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이(ADOY)의 오주환이 소개하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여름의 노래들. 한낮의 쨍한 날씨 속에서,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긴 장마 속에서, 그리고 잠 못 들게 하는 열대야 속에서 여러 번 반복해 들었던 여름의 노래들을 만나보자.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여름의 노래들이 있습니다. 사실 이 노래들은 언제 들어도 좋지만, 여름에 들으면 특히나 더 좋은 노래들입니다. 매년 여름이 다가오면 꺼내두고 즐겨듣는 음악들입니다. 한낮의 쨍한 날씨 속에서,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긴 장마 속에서, 그리고 잠 못 들게 하는 열대야 속에서 여러 번 반복해 들었던 저의 여름 노래들을 소개합니다.

 

1. Yo La Tengo ‘Today Is the Day’

밴드 ‘요 라 탱고’ Via recorder

요 라 탱고(Yo La Tengo)는 1984년 미국 뉴저지의 호보컨에서 결성된 인디 록 밴드입니다. 1986년 발표한 데뷔앨범 <Ride the Tiger>부터 올해 발표한 <There's a Riot Going On>까지 무려 35년 동안 활동하며, 15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한 미국 인디 록의 산증인입니다. 그동안 많은 멤버 교체가 있었지만, 1992년부터 아이라 카플란(Ira Kaplan, 기타/피아노/보컬), 조지아 허블리(Georgia Hubley, 드럼/피아노/보컬), 제임스 맥뉴(James McNew, 베이스/보컬)까지 3인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요 라 탱고의 많은 노래들을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2003년에 발표한 그들의 10집 <Summer Sun>의 수록곡 ‘Today Is the Day’를 여름이 되면 꺼내 듣습니다. 펑크한 스타일의 빠른 버전과 느린 버전 두 가지가 있지만 저는 느린 버전을 훨씬 좋아합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떠오르기도, 여름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는 물결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심플한 기타라인과 힘을 뺀 연주 그리고 나른한 보컬은 한낮의 무더위 속에서도, 낮 동안의 열기가 아직 남아있는 여름밤에도 묘하게 잘 어울립니다.

Yo La Tengo ‘Today Is the Day’
Yo La Tengo ‘Green Arrow’

 

2. 영화 <중경삼림> OST

<중경삼림> 스틸컷

1994년 개봉한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은 90년대에 태어난 세대에게 생소할지 모르지만, 80년대 생들과 그 이전의 청춘들에겐 신드롬과 같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매우 어렸지만, 홍콩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왕가위 감독 특유의 색감과 편집 그리고 모던한 대사들은 몇 번을 보아도 질리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몇 년에 한 번 가끔씩 영화를 보곤 하는데, <중경삼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노래가 있습니다. 바로 마마스 앤드 파파(The Mamas&the Papas)의 ‘California Dreaming’입니다. 1965년 발표된 이 노래는 이미 큰 사랑을 받은 올드팝 중의 올드팝이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영화 속에서 완전히 새로 태어난 느낌을 줍니다.

The Mamas&the Papas ‘California Dreaming’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중경삼림>이 떠오릅니다. 후덥지근한 홍콩의 날씨는 우리의 여름과 닮아 있고, 이 노래에 이 외에도 데니스 브라운(Dennis Brown)의 ‘Things In Life’ 라든가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의 ‘Dreams’ 등 영화에 수록된 모든 OST들은 독특한 홍콩의 분위기와 여름이 주는 느낌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유통기한이 없는 통조림처럼 <중경삼림>과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장면과 음악들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또렷한 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왕페이 ‘몽중인’(원곡 크랜베리스 ‘Dreams’)
Dennis Brown ‘Things In Life’

 

3. Suede ‘When the Rain Falls’

밴드 스웨이드 Via festivalrykten

스웨이드(Suede)는 1989년 런던에서 결성된 브릿팝 밴드입니다. 스웨이드의 초기 멤버는 브렛 앤더슨(리드 보컬), 버나드 버틀러(기타리스트), 맷 오스먼(베이시스트) 사이먼 길버트(드러머)로 이들은 데뷔 후 영국의 가장 새로운 밴드로 대두되며 많은 이목을 받았습니다. 1993년 그들의 데뷔 앨범인 <Suede>는 충만한 섹슈얼리티를 드러내며 청중과 평단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데뷔앨범은 UK 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10년 동안 가장 빨리 팔린 데뷔 앨범이 되었고, 이듬해 발표한 <Dog Man Star>는 그들의 대표작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버나트 버틀러 탈퇴 이후 키보디스트 닐 코들링을 영입하여 발표한 3집 <Coming Up>은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5곡의 톱10 싱글을 만들어내면서 스웨이드의 앨범 중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판매고를 올린 앨범이 되었습니다. 데이빗 보위, 더 스미스 등 글램록과 레이브 록의 영향을 받은 그들은 보컬 브렛 앤더슨의 비음을 활용한 독특한 창법과 퇴폐미로 1990년대 가장 중요한 브릿팝 밴드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Suede ‘Saturday Night’

그들은 2002년 5집 <A New Morning>을 끝으로 해체했지만 2010년 재결합하며, 화려하게 컴백에 성공합니다. 2011년 지산 록 페스티벌과 2016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을 통해 우리나라를 찾기도 한 스웨이드는 전성기를 웃도는 열정적인 퍼포먼스로 무대 아래 관중들을 열광시켰습니다. 2003년 여름은 유독 비가 많이 내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몇 날 며칠이고 그칠 줄 모르고 장마가 이어지던 그 시절 상업적으로 실패한 앨범인 <A New Morning>의 10번 트랙을 유난히 많이 들었는데, 유명한 노래는 아니지만 멜랑콜리한 멜로디와 마이너한 분위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저는 여전히 비가 쏟아지는 축축한 여름밤이면 ‘When the Rain Falls’를 듣습니다.

Suede ‘When the Rain Falls’

 

메인 이미지 <중경삼림> 스틸컷

 

Writer

지큐, 아레나, 더블유, 블링, 맵스 등 패션 매거진 모델로 먼저 활동을 시작했다. 개러지 록밴드 이스턴 사이드킥(Eastern Sidekick)과 포크밴드 스몰오(Small O)를 거쳐 2016년 초 밴드 아도이(ADOY)를 결성, 팀 내에서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다. 최근 첫 에세이집 <잘 살고 싶은 마음>을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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