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rence and the Machine <High as Hope> 앨범 커버

이별, 죽음, 사랑, 폭력과도 같은 이야기는 시대가 변하더라도 끊임없이 인간을 속박하는 감정이다. 여기에 그러한 일상의 숱한 감정을 과거 시대의 아우라를 통해 자연치유하는 아티스트가 있다. 역사 속 소설과 예술 작품은 모두 영감의 원천이다. 고전적인 의상을 입고 우아함이 깃든 퍼포먼스를 펼치는 와중에도, 변화무쌍한 현대의 미덕에 쉽게 굴복하지 않는 강렬하고 유일무이한 음악을 창조한다. 발표하는 앨범마다 심미적인 캐릭터를 부여한 영국의 인디밴드 플로렌스 앤 더 머신(Florence and the Machine)이 지난 6월 29일 4집 앨범 <High as Hope>을 발표했다. 밴드는 이번 작품에서 이전과는 다른 접근을 시도하며 디스코그라피에 새로운 마킹을 시도했다.

출처 - 플로렌스 앤 더 머신 페이스북

 

 

정직하게 고통을 덜어내다

플로렌스 앤 더 머신의 프런트 우먼이자 리더인, 플로렌스 웰치(Florence Welch)는 밴드의 정체성을 결정하고 창의적인 시도를 더하는 보컬리스트이다. 데뷔 이후 발표한 앨범들이 줄곧 성공하며 매번 투어 등 바쁜 활동을 이어가다 보니, 이미 내면은 상처로 가득하고 자신만의 온전한 삶을 찾기란 어려웠다. 결국 그는 4집 작업을 위해 자신의 고향인 런던과 LA, 뉴욕 등을 오가며 작업을 하는 와중에, 술을 멀리하고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려 했다. 숙취로 정신이 희미했을 때 ‘Ship to Wreck’과 같은 명곡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성공에 대한 강박관념을 내려놓은 과감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Florence and the Machine ‘Hunger’

어찌 보면 4집은 3집 <How Big, How Blue, How Beautiful> 발매 당시, “이번 앨범이 가장 사적인 앨범이다”라 부연했던 그 이상의 것들을 다룬다. 대표적으로 섭식 장애, 약물 남용, 공인이 된 이후로 겪어야 하는 부담과 과도한 노출을 언급한 트랙 ‘Hunger’는 실제로 플로렌스 웰치가 썼던 시의 내용을 토대로 작업한 곡이다. 비밀을 은근하게 드러낸 시 한 편이 드라마틱한 전개, 페달 스틸 기타의 멜랑꼴리함과 만나 또 하나의 앤섬이 탄생한 것이다. 곡은 궁극적으로 현대인들이 스스로 결핍과 욕망을 다스리길 위로하고 격려하는 에너지를 표출한다. 그는 이 곡이 너무 솔직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앨범 최종 작업까지 수록을 망설였다고 한다.

출처 - 플로렌스 앤 더 머신 페이스북 

앨범의 다른 수록곡들 또한 모두 지금까지 은폐했던 단상과 사적 경험을 가감 없이 그대로 토로한다. 가정불화를 겪었던 당시를 담담하게 회고하고 사죄하는 트랙 ‘Grace’, 고통과 이별의 연속이었던 가정사를 다룬 트랙 ‘The End of Love’, 음악 활동으로 인한 관계 불안과 성취감 사이의 괴리를 다룬 ‘Sky Full of Song’, 무한한 영감을 주는 자신의 뮤즈 패티 스미스(Patti Smith)를 향한 헌정 곡 ‘Patricia’, 어린 시절의 추억과 술과 약을 즐겼던 펍에서의 파티를 떠올리는 ‘South London Forever’. 이전 앨범까지 멋진 은유 사용으로 내러티브를 펼친 것과 사뭇 다른 접근이지만, 그 방식은 더욱 정직하고 깊어졌다.

 

 

새로운 이해로 낳은 무한한 상상력

플로렌스 웰치는 이번 앨범을 통해 처음으로 프로듀서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앨범까지 수많은 히트 프로듀서와 함께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일부와도 같은 스토리를 내면의 상태 그대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동시에 자기 목소리를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는 방법도 새로이 깨달았다고 한다. 특히, 고요한 아카펠라로 시작해 멜로디를 차분히 입힌 트랙 ‘No Choir’에선 보컬과 하프 사운드가 유난히 빛을 발한다.

Florence and the Machine ‘Big God’

4집에서 가장 두드러진 트랙은 ‘Big God’이다. 플로렌스 웰치는 이 곡을 통해 속에 있는 허전함, 괴로움을 전한다. 미니멀한 스타일에 음침한 분위기와 드라마틱한 인상을 남긴 것은 인디밴드 The xx 멤버인 제이미 엑스엑스(Jamie xx)의 손길 덕분이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색소폰 사운드엔 재즈 아티스트 카마시 와싱턴(Kamasi Washington)이 함께 했다. 예사롭지 않은 피아노 멜로디와 플로렌스 웰치의 목소리엔 어둠의 마법이 깃들었다. 암흑의 공간에 놓인 물가에서 여러 여성이 무용을 통해 하나가 되는 뮤직비디오는,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 <허공에 떠 있는 마녀들(Flug der Hexen)>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프란시스코 고야, <허공에 떠 있는 마녀들>(1797-1798)
출처 - 플로렌스 앤 더 머신 페이스북 

 

 

자신감과 용기를 얻은 자아

플로렌스 웰치는 이번 4집에서 그가 지금껏 오픈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개인적인 기호부터 과거의 추억과 고통, 나약한 내면의 공허함, 어린 시절의 과오, 상실, 여성성까지 하나하나 드러냈다. 본인의 아픈 감정, 보잘것없어 보이기만 했던 기억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자아를 더욱 강하게 만든 것이다. 비유법을 배제하고 가감 없는 스토리텔링을 하기 위해 그는 앨범에 더 많은 책임감을 쏟아야만 했다. 줄곧 다뤄왔던 이별에 관한 이야기는 사람들이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으리라 믿었다.
찬란하고 정신없던 20대를 넘어, 30대가 된 그는 확실히 성장했다. 여러 곡을 솔직하게 토로한 비밀은 듣는 이로 하여금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다만 이번 앨범에서 2집의 어두운 판타지, 3집의 솟아오르는 거친 질감과 같은 매력은 찾기 어렵다. 이전과 같은 웅장한 캐릭터, 비범한 표현력, 우레와 같은 사운드도 좀처럼 찾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플로렌스 앤 더 머신’이라는 페르소나의 부담을 덜고, ‘플로렌스 웰치’의 맨얼굴을 보여주며 자신의 마음을 다했다. 이번 앨범의 솔직함은 다음 앨범에 대한 기대를 채워주기에 충분하다.

 

플로렌스 앤 더 머신 유튜브 채널 

 

메인 이미지 via ‘udiscovermusic’ 

 

Writer

실용적인 덕질을 지향하는, 날개도 그림자도 없는 꿈을 꾸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