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IMDb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 이념적 대립으로 인한 갈등 프레임이 깊게 자리 잡은 시기에 있다. 각 집단이 서로의 이익과 안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도, 이해관계의 충돌로 인한 여러 사건은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중이다. 
이와 비슷한 양상으로, 다민족 국가 미국에 만연한 ‘인종 차별’이 있다. 차별에 대한 강도 높은 발언을 일삼는 트럼프 대통령의 통치 아래, 비무장 흑인이 경찰의 총격에 의해 사망한 퍼거슨 소요사태, 트레이본 마틴 살인사건 등은 저항에 대한 불씨를 키웠다. 주류 사회에서 끊임없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던 분노가 폭발하여 촉발된 ‘흑인의 인권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BLM)’라는 흑인 인권운동이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 트레일러

2014년에 개봉한 동명의 영화를 각색, 17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넷플릭스 드라마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Dear White People)>은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양상을 아이비리그 소재 가상의 대학 윈체스터에 벌어지는 일들로 축소함으로써 생동감을 살렸다. 대부분의 미국 캠퍼스 드라마가 백인 주인공들의 전유물인 반면에, 드라마는 성격도 가치관도 전혀 다른 여러 흑인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백인들이 마땅히 여기는 가치가 미국의 본모습인 양 비추는 여타 대학 시트콤들의 접근법과는 전혀 다르다.
주인공 ‘샘 화이트’(로건 브라우닝)는 흑인으로서 겪은 부당한 현실에 저항하려는 자신의 이상을 펼치고자, 교내 라디오 방송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을 시작한다. 백인 특권 주의를 추구하는 유머 잡지 페스티지는 이에 반발해 백인들이 흑인 코스프레를 하는 블랙페이스 파티를 계획하게 되고 결국 흑인 학생들의 역린을 건들고 만다. 이로써 샘은 더욱 인권 활동에 앞장서게 되며, 점차 학교의 역사와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며 해결책을 찾아 나선다.

출처 - IMDb 

드라마는 이 과정에서 각 주인공이 마주친 선택의 순간과 정체성의 혼란을 다차원적으로 펼쳐낸다. 집단을 대표해 목소리를 내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솔직하지 못한 선동가 ‘샘’, 내성적이지만 자신의 성적 지향을 깨닫고 매사에 자신감을 내기 시작한 기자 ‘라이어널’(더론 호턴), 시키는 대로 살아오다 점차 자신의 내면을 깨닫는 총학생회장 ‘트로이’(브랜던 P.벨), 야망을 채우고자 수많은 전략을 취하는 ‘코코’(앤트와넷 로버트슨), 흑인 집단의 입장을 지지하지만 표현에 서툰 백인 남성 ‘게이브’(존 패트릭 아메도리) 등이 있다.
이상적인 캐릭터는 단 하나도 없다. 부당한 현실과 맞서 싸우기 위해, 교우 관계를 지키기 위해 이들은 실수를 거듭하고 서로 조언을 이어가며 더욱 단단해진다. 짧은 시간 설정과 많지 않은 사건에도, 디테일한 설정을 더한 캐릭터들의 시각을 통해 입체감과 긴장감이 느껴진다.

출처 - IMDb 

드라마에 등장하는 보편적인 흑인 문화와 젊은 세대들의 현실 감각은 그것에 낯선 이들에게 배움의 첩경이 되기에 좋다. 아프리카 흑인의 숙소에서 현재 흑인 기숙사가 된 암스트롱 파커. 학생들은 매주 수요일 모여 함께 우스꽝스러운 드라마를 시청하고, 블랙 코커스라는 단합대회를 열어 서로 회포를 나눈다. 이들은 프랭크 오션과 비욘세의 힙합 음악이 자신의 생각을 대변한다 믿고, 트위터상의 반대 세력과 뜨거운 설전을 이어가다가도 태그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드라마에서는 소셜미디어가 사건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출처 - Vanity Fair 

시즌1은 몇 가지 사건을 여러 캐릭터 소개를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했기 때문에, 빠르게 정주행하기에 좋다. 영화 <문라이트>의 감독 베리 젠킨스가 맡은 시즌1의 에피소드5는 갈등 촉발의 도화선이 된 사건을 가장 현실적으로 다루었다. 감독의 밀도 높은 표현법 덕분에 긴장감은 극한에 이른다.
시즌2로 넘어가면서 주요 캐릭터들의 소개가 마무리되고, 드라마는 기존의 코미디 요소에 드라마틱한 요소와 구체적인 배경을 넣기 시작했다. 그중 에피소드 8은 거친 호흡으로 두 캐릭터의 설전과 감정 변화를 담아내 최고의 몰입도를 지킨다. 원작 영화에서 ‘샘’을 연기했던 배우 테사 톰슨이 ‘리키’로 등장한 에피소드 10은 ‘샘’과 ‘리키’의 대치 상황에서 통쾌한 한 방을 날린다. 시즌 2는 러브 코미디, 탐정, 판타지 그리고 다큐멘터리까지 꽤 다양한 장르를 포섭한다. 다소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시즌1의 사건으로 캐릭터들이 어떤 변화를 겪는지 비교하며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백인이 핼러윈 코스튬으로 흑인 코스프레를 해서는 안 된다’는 드라마의 일부 클립을 따온 예고편

드라마는 넷플릭스 스트리밍 시작부터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백인이 핼러윈 의상으로 흑인 코스프레를 해서는 안 된다’는 드라마의 일부 클립을 따온 예고편은, 극보수주의자 네티즌들의 반발을 일으켜 ‘싫어요’ 및 댓글 공격을 받아야만 했다. 보이콧으로까지 이어지자, 드라마의 제작자 저스틴 사미엔(Justin Simien)은 “특권 계층(백인들)에게 평등이란 부담스러운 것이라, 선의의 세 단어로 구성된 드라마 제목은 실제로 자신들에게 아무런 위협을 가하지 않지만, 그들은 그것을 생존에 대한 투쟁으로 받아들이고 저항한다”라고 이야기했다.
곧, 그는 드라마가 인종차별로 인한 갈등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는 일부의 의견에 대해 전적으로 반박한 것이다. 약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공동체에서 서로 협력하는 모습을 통해, 각 캐릭터의 현실적인 모습에서 시청자가 공감을 느끼고 부조리한 현실이 더욱 와닿길 바라는 의도에서 제작하였다고 한다. 인종차별에 무관심한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길 바랄 뿐, 백인과 흑인의 화해를 조장하지도 않는다.

출처 - IMDb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은 유쾌한 풍자, 현실적인 묘사, 그리고 흑인과 여성을 비롯한 많은 사회적 소수자의 고민을 담아냈다. 내년에 공개될 시즌3에서는 차별의 뿌리를 찾아가고, 여러 갈래에서 대립했던 흑인 캐릭터들이 하나로 뭉쳐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등장하길 기대한다.

 

메인 이미지 via ‘Film Daily’ 

 

 

Writer

실용적인 덕질을 지향하는, 날개도 그림자도 없는 꿈을 꾸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