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치 사카모토는 젊은 시절 영화에 얼굴을 비추거나 전자음악 밴드 ‘Yellow Magic Orchestra’에서 키보드를 치기도 했다. 그 후 영화음악으로 차츰 이름을 날리고 전 세계 감독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명성을 쌓아가던 류이치 사카모토는 최근에 환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자신의 뿌리인 음악뿐 아니라 음악 외적인 것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그는 몇 년 전 발병한 인후암과 싸우면서도 그동안 해왔던 아름다운 영화음악에서 더 나아가 한층 성숙해진 음악으로, 인공적인 음보다는 자연의 소리를 담으려 애쓴 새 앨범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이하 <코다>)에는 이러한 류이치 사카모토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코다> 속 내용을 중심으로 그의 삶을 되짚어보자.

 

환경운동가 류이치 사카모토

동일본 지진과 쓰나미 속에서도 살아남아 소리를 내는 피아노를 찾아간 류이치 사카모토. 그는 인공적으로 조율된 악기가 아닌, 잘 맞지 않는 음이지만 자연의 소리를 닮아가는 피아노 소리에 감명받은 후 이에 대한 곡 ‘쓰나미 피아노’를 쓰기도 한다. 이후 그는 1990년대 말 무렵부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환경운동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소리를 내는 사회운동가가 되었다. 원전 재가동을 발표한 정부의 방침에 반대하는 수많은 시민들이 모인 도쿄거리, 류이치 사카모토 역시 자기 생각을 외치면서 시민들을 독려한다. 영화음악에만 매달리던 음악가가 아닌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깨달음과 행동을 몸소 보여주는 그에게서 존경심마저 느끼게 된다. 음악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느냐는 어떤 인터뷰에서의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미국 9•11 테러 사태 때 저는 테러가 일어난 곳에서 가까운 지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인간은 극도의 긴장 상태에선 음악을 듣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우리가 음악을 하거나 예술 활동을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평화로운 일상이 유지돼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겠죠. 제가 음악과 함께 사회운동을 계속하는 이유입니다.”

음악이 세상을 구하긴 힘들어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그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영화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

류이치 사카모토가 처음 영화음악에 참여한 작품은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전장의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Mr. Lawrence)>(1983)다. 이는 당시 영화배우로 출연해달라는 감독의 요청을 받은 그가 영화음악까지 맡겠다고 호기를 부린 데서 시작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데이비드 보위와 더불어 존경과 애정이 뒤섞인 묘한 감정 기류를 형성하는 일본군 장교로 나오는 그의 모습은 매우 앳되다. 여기서 류이치 사카모토는 유명한 ‘Merry Christmas, Mr. Lawrence’ 테마 송을 작곡한다.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 류이치 사카모토의 모습
<Merry Christmans Mr. Lawrence> 메인타이틀곡

그 후 <마지막 황제>(1987)에서 황제 푸이와 만주국을 친일로 몰아가는 관동군 대위로 연기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영화에 참여한 류이치 사카모토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으로부터 영화에 쓸 곡을 한 가지 만들어 달라고 요청받는다. 이 곡이 마음에 든 감독은 촬영을 마치고 미국에 가 있던 그에게 연락하여 영화음악 전체를 맡아달라고 갑자기 요청한다. 이에 류이치 사카모토는 일주일 동안 아무 데도 나가지 않고 호텔에 머무르며 45곡을 완성한다.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아카데미상과 골든 글로브상을 받은 <마지막 황제> 음악은 이렇게 탄생했다.

<마지막 황제>에 출연한 모습
<마지막 황제> OST 중 'Rain' Live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와 다시 작업한 <Sheltering Sky> 메인테마곡

2014년 인후암 3기 판정을 받은 그는 20대부터 쉬지 않고 달려왔던 일을 잠시 내려놓고 치료에 전념한다. 하지만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감독의 거절하기 어려운 요청을 받고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의 음악을 만든다. 대자연의 소리를 담으려 애쓴 그가 매우 힘들어하며 죽을 각오로 만들었다는 음악을 들어보자.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메인 테마

 

계속되는 행보

그 후 류이치 사카모토는 우리나라 영화 <남한산성>(2017)과 2018년 큰 인기를 끈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의 영화음악에도 참여하면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그는 동일본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O.S.T. 중 ‘M.A Y in the Backyard’

그는 솔로 앨범 <ASYNC>에서 더 이상 인공적인 소리에만 집착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원하는 소리를 얻기 위해 아프리카 최초 인류의 흔적이 있는 곳부터 북극까지 찾아가며 자연의 소리를 담기 위해 애쓴다. 뉴욕 집에서는 플라스틱과 유리그릇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들의 차이점을 느끼기 위해 직접 플라스틱 통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비를 맞기도 한다. <코다>에서는 아침마다 바흐의 ‘코랄 전주곡’을 연주하면서 굳어진 손을 풀고 바흐의 음악에 대한 오마주적인 음악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아무쪼록 그의 암이 완치되어 더욱 진지하게 음악의 세계를 탐구하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모습을 오래도록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코다>를 보며 미처 몰랐던 그의 모습을 새로이 발견하고, 그의 음악을 되짚어보는 기회를 가지는 일도 의미 있을 것이다.

<코다> 마스터클래스 GV 당시 류이치 사카모토 인터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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