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릴 핍(Lil Peep)과 XXX텐타시온(Xxxtentacion, 이하 텐타시온)이 세상을 떠났다. 릴 핍은 마약으로 인한 복합 중독작용으로, 텐타시온은 총기 범죄로 사망했다. 21세와 20세, 두 래퍼 모두 어린 나이에 두각을 나타낸 아티스트였다. 가파르게 상승하는 커리어를 그려가던 둘이기도 했다. 많은 아티스트와 협업을 진행했고, 음악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로 자신의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들의 음악에는 공통점도 많았다. 몽환적인 사운드와 음울한 감성, 그리고 종종 쏟아내듯 뱉는 보컬까지. 커리어도, 음악 스타일도 알게 모르게 결이 비슷했다. 그래서인지 1년 사이에 연달아 터진 사망 소식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이모 힙합을 부흥시킨 젊은 래퍼, 릴 핍

릴 핍은 유복한 집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은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수재였고, 둘 다 교사였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십 대가 될 때쯤, 부모님이 이혼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시절을 보낸다. 어머니와 단둘이 생활하며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결국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릴 핍은 이 무렵부터 음악을 시작한다. 유튜브, 사운드클라우드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작업물을 업로드했다. 이후 더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기 위해 LA로 떠났고, 그곳에서 여러 동료를 만나기도 했다.

이미지 via ‘Rollingstone’ 

그는 머지않아 자신의 이름을 힙합 신에 알렸다. 첫 믹스테입 <Lil Peep Part One>을 시작으로 <Crybaby>, <Hellboy>을 연달아 공개하며 인지도를 쌓았다. 여기에 2017년, 첫 정규 앨범 <Come Over When You're Sober>를 발표하며 크게 주목받았다. 그간 믹스테입에서 보여준 모습보다 더 정제되고, 간결한 사운드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힙합의 서브 장르쯤으로 취급되던 ‘이모 힙합(Emo Hip hop)’을 전면에 가져왔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 앞으로도 승승장구할 것 같던 릴 핍은, 안타깝게도 정규 앨범을 발매한 해 약물 중독으로 사망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이에 많은 아티스트가 애도를 표했고, 약물 복용을 그만두겠다는 선언도 이어졌다.

lil peep ‘benz truck’

릴 핍의 음악 스타일은 뚜렷했다.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그는 이모 랩을 주로 하던 래퍼였다. 어둡고 절망적인 프로덕션에, 래핑과 싱잉 사이 어딘가의 느슨한 보컬을 선보였다. 약물과 죽음, 우울 등을 다루는 가사는 그를 대표하는 특징이기도 했다. 동시에 목소리에 리버브를 걸어 몽환적인 느낌을 극대화하는 등 짙은 컨셉 음악을 꾸준히 선보였다. 록 창법에도 능했다. 실제로 피어스 더 베일(Pierce The Veil), 오아시스(Oasis)의 기타 라인을 샘플링할정도로 록에도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미국 십 대의 아이돌 래퍼, XXX텐타시온

텐타시온은 플로리다 출신 래퍼다. 그는 할머니의 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재정적 이유로 부모님이 함께 생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상할 수 있듯 순탄치 않은 학창시절을 보냈다. 교육 프로그램에 강제로 보내지기도 했고, 다른 학생들과 하루가 멀다 하고 다퉜다. 다사다난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뜨거웠다. 학교 합창단을 했고, 교회에서 성가대로도 활동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자신의 폭력으로 인해 계속하지 못했다. 결국엔 고등학교에서도 강제로 퇴학당했다. 그 무렵 텐타시온은 힙합과 메탈, 하드 록에 빠지게 된다. 피아노와 기타를 배운 것도 그쯤이었다.

