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에 사망한 프리재즈 운동의 거장 오넷 콜맨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프리재즈 스타일의 헌정곡을 연주한 세실 테일러(Cecil Taylor). 그 역시 지난 4월 5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89년의 생을 마감하여 1960년대의 진보적인 프리재즈, 또는 아방가르드 재즈를 이끌던 양대 축이 모두 타계하였다. 하지만 오넷 콜맨은 피아노 없는 콤보 구성을 선호하여 두 사람이 함께 연주한 경우는 드물었다.

할렘의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열린 오넷 콜맨 장례식에서 연주한 세실 테일러(2015)

세실 테일러는 여섯 살에 피아노를 시작하여 보스턴의 음악 명문 뉴잉글랜드음악원에서 공부한 클래식 피아니스트였지만, 재즈로의 장르 변경 후 고도의 연주 테크닉을 선보이며 갈수록 진보적인 프리 스타일로 진화했다. 그는 재즈에서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온 화성을 배제하고 직감적으로 소리를 구성하여 엄청난 에너지를 피아노 건반에 쏟아냈다. 평론가들은 그의 연주 스타일이 클래식의 작곡(Compose)이나 재즈의 즉흥연주(Improvise) 개념을 벗어나 구성(Construct)하는 개념이라고 했다. 마치 소리의 높낮이가 다른 88개의 타악기를 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세실 테일러의 솔로 피아노 ‘Free Improvisation #3’(1981)

그의 연주는 정통 재즈클럽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그가 처음 클럽 연주에 나섰을 때 청중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거나 심지어는 웃기까지 했으며, 클럽들은 그의 연주가 청중을 내쫓는다며 다음 연주 일정을 취소해 버렸다. 그는 생계를 잇기 위해 식당에서 접시를 닦거나 세탁업소에서 일해야 했다. 후일 인터뷰에서 “당시 유명한 재즈 프로듀서들이 ‘스타로 만들어 돈을 벌게 해줄 테니 이걸 쳐라 또는 저걸 쳐라’고 종용했지만, 그럴 바에야 차라리 접시를 닦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라며 어렵던 시절을 회고했다.

앨범 <Conquistador!>(1967)의 ‘Conquistador!’

프리재즈의 산실이 된 재즈클럽 파이브 스폿(Five Spot)에서의 연주를 통해 새로운 장르에 대한 수용성이 점차 확장되었고, 앨범 <Unit Structure>(1966), <Conquistador!>(1967)이 평론가들의 인정을 받으며 그는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78년에는 백악관에 초청되어 당시의 지미 카터 대통령 앞에서 연주했다. 연주가 끝나자마자 인사도 없이 서둘러 무대를 빠져나오는 그를 따라잡은 카터 대통령이,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스타일의 연주라며 어떻게 그렇게 칠 수가 있느냐?”고 탄복하며 물었다. 평소 퉁명스러운 말투로 유명한 세실 테일러는 “나는 35년 동안 이렇게 친걸요”라고 답했다는 에피소드는 많이 알려졌다.

세실 테일러 다큐멘터리 <All the Notes>(2006)의 일부 영상. 그의 노년 생활을 엿볼 수 있다

그는 ‘프리재즈의 파이오니어’라는 명성을 얻었고 동료와 평론가들의 인정을 받았지만, 대중의 인기를 얻지는 못하였다. 음악 면에서는 그와 같은 프리재즈의 거장 오넷 콜맨에 비해서 대중에게 다가가기엔 더 난해하다는 평을 받았고, 성품 면에서도 퉁명스럽고 괴팍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특히 성소수자로서 그에 관한 질문에 거칠게 화를 낸 일화는 유명하다. 아치 셰프(Archie Shepp)는 “그와 함께 연주하면서 코드(Chord)에 대한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라며 그가 재즈 음악에 끼친 영향력을 높게 평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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