초상화

영웅배투만선생상, 2005 (사진= 아키브)

“옛날 옛적 세종대왕과 충무공 이순신의 초상화가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할리우드 영웅의 초상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 옛날 사람들에게 초상화가 지녔던 역할을 고려하면 이러한 호기심이 꼭 어불성설인 것만은 아니다. 인물의 생김새를 똑같이 묘사하며 오늘날 사진이 하는 기능을 맡았던 것 외에도, 초상화는 한 인물의 정치적 지위나 그 인물이 상징하는 정신을 담아내는 기능을 해왔다.

손동현 작가는 이러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유명한 문화 아이콘인 슈퍼맨과 배트맨, 마이클 잭슨, 심지어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까지 캔버스 속으로 불러들인다. 디테일을 갖추어 말하자면, 아직 팝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던 시절의 마이클 잭슨을 호피로 덮인 나무 의자 위에 앉혀두었다. 조선 시대 사대부는 그렇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전 세계를 호령하는 팝 황제가 되었던 시절에 맞추어 비로소 용으로 장식된 임금 어좌 위에 앉는 호사를 누린다.

이러한 작업은 그림 한 장에 사람의 모든 역사를 담아내는 일이라는 점에서 잊혀가던 그림의 여러 역할들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잊히기 쉬운 대중문화의 여러 인간적 서사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도 물론이다. 최근 손동현 작가는 할리우드가 아닌 자신의 상상 속에서 탄생한 무협 영웅들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기존의 서사를 차용하는 것을 넘어, 이마저 새롭게 창조해보려는 그의 도전 정신에 주목할 만하다.

노날두맥날두선생상, 2005 (사진= 아키브)
Portrait of the King (01)_got to be there, 2008 (사진= 아키브)
Portrait of the King (38)_you rock my world, 2008 (사진= 아키브)
Pine the Great, 2014 (사진= 네오룩)
High Fiber, 2017 (사진= 네오룩)

 

Writer

미학을 공부하고 글을 씁니다. 현대 미술과 문학에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