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다가오면 기온만 오르는 것이 아니라 공기도 함께 습해진다. 땡볕만 내리쬐는 것이 아니라 장마전선이 오르내리며 비구름이 변덕을 부리기도 한다. 불쾌지수라는 말은 오로지 이 계절에 허락된 단어다. 이런 힘든 날씨에 마음을 다스리게 해주는 신보들을 소개한다.

*최신 앨범 순으로 작성.

 

나이트오프 ‘오늘의 날씨는 실패다’
(2018.06.28)

못의 이이언과 언니네 이발관의 이능룡. 왠지 평범한 날씨에도 결코 뻔하지 않게 반응할 것 같은 섬세하고 예민한 두 남자가 함께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의 날씨는 ‘실패’라고 단정 지으며 시작되는 이 노래의 가사는, 막상 평범히 실패를 읊조리거나 그에 대한 감정을 전하기보다 날씨로부터 출발해 삐걱대는 번잡한 우리의 생각과 기묘한 몽상을 절묘하게 묘사한다.

나이트오프 ‘오늘의 날씨는 실패다’ MV

휘청이며 느릿느릿 춤추는 이능룡의 기타는 그 곱디고운 톤으로 가끔씩 멜로디가 고꾸라지며 기운을 잃었다가 다시 생기를 찾는다. 언뜻 앞뒤 연결이 안 될 법한 쉽고 짧은 문장들로 아기자기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이이언의 의식의 흐름은 깊고 충만한 매력과 다른 결의 아름다움을 전하며 뮤직비디오 화면들과 어우러진다. 이 날씨는 분명 실패했는데 실패하지 않았다.

 

사우스카니발 ‘아꼬와 (예뻐)’
(2018.06.28)

사우스카니발은 어느덧 올해로 결성 10주년 맞은 베테랑 밴드다. 얼마 전 러시아에서 열린 ‘풋볼 앤 뮤직 페스티벌 & 아트풋볼(Football and Music Festival & ART-FOOTBALL)’에서는 한국 대표로 참가해 경연 1위를 차지하기도 한 실력파 밴드이기도 하다. ‘아꼬와’ 뮤직비디오 속 이국적 풍경이 그 무대일 터.

사우스카니발 '아꼬와' MV

사실 ‘카니발’이라는 밴드 이름부터가 이들의 음악에 가득 찬 축제와 같은 삶의 긍정을 대변한다. 그리고 제주 방언으로 오롯이 가사를 채운 ‘아꼬와’는 그 의미를 알건 모르건 내 마음의 날씨를 다스려준다. 트롬본의 힘찬 리드와 고경환의 씩씩한 보컬이 돛대가 되고 퍼커션과 함께 공간을 최소한으로 채우는 악기들의 가벼운 발걸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과 그에 흔들리는 물결이 되는 식이다.

 

애니멀다이버스 ‘Openwater’
(2018.06.27)

애니멀다이버스는 보다 이채로운 조합이다. 루디스텔로와 슈가도넛의 애쉬가 기타와 신시사이저를 맡고, 디지바이브의 조현이 우리에게 낯선 ‘디저리두’(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목관악기)와 ‘핸드팬’(스테인리스판이나 철판을 개조한 타악기) 악기를 연주한다. 주로 기타와 신시사이저가 멜로디나 반복되는 리프로 서사 진행을 맡고 디저리두와 핸드팬의 공명이 만들어내는 묘한 앙상블이 곡의 분위기를 결정짓는다.

애니멀다이버스 ‘Openwater’ MV

이러다 보니 애니멀다이버스의 음악은 인상을 남기고 기분의 잔상을 남기기에 제격이다. 무엇보다 이 노래 ‘Openwater’는 팀의 이름 ‘다이버스’와 맞물려 이 계절의 정경을 연상시킨다. 시종일관 이어지는 핸드팬의 영롱한 공명은 마치 물속에서 산란하는 빛과 전달되는 소리 마냥 샅샅이 흩어지고 공간을 흐드러지게 채우며 듣는 이의 꽁꽁 막힌 마음을 풀어헤친다.

 

Amplixx ‘Break’
(2018.06.25)

이열치열이라고 했던가. 이 날씨를 뜨겁고 강렬하게 정면돌파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2인조 베이시스트 캐릭터밴드로 출발한 Amplixx는 이제 3인 체제가 되어 가사 마냥 “당당히 불구덩이로, 지하로, 죽음으로 걸어 들어간다.”

Amplixx ‘Break’ MV

개러지 록의 록킹하고 굵직한 멋과 가볍고 캐주얼한 즐거움이 조화된 속성이 곧 이 곡의 매력이다. 단지 날씨에 상처 입은 마음을 적당히 원만하게 타협하거나 온갖 부정적인 적의들에 맹렬하게 맞부딪치기보다, “나는 빛나게 될 것”이라는 순수하고 직선적인 마음가짐으로 이 순간을 털어버리는 힘을 주는 것이다.

 

메인 이미지 나이트오프 ‘오늘의 날씨는 실패다’ 뮤직비디오 스틸컷

 

Writer

차분한 즐거움을 좇는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것과 일상에 대한 좋은 생각,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옮긴다. 학부 시절 네이버 파워블로그에 선정된 후 쓰기를 이어와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웹진 <음악취향Y>, 잡지 <재즈피플>, 신문 <아주경제> 등에 글을 기고한다. 누구나 늘 즐겁기를 바란다. 너무 들뜨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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