ⓒJack McCain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스키 마스크(Ski Mask the Slump God)라는 동료를 만나기도 했다. 그들은 작업, 공연을 함께하며 실력을 쌓았다. 텐타시온은 곧 사운드클라우드에 작업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Vice City’를 시작으로, 헤비메탈에 크게 영향받은 <Willy Wonka Was a Child Murderer>를 공개했다. 스타덤에 오르게 된 건 싱글 ‘Look at Me’부터였다. 빌보드 차트 34위라는 큰 성공을 거뒀고, 연이어 정규앨범 <17>을 발매하며 진가를 입증했다.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투어 오프닝 공연에 서기도 했고, ‘XXL Freshman Class’에도 선정됐다. 그는 올해 두 번째 정규 앨범 <?>을 발매했다. 각종 구설에 오르기도 했지만, 앨범은 빌보드 차트에서 1위로 데뷔했다. 탑 클래스 래퍼로 떠올랐다고 해도 무방할 인기였다. 하지만 앨범 발매 3개월 만에 그는 자신의 고향 플로리다에서 살해당했다. 강도 살인이었다.

XXXTENTACION ‘Look At Me!’

텐타시온은 상반된 스타일의 음악을 고루 다루던 래퍼였다. 릴 핍처럼 이모 힙합을 잔잔하게 다루다가도, ‘Look at Me’ 같은 곡에서는 로파이한 사운드에 거친 래핑을 쏟아 내기도 했다. 앨범별로 흐르는 분위기에 차이가 있기도 했다. 첫 번째 앨범 <17>이 텐타시온의 어둡고 우울한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앨범이었다면, <?>에서는 우울한 모습 속에서도 지나치게 격한 그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감성적인 모습과 폭력적인 모습이 공존하는 이중성은 텐타시온 음악의 매력이기도 했다.

 

 

범죄로 얼룩진 두 래퍼

ⓒALEX RESIDE

두 래퍼 모두 활동 중 각종 범죄 혐의에 연루된 적 있다. 먼저 릴 핍은 상당히 어릴 때부터 마약을 복용했다. 단순히 복용한 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코카인, 엑스터시, 재낵스 등 마약 중에서도 강한 축에 속하는 약물을 복용했고, 이를 SNS에 공공연하게 올려 크게 지탄받기도 했다. 한편, 텐타시온 같은 경우는 물리적 범죄를 많이 행했다. 어린 시절부터 폭력성 짙었던 그는 음악을 시작한 이후까지도 폭력 범죄를 종종 저질렀다. 유튜브에서는 여전히 그의 폭행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불법 총기 소지와 무장 강도 행각도 부지기수였다. 가장 이슈가 됐던 건 임신한 여자친구를 감금 폭행한 사건이었다(관련 기사 링크). 잔인한 범죄 사실에 많은 팬이 충격받았고, 세계 최대 스트리밍 업체 스포티파이는 텐타시온의 곡을 모든 플레이리스트에서 삭제하기도 했다.

 

 

젊은 아티스트의 죽음, 혹은 악질 범죄자의 죽음

이미지 via ‘the Source’ 

이들의 사망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젊은 아티스트의 죽음인지, 아니면 악질 범죄자의 죽음인지에 대해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 중이다. 그들을 실제로 아는 동료 아티스트들은 대부분 안타깝다는 의견을 내비치고 있다. 범죄 사실을 떠나, 음악 자체만 놓고 봤을 때 최근 등장한 신인 중 가장 눈에 띄는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한 명의 젊은 청년이 사망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동정 어린 시선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그 죽음은 모두 자신이 초래한 결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릴 핍은 경고를 무시하고 불법 약물을 계속 복용해 사망했으니 이미 예정된 죽음이었다는 의견이 있고, 텐타시온은 자신의 악행이 결국 돌아온 것으로 생각하며, 안타깝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 의견 차이는 텐타시온의 추모 행사에서 물리적 충돌로까지 일어났다. 텐타시온을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겠다는 사람과, 악질 범죄자의 죽음이 안타깝지 않다는 사람의 갈등은 여전히 첨예하다.

XXXTENTACION ‘SAD!’

아이러니한 것은, 두 아티스트 모두 사망 직전 갱생의 의지를 내비쳤다는 사실이다. 릴 핍은 XXL과의 인터뷰에서 “사람을 살리고 싶기 때문에 음악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힘들었던 시기에 음악을 통해 위로받았던 것을 베풀고 싶다고 했다. 텐타시온은 마이애미에서 기부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The Helping Hand Challenge’ 캠페인 진행을 계획 중이기도 했다. 재능과 범죄, 갱생에 대한 의지가 한 데 섞여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그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떨지는 각자의 몫이다.

 

메인 텐타시온 이미지 via ‘know your m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